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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 속의 낭만

by 여름온기

3차선 도로 위.

오른쪽 출구로 빠져나가야 할 차들이 2차선에서 달리다가,

3차선에 있던 내게 경적을 울린다.


"안 비키고 거기서 뭐 하니?"라고 들리는 듯했다.

몇 번이고 겪은 일에 불만이 절로 튀어나왔다.

‘저럴 거면 미리 3차선에 와 있어야지.'

여긴 운전면허시험이 없다는 말이 괜히 떠올랐다.


심지어 직진하던 내 앞을 가로질러,

반대편 차선에서 도로를 횡단하듯 들어오는 택시도 있었다.

“아악!!”

긴장감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이곳의 도로는 언제나 무질서와 혼잡으로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4차선 도로 위, 차량의 물살이 거칠게 흘렀고,

아니나 다를까 승용차 두 대가 충돌했다.


앞의 낡은 차량은 멈춰 있었고, 뒤의 검은 승용차는 그대로 박은 듯 보였다.

“어우, 저기 사고 났다.”

언제나처럼 그냥 지나치려던 순간, 나는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두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싸우기는커녕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 것이다.


“서로 아는 사이야?”

내가 묻자,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지 않을까? 여기선 보험 처리할 형편이 안되니까, 그냥 서로 괜찮은지 확인하고 넘어가기도 한대.”


내가 여태 살면서 본 사고 후 반응은 보통 세 가지다.

첫째, 무표정으로 내려서 보험 처리하자는 사람.

둘째, 허리에 손을 얹고 언성을 높이는 사람.

셋째, 아예 멱살 잡고 싸우는 사람.


하지만 웃으며 악수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또 다른 도로 위 이야기다.


어느 날, 한창 멕시코의 출근 시간인 오전 8시 반

새파란 화물차 한 대가 도로를 막아섰다.

한국의 화물차보다 1.5배나 더 긴 몸체였다.

작업장으로 들어가려면 네 개 차선을 통째로 차지해야 했고, 전진과 후진을 수십 번 반복했다.


신호는 다섯 번, 여섯 번 그 이상으로 바뀌었지만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깜빡이 불빛으로 "괜찮아, 천천히 해." 하고 기다려줄 뿐이었다.


마침내 화물차가 들어가자 도로 위 모든 차가 함께 출발했고,

기사는 손을 들어 고마움을 전했다.




이곳에서 사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한국에서 누리던 편리함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100% 기대할 수 없다는 걸.

가끔은 손해 보기도 하고, 불편했고, 때로는 답답함에 눈물도 흘렸다.


이번에는 우리 집 보일러가 말썽이었다.


이 주가 다되도록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샤워를 하려면 가스레인지에 큰 솥을 올려 물을 끓이고, 그것을 대야에 부어 나눠 써야 한다.

불편했지만, 그 순간은 왠지 어린 시절의 1990년대가 떠올라 그리움이 스쳤다.


샤워할 차례가 되면 남편은 말없이 냄비에 물을 올려놓고 가스불을 켰다.

끓어오르는 알맞은 온도로 맞춘 뒤, 욕실 앞으로 가져다 두었다.

“여보, 다 됐어.”


그가 손수 데워 준 뜨뜻한 물로 씻어서 그런지

유독 하루의 긴장이 더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냄비 속에서 데워진 건 물뿐만 아니라,

서로를 향한 다정함이었다.


편리와 효율을 추구하며 잊고 지냈던 '정'을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이 배우고 있다.


싸움 대신 악수로,

재촉 대신 기다림으로

무질서 속의 도로, 불편 속에서 피어난 다정함의 꽃.


그것이 바로 지금 멕시코에서 내가 누리는 낭만이다.




[이미지 출처-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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