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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경 Dec 03. 2022

아이로서 어른을 지키는 법

 누나가 광주에 왔다. 그 당시 누나는 충북 영동에서 어느 병원의 영양사로 재직 중이었다. 시골이었으니까 광주까지 오려면 영동에서 청주로, 청주에서 광주로 와야 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4시간에서 5시간 정도의 거리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정도의 거리인데도 오전에 도착한 걸 보면 이른 아침부터 준비해서 왔으리라 지금에서야 짐작한다. 우리는 서가앤쿡에서 밥을 먹었고(그 당시에는 이게 우리가 누리는 가장 좋고 맛있는 음식이었기에) 카페를 가고 서점에서 책을 샀고 내가 다니는 조선대학교 운동장을 걸었다. 물론 이 모든 경비는 누나의 돈이었다. 서가앤쿡은 아마 5만원정도, 카페는 1만원정도, 책은 시집 10권을 샀으니 9만원정도 나왔을 것이다. 그때는 누나가 직장인이니까 엄청난 소비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취업을 해서 막 사회초년생으로 돈을 버는 입장이 되어 보니 그 돈이 얼마나 소중한 돈이었는지 알겠다. 심지어 그때는 최저 시급도 적을 때라(물론 물가가 지금만큼 비싸지는 않겠지만) 그 정도의 소비는 큰 타격이었을 것이다. 누나는 그날 오전에 와서 그날 저녁에 차를 타고 영동으로 돌아갔다.     


 20대 중반의 나는 20대 초반의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벌이와 상황이었기에 여전히 누나에게 금전적 도움을 받았다. 명품 향수를 선물 받았고, 피부 관리를 게을리 한다고 로션과 토너를 선물 받았다. 그리고 20대 후반에 들어선 나는 직장에 취업했다고 명품 지갑을 선물 받았고, 가스레인지 없이 산다는 걸 듣더니 바로 가스레인지를 선물 받았고, 혼자서 잘 챙겨 먹을지 걱정이 되었는지 각종 소스와 스팸, 라면, 생활용품 등을 선물 받았다. 나는 누나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누나의 생일에 나름의 비싼 선물을 보냈지만 누나는 반품을 하고 다른 값싼 선물을 해달라고 링크를 보냈다.

 지금 글을 쓰며, 내가 누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하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적어본다. 나는 육아에 지친 누나의 말동무가 되어줄 수 있다. 나는 다리 깁스를 한 누나가 가족들의 무리에서 뒤쳐져 걸을 때 걸음을 맞춰서 걸을 수 있다. 나는 어른이기 전에 아직 어린 동생이라서 누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보존해 줄 수 있다. 나는 어른이지만 아직도 어린 동생이라서 조카들이 자고 있는 틈에 누나에게 놀자고 말하며 밤에 맥주를 마실 수도 산책을 갈 수도 있다. 나는 어리고 어린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 누나의 내면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다. 나는 어리되 마음을 공부하고 있어서 누나를 생각하며 시를 쓸 수 있다.

 내가 아직 아이라서 누나에게 비싼 선물을 주는 일보다는 가족이라는 이름을 자꾸 상기해 주는 게 누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누나에게 내가 당장의 생활에서 부족한 건 숨기게 된다. 이제 그만 보내줘도 되니까 조카들 맛있는 거 사주길. 물론 알아서 잘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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