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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Oct 23. 2023

다소 무서웠던 독일 Koblenz 호텔

독일 거래처 방문 일정이 있었는데 거리가 있어 1박 2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마침 아이 방학이 겹쳐 가족들이 출장에 동반했고 내비게이터가 없던 시절이라 아내가 조수석에서 지도를 보며 길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오후에 출발하였기에 목적지 도착 한참 전부터 어둠이 깊어지고 배도 고프기 시작해 중간에 웬만한 도시가 나오면 1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1박을 하기로 결정한 도시는 코블렌츠 (Koblenz)였습니다. 이 도시는 인구 10만 명이 조금 넘는  독일 서부 라인란트팔츠주에 있는 소도시인데 밤은 깊어가고 호텔도 별로 없을 것 같아 도시 입구에 위치한 조그만 호텔에 짐을 풀기로 했습니다. 워낙 배가 고파 호텔방에 들어가지 않고 리셉션에서 방 예약만 하고 호텔 옆에 위치한 식당 (사실상 주변의 유일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들어가 보니 말이 식당이지 동네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맥주 한잔 하는 선술집이었습니다. 왁자지껄하는 분위기가 저희 가족이 들어서니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아마 조그만 독일 시골 마을 조그만 선술집에 동양인 가족이 불쑥 들어오는 것을 처음 경험해서인지 살짝 놀라는 분위기였고 덩달아 저희 가족도 약간 긴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테이블을 잡아 앉고 메뉴를 보며 음식을 고르자 다시 주위가 시끄러워졌고 이방인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메뉴는 독일어만 가능했고 결재도 현찰만 가능했습니다. 당시에는 번역기도 없었기에 영어를 못하는 종업원과 손짓 발 짓으로 소통하며 주문을 했고 모두들 손에 쥐고 있는 큰 생맥주도 주문해 보았습니다.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풍부하고 맛있었는데 거의 맛집 수준이었습니다. 소시지 요리는 당연히 맛있었고 반신반의하며 주문한 생선요리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생맥주는 어느 지역에서도 실패하지 않듯이 이곳 맥주도 맛이 깊었고 신선했는데 저희 가족이 식사와 음주로 여유를 찾아가는 동안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시골 주민들의 눈빛도 따뜻해져 갔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생각보다 훨씬 적게 나온 계산서를 보고 시골 도시의 넉넉함을 느꼈으며 들어갈 때와는 달리 나올 때는 주변 테이블 손님들과 간단한 인사를 했을 정도로 독일 소도시 선술집 분위기에 동화되었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여 열쇠를 받고 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호텔방이 아닌, 독일 가정집의 약간 큰 손님방을 연상케 했으며 난방이 잘 되지 않아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벽에는 사방에 사슴 머리등 짐승 머리 박제가 걸려 있어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저희를 방으로 안내해 준 호텔 직원 (호텔 주인 아들이었음)은 한쪽눈에 의안까지 착용하고 있어 낯설고 다소 섬뜩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마치 히치코크 감독의 영화 "사이코"의 호텔과 같은 느낌이 들어 저희 가족은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무사히 깨어나기를 기원하자" 라며 농담을 했지만 가족을 책임져야 할 가장인 저는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다음날 환한 아침햇살을 맞으며 무사히 깨어났습니다. 청명하고 환한 햇살이 가득한 호텔의 작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메뉴는 단촐했지만 신선한 재료로 성의껏 준비한 느낌을 받았고 어젯밤에는 무섭게 느껴졌던 호텔집 아들도 밝은 빛에서 보니 친절한 인상이었고 귀여움마저 느껴졌습니다. 전날밤 무서운 마음을 먹었던 호텔에 대해 미안해하며 호텔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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