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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녀 K Jul 12. 2023

15. 명절증후군

눈물 젖은 제사상

추석이 훌쩍 가까워졌다. 갑자기 웬 추석 타령이냐고. 지난해는 엄마 지화자 여사의 입원 통지만을 기다리다 추석이 훅 지나갔다. 뭘 챙길만한 정신이 일도 없었다. 엄마 지화자 여사의 입원날짜가 잡히지 않아 가족 모두 애가 탔다. 엄마 지 여사가 아픈 후 모든 게 변했다. 하지만 안 변한 게 있다. 아빠 김필두 선생의 명절 제사상이다. 추석을 맞아 올해도 어김없이 집안에 긴장감이 돌았다. 아빠는 엄마에게 명절 제사상차림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두 고모들도 큰 아들인 아빠를 도와, 돌아가며 지 여사의 안부를 물었다. 당연히 그 전화는 장녀 K에게 향했다.



“엄마는 요즘 어떠니?”


큰고모였다.

“외출은 아직 못하시고, 집에만 계셔요.”

“니가 잘 돌봐줘야지.”

방청소하려고 빗자루를 들었는데, 청소하라는 잔소리를 들은 기분이 들었다.

"네."

“이번 명절은 어떻게 지내니?”

“아무것도 못하지요. 그것 때문에 전화하셨어요? 아빠가 고모한테 뭐라고 했어요?”

그냥 안부 전화라고 하며, 허둥지둥 전화를 끊는 고모. 장녀 K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혹시 아빠가 명절 제사상 이야기하시면, 고모가 이제 그만 정리하라고 말씀해 주셔요.’

어찌 됐든, 큰고모가 아빠에게 이번 추석은 그냥 지나가는 게 나을 거라  말한 것일까? 아빠 김필두 선생은 미리 꺼내두었던 제사용 백병풍과 놋그릇을 조용히 다시 창고로 집어넣었다.



다행히 큰 소란 없이, 올 추석은 성당에서 가족 모두 한가위 미사를 드리는 걸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간단하게 식사하고 각자의 공간에서 조용히 쉴 수 있었던 첫 명절연휴가 되었다. 엄마 지 여사가 아프기 전에는, 30분도 안 걸리는 제사를 지내려고 일주일 내내 상차림 준비를 했다. 제사음식을 준비하기 한 달 전부터 두통을 호소하던 지 여사. 오랫동안 어떠한 위로나 감사도 없었던 당연한 일로, 오롯이 맏며느리 지 여사의 몫이었다.



지 여사는 암 환자 카페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암 생존자'라 칭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장녀  K는 그 말이 멋지게 느껴졌다. 엄마 지 여사가 더 힘을 내라고 한술 더 떠본다.


"코로나가 좀 괜찮아지면 유럽 여행도 가봐야지. 다리에 힘 있을 때 가야 된대, 많이 걸어서. 앞으로 명절 연휴에는 여행이나 다니면 되겠네.”

"갈 수 있을까. 난 자신이 없다. 그리고 제사상 때문에 하루빨리 나 병 낫기 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어딜 여행을 가니?”

“어휴, 복잡하네. 영화나 보러 가자, 엄마.”

운전을 해서 10분 거리에 사는 동생네 집으로 갔다. 시집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온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4DX 영화관을 가 본 지화자 여사. 지 여사는 오래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고 즐거워했다.



암은 지 여사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다. 맏며느리 지 여사의 눈물 젖은 제사상은 이렇게 지나갔다. 적어도 올해는 말이다. 아빠 김필두 선생은 엄마가 암 정도 걸려야 제사상을 물렸다. 얼마만의 평화인가. 이번 태풍은 이 정도로 지나간 것 같다. 암은 재발이 무섭긴 하지만, 그때 가서 또 방법을 찾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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