"갖고 계신 에너지에 80%만 쓰세요.
일손 놓으시면 우울증 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에,
남편에 대답은 "100% 도 아니고 120%를 쓰니 걱정입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살아가던 중, 그날도 일 욕심에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후 2년여에 걸쳐 사업을 정리했고, 정리한 지 2달 만에 코로나가 찾아왔다.
"코로나가 세상을 삼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이 멈춰스는 듯한 5월에 살 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한국에 도착했다.
열정으로 채워졌던 시간, 치열했던 시간들이 멈추자, 나라는 존재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공허감과 무력감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하루, 심심풀이로 과일을 이리저리 모양내어 깎아 접시에 담았는데 "와! 예쁘네~"
매일 먹던 과일이 오늘은 그림처럼 예쁘게 느껴졌다.
카톡에 사진을 올렸고 지인들에 "와, 예쁘네, 엄지 척"에 왠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고 자신감이 올라왔다.
코로나로 인하여 외출이 조심스럽던 시절, 간단한 조찬 후 과일 깎는 일이 일상화되어 갔고, 점점 과일 깎기에 빠져 들며 과일과에 사랑이 시작됐다.
냉장고를 열면 각양각색에 과일들이 나에 손길을 기다리는 듯하다.
"아유~ 귀여운 것들"
주황빛 레드향을 가르면 향긋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키위를 가르면 왠지 그 색과 자태에 우아함과 귀태가 흐른다.
한입 베어 물면 부드럽고 달콤함을 입안 가득 채워주는 딸기, 빨간 딸기와 초록빛 꽃받침의 조화는 어쩌면 그렇게 예쁠까!
초록빛 꽃받침을 보면 봄비를 맞고 하루가 다르게 솟아나는 새싹같이 싱그럽고, 그 작고 작은 잎에서 말을 타고 거닐던 몽골에 넓은 초원도 생각난다.
사과는 천에 얼굴을 갖고 있는 과일인 듯하다.
빨간 사과를 조각내어 한데 모으면 접시에 예쁜 꽃이 송이송이 피어난다.
사과를 조각 내면 백조도 태어난다.
사과는 손길 따라 달라지는, 변신에 천재다.
내 손은 오늘도 과일에 빠져 춤추듯 움직인다.
노랗게 익은 탐스러운 배를 가르고 조각내어 가위로 꽃잎을 만들면 접시에 예쁜 꽃이 피어나고,
배꽃에 블루베리로 점도 찍어 준후 가운데 동그란 초콜릿으로 포인트도 줘 본다.
배조각으로 만들어낸 꽃잎은 섬세하고 하얀 배 위에 콕콕 박힌 작은 블루베리들은 밤하늘에 별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도 느껴진다.
주황빛 레드향을 반으로 갈라 배꽃 옆에 놓으니, 화사함이 한층 더해진다.
배 반쪽으로 만들어진 "과일 데코레이션"...
혼자 즐거워 "예쁘네 예쁘네"하며 사진도 찍어 본다.
조그만 과일 조각이 손끝에서 예쁜 아트로 태어난다.
브라질의 이구아수폭포 물안개에 환상적인 무지개가 피어나듯 내 가슴에도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 행복이 피어오른다.
더불어 내 생활은 치즈빵도 만들고 케이크도 만들며 탄력이 붙어갔다.
남편은 생크림을 휘핑하고, 나는 구워 놓은 빵에 부드러운 크림과 바나나를 올려 바나나케이크도 만들어 본다.
부드러운 크림과 바나나향이 좋아 브라질에서 즐겨 먹던 디저트...
커피와 바나나 케이크의 조화는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이다.
정신없이 일에 빠져드는 나를 향해, 오늘도 남편이 한 마디 툭 던진다.
"적당히 하지~"
30년간 파티복 만드는 일에 빠져 있었던 내가 이렇듯 소박한 일에 즐거움을 느낄 줄 몰랐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과일 플레팅은 나에게는 즐거움이고, 누군가에겐 따뜻한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이 된다.
과일을 스치는 조심스러운 칼끝의 움직임에서 피어나는, 과일 플레팅이 주는 작은 행복감,
정말 신기하고 감사하다.
이제, 과일 조각은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내 마음과 이야기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