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이 눈 내리는 아침, 이곡 신청하신 분들이 많이 있네요? 그럼 바로 들어 볼까요? 러브레터 삽입곡 'A winter story'입니다!"
작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잔잔하고 깨끗한 피아노 선율이 온 방안을 가득 채운다.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있는 학창 시절 첫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곡이다.
나는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두 노래가 생각이 난다. 첫 번째는 미국 보스턴을 배경으로 부잣집 도련님 남주와 가난한 이민자의 딸 여주의 사랑이야기 '러브스토리(Love Story / 1970)'고, 두 번째는 바로 일본 오타루를 배경으로 학창 시절 첫사랑의 추억을 담은 '러브레터(Love Letter / 1995)다. 특히, 러브레터는 한 참 감정적으로 예민했던 중학교 시절에 봤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다. 또 아무래도 같은 동양권 영화이기에 감정선도 비슷하고 잘 통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영화의 배경인 '오타루'에 꼭 가보고 싶었다. 재미있는 건 그 염원이 너무 강했는지 지금까지 일본 여행을 딱 두 번 했는데 모두 오타루 여행이었다. 그렇다고 일정이 다른 것도 아니고 거의 비슷했다. 하여튼, 오늘은 그 오타루에 대한 기억을 눈 내리는 겨울날 기념으로 끄집어내려고 한다.
영화 <러브레터> 포스터 오리지널 버전(왼쪽)과 리마스터 버전(오른쪽)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오타루는 13만 명 정도(Daum 백과 기준) 되는 홋카이도의 작은 바닷가 도시이다. 보통 오타루만 여행하기보다 근처에 있는 대도시인 '삿포로'와 함께 여행하는 경우가 더 많다. 도시가 작기 때문에 솔직히 하루면 웬만한 관광지는 다 둘러볼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첫날에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오타루로 이동하고 구경하고 먹고 놀고 저녁때쯤 삿포로로 돌아와 숙소에 들어간다. 나 또한 2번의 여행 모두 그렇게 했다.
공항에서 오타루 가는 열차 편
공항에서 오타루까지 가는 방법은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요시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대략 2시간 안쪽이었던 거 같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다. 바로 풍경이다. 특히나 운이 좋다면 눈 내리는 바닷가를 보면서 갈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안내 책자에는 꼭 열차에서 오른쪽에 앉을 것을 강추한다.(가는 방향 기준) 나 또한 그랬고 2번 중에 한 번은 운이 좋아 눈 내리는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오타루는 일본의 여타 도시처럼 깔끔했고 소박 했다. 몇몇 관광지를 빼고는 시골 도시 느낌이었다. 역에서 내려 큰 짐을 락커에 보관하고 본격적인 도시 관광에 들어갔다. 일정은 '오타루 운하 -> 메인 관광 거리 -> 오타루 오르골당'이었다.
작은 배도 탈 수 있는 오타루 운하
오타루 운하는 규모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소박한 크기와 많은 사람들, 그리고 양쪽에 옛 창고를 리모델링한 다양한 상점들이면 충분하다. 밤이 되면 조명으로 인해 더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도 여행의 시작과 끝을 이 운하에서 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그 느낌도 달랐다. 어느 때가 더 좋았냐고? 직접 한번 가보면 알 것이다.
이 운하 주변에서는 인력거꾼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사라 진지 오래된 모습과 직업인데 이렇게 이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물론 관광 산업으로 유지되고 있는 직업이지만 그래도 1900년대 초 배경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모습이라서 색달랐다.
메인 관광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모습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서울 인사동 거리나 전주 한옥마을 거리 느낌이랄까? 다양한 해산물을 파는 식당과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이 넘친다. 특히나 나는 아이스크림이 너무나 맛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홋카이도 지방은 낙농업이 굉장히 발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유가 너무나 신선하고 맛이 좋다. 그러니 당연히 유제품이 훌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삿포로에서 먹은 '옥수수 수프'는 내 인생 수프다!)
그리고 이 거리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제품의 상점들이 있다. '롯카테이'와 '기타카로 오타루점', '르타오'가 바로 그것이다.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있다면 한번씩은 얻어먹어본 과자와 베이커리다. 내가 알기로는 국내 몇몇 유명 백화점에도 입점해 있다. 하여튼 현지에서 먹는 맛은 최고며, 또한 아낌없이 시식해보고 구매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점심을 이 매장의 시식으로 대신한다는 이야기가....^^;)
다음은 가장 기대가 컸던 '오르골당'이다. 다양한 소리로 가득했던, 그래서 다소 시끄러웠던 밖과 달리 건물 안은 깨끗하고 맑은 오르골 소리로 가득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오르골 소리는 참 겨울과 잘 어울린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오르골과 소리를 구경하다 보면 시간은 순삭이다. 온 김에 구매를 하려고 했는데 다소 비싼 가격 때문에 포기했다. 가격에 부담이 없거나 '그래도 추억인데!'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꼭 구매해 보기 바란다.
스시 모양 오르골이 인상 깊었던 '오타루 오르골당'
맛보다 비주얼이 '더' 좋았던 튀김 덮밥
여행지에 가면 꼭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맛집이다. 하지만 나는 이쪽으로는 전혀 감각도 지식도 센스도 없기 때문에 그냥 같이 간 동행을 믿고 한 가게에 들어갔다.
각종 튀김을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이를 얹은 덮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우선 바로바로 만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고 재료도 신선했다. 다만 만드는 시간은 좀 걸렸다. 중요한 것은 맛인데, 비주얼이 너무 훌륭해서였을까? 눈으로 먹는 것이 더 좋았다. 하여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것은 작은 가게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나 같은 몇몇 관광객 빼고는 모두 현지 당골들이었다.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은 모두 주인아저씨와 반갑게 인사했고 모든 것이 익숙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신기한 것은 모두 혼자 와서 먹고 간다는 것이었다. 집에 먹을 것이 마땅하지 않거나 저녁을 사 먹고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문화인지 몰라도 하여튼 다소 신기했다.
이렇게 간단한 오타루에 대한 추억은 여기까지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당장은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3번째 여행을 꿈꾸는 곳이 바로 '오타루'이다.
조금만 관광지를 벗어나면 소박한 일본 소도시를 느낄 수 있고
여기 어딘가의 그때 그 시절 나카야마 미호(레브레터 여주)가 자전거를 타고 갈 것 같은...
추억이 가득한 학창 시절 나만의 보물 상자 같은 곳이다.
기차를 타고 오타루를 갈 때도 다시 삿포로로 나올 때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