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딸
장녀 K는 아빠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아질지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노력을 해봤지만 결과는 별로였다.
‘아빠, 아버지’
장녀 K로서는 다정하게 부르기 어려운 단어이다.
언젠가 친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장녀 K는 무심결에 불만 섞인 고민을 털어놨다.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상적인 통화였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가정사로 화제가 옮겨졌다. 요즘 내가 장녀로서 엄마를 간병하고 있는데, 아빠의 몫조차도 내 차지가 되었다는 등의 사소하지만 부담스러운 일들을 털어놨던 것이다.
“어쩌면 언니의 고민이 거기에 있을지 몰라요. 물론 간병은 힘든 일이지만, 언니를 더 힘겹게 하는 건 언니의 일이 아닌데도 떠맡은 느낌이랄까? 제가 주제넘게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언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장녀 K는 가리고 싶은 곳에 대충 덮어 뒀던 보자기가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장녀 K는 어려서부터 아빠와의 관계가 불편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아빠 이야기를 특별히 꺼내지도 않았을뿐더러 숨기고 싶어 했다. 자신이 아버지의 사랑이 뭔지 잘 모르고 자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장녀 K가 엄마를 간병하면서도 힘겹게 느껴졌던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만약에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좋았다면 간병의 주체는 자신이 아닌 아빠이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 김필두 씨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화를 내며 어린 장녀 K를 혼냈다. 지금까지도 장녀 K는 그때 왜 그렇게 혼이 났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혹시 아빠 자신과 장녀 K를 동일시한 것은 아니었을까? 당시 아빠의 일상은 이랬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말이 없었고, 술을 마신 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분노로 자신과 가족을 괴롭혔다.
장녀 K는 아빠가 좋아하는 것이 골프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지금도 골프 말고는 서로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아빠 김필두 씨를 이해하기에는 가족 모두의 상처가 너무 깊다. 그렇다고 다른 가족들끼리의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다. 엄마 지화자 여사와 두 자매 또한 서로를 원망하거나 피곤한 존재로 여길 때가 많았다.
‘부모라도, 거리를 두는 것이 나 자신에게 이롭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쯤에 갑자기 엄마 지화자 여사가 아파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 지 여사가 자신의 암을 두 딸이 아닌, 남편 김필두 씨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장녀 K는 자신이나 동생 효주가 엄마의 원망의 대상이 아닌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