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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녀 K Jun 28. 2023

13. 커피 값

아침 루틴

퇴원 9개월 후, 지화자 여사의 아침 메뉴는 이렇게 변했다.


‘달걀부침 하나, ABC주스 한 잔, 호밀 식빵 한 조각, 드립커피 한 잔.’


“암에는 태운 음식이 쥐약인데, 에스프레소인지 뭔지 원두를 많이 태운 다음에 짜내는 거라며? 이제 엄마는 그런 음식은 다 끊을 거야. 너도 밖에 나가서 아무거나 먹고 다니지 마.”


몇 개월 만에 기력을 회복한 지화자 여사가 비장한 심정으로 정한 아침 메뉴이다. 아침이면 TV는 어김없이 재방송 채널로 맞춰져 있었고, 지난밤 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든 장녀 K지만 8시 반이 되면 어김없이 엄마 지 여사가 내린 커피를 마셨다. 비몽사몽 하는 장녀 K 옆에 앉아, 지 여사는 전날 오후부터 저녁 사이에 있었던 가십거리와 아빠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건 분명 모닝커피 값이다.



하루는 아침 커피 타임에 TV에서 미니 다큐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한 노부부가 귀촌한 이야기였는데, 흥미롭게도 남편이 솜씨를 발휘해 마차를 만들어 SUV 차량에 매달고 다녔다. 언뜻 보기에도 조악하지만, 마차 안에는 아내만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었다. 해 질 녘, 하천가 도로에서 남편이 끄는 마차를 탄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니네 아빠랑 사이가 좋았으면, 멋진 오토바이 한 대 사서, 가죽으로 바이크복 멋지게 맞춰 입고, 경치 좋은데 찾아다니고 싶어. 타고 가다가 맛있는 데 있으면 세워서 먹고, 또 무작정 가다가 경치 좋은 데서 쉬고, 그러고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장녀 K는 순간 잠이 번쩍 깼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얘기다. 엄마는 역시 아빠를 좋아하네.”


“아니, 옛날에 너희 아빠랑 사이좋을 때.”


“사이가 좋을 때가 있었어? 그런 적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정말 옛날에 ….”


말끝을 흐리는 엄마 지화자 여사를 보며, 장녀 K는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엄마의 버킷 리스트에 바이크 족이 되고, 게다가 그걸 아빠랑 단둘이 하려고 했다니 도대체 상상이 안되었다.





‘사이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장녀 K는 항상 궁금했다. 어린 시절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보면, 옆에 있던 동생 효주는 자신이 결혼해서 그런 가정을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매일 다투는 부모에게 지쳐있는 장녀 K를 나약하다 여겼다. 그래서일까, 동생 효주는 빨리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났다.


아침 루틴으로, 아빠 욕을 듣는 게 장녀 K에게는 유쾌하지 않다. 엄마의 건강에 좋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게라도 해야 풀릴 것은 그 마음은 알고 있지만 …. 그런다고 뭐가 변하랴. 잠시 기분뿐이다.


‘엄마, 나를 아빠 욕하는 상대로 소비하지 마, 제발.’


장녀 K가 봐온 엄마 지화자 여사는 절대로 혼자 살 수가 없다. 하지만 아침마다 아빠와 단둘이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말하니 …. 지 여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또한 남편 김필두 씨 욕을 하는 데 맞장구를 쳐서도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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