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얼마 전에 오래된 지인 A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인즉슨 친구가 항문암 진단을 받았는데, 혹시 추천해 줄 병원이나 의사 선생님이 있냐는 거다. 항문암이라니! 엄마의 일을 겪으며 알게 되었던 모든 정보를 다 알려주고 싶었다. 먼저 엄마가 다니는 병원과 담당 전문의 선생님을 추천했다.
지인 A가 전하는 환자의 상태는 이랬다. 불편함을 느낀 지 한 달 정도 된 상태에서 며칠 전에 종합검진을 받았다. 마침 대장내시경을 했던 검사자가 암센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는데, 검사자는 사진에 나온 ‘이상 부위’가 암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어제 조직검사를 했고, 이제부터는 대형 전문 병원을 선택할 차례이다. 그분도 장루(인공항문)가 가장 두렵다고 했다.
엄마의 지난해 여름이 생각났다. 당시 엄마는 은밀한 부위에 난 아물지 않는 상처를 딸인 나에게도 보여주기를 주저했다. 당시 우리 가족도 장루를 두려워했다. 겪어보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먼저 걱정하지 마시라고. 조직검사 결과를 담당 의사 선생님이 해석하기 전까지는 어떤 일도 일어난 게 아니라고. 그때까지 다 잊고 마음 편히 있는 게 최선인 것을. 검사 결과를 앞두고, 우리 가족 또한 엄습하는 불안감에 밤잠을 설쳤다.
“A 선생님, CT 촬영을 한 다음 치료설계라는 것을 하더라고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부터 장루 걱정을 하는 건 건강에 해로워요. 그 스트레스가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가요. 저도 당시 힘들어서 하루에 몇 번씩 전화드렸잖아요. 친구분에게 꼭 말씀해 주셔요. 장루를 다느냐 마느냐를 걱정하는 것은 환자의 일이 아니라고. 지금으로서는 항암 치료를 견딜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렇죠, 고마워요.”
“언제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또 전화 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바로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치료하면 낫는다고 말해 주지 그랬어?”
“엄마도 알잖아. 처음 겪는 일이라 무지무지 힘들 거야. 우선 병원 골라야지, CT, MRI 촬영하고 의사 선생님 진단 기다려야지, 입원실 차례 기다려야지 …. 얼마나 힘드시겠어. 그 기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잖아.”
“맞다. 뭐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해.”
“그렇게 말했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가 함께 얼마나 큰 산을 넘었는지 새삼 느꼈다.
간병기를 마치며 특별히 기억되는 분들이 있다. 엄마의 사정을 딱히 여겨 매일의 기도 안에서 함께 한 지인들, 갈 때마다 미소로 답해줬던 병원 직원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엄마가 건강하게 치유되었기에 무엇보다 기쁘다. 이처럼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글을 썼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기장에는 긴박했던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엄마를 돌보며, 나는 가족이라는 정서적 끈을 새삼 발견했다. 나의 솔직한 간병기가 인생 목표에 효녀가 될 계획이 없었던 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환자뿐만이 아니라 간병인에게도 위로는 필요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