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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룹LOOP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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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안 Nov 10. 2022

룹(LOOP)

#1

당근 마켓에 그것이 올라왔을 때 두 눈이 섬광으로 치켜떠졌다. 몇 달 동안 머리를 감을 때마다 대여섯 줄기씩 빠져나가던 긴 머리카락이 이제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을 것 같아 심장은 설레발로 콩닥거렸다. 혹여 누가 잽싸게 낚아챌까 봐 나는 엄지로 핸드폰을 초스피드로 작동시켰다.
  약속 장소로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들뜬 마음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여러 번 실패를 맛보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 이게 나를 구원해 줄 마지막 카드인지 몰라. 역사 공원 2호선 2번 출구는 전에 와 본 적이 있어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출구 오른쪽 빌딩과 학교 뒷문 사이 좁은 길목에는 벚꽃들이 난분분했다. 눈이 부신 이 봄날에 나는 사라지는, 닳아지는, 잊혀지는 그 뭔가를 찾으러 판매자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늘진 나무 벤치에 키 작은 소년이 배낭을 메고 앉아 있었다. 볼 헤어 커트 머리에 빨간 야구점퍼 차림이었다. 나는 2번 출구 바깥을 한 번 휘둘러보고 다시 가로수를 접한 학교 담벽을 쳐다보았다. 학교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학생들의 함성이 둘러싼 전나무들 사이로 호기롭게 퍼져 나왔다. 도로 맞은편에는 하얀 벚꽃 나무들이 길을 따라 풍성하게 이어졌고, 일상은 늘 그렇듯 천연덕스럽게 하루를 펼쳐 보였다. 약속 장소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 소년에게 시선이 아예 가지 않았을 거다. 하나 아무도 없었고, 그 소년뿐이었다. 기껏해야 초등 4학년 정도의 남자아이였다. 원래 약속 시간 보다 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다시 주변을 바쁘게 훑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가슴 높이쯤 들고 나는 뚜벅뚜벅 다가갔다. “혹 당근이신가요?” 그러자 그 꼬마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대뜸 눈빛으로 먼저 알은체를 하며 “영화 입장권 당근이시죠?” “네, 맞아요.” 내가 그다음 말을 못 건네자 아이는 바삐 둘러맨 배낭을 벤치 위에 놓고는 배낭의 지퍼를 쓱 열었다. 녹슨 부분이 대부분인 철제 박스가 안에서 비죽 고개를 내밀었다. 겉으로 봐도 제법 묵직해 보였다. 소년은 뚜껑을 열어 입장권의 상태를 보여 주었는데 노란 고무줄로 여러 다발이 칭칭 감겨 오랜 시간을 머금고 저장돼 이제 막 빛을 쬐는 것 같았다. 딱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냄새가 공원의 꽃 냄새에 섞여 훅 끼쳐 왔다. “3만 원이라고 했죠?” 소년은 대답 대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는 지갑을 열어 3만 원을 건넸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는 돈을 받자마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잰걸음으로 횡단보도가 있는 도로를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는 아이를 세워 두고 묻고 싶은 궁금증은 따로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입장권을 모았니?’ 하고 서둘러 묻고 싶었으나 혹여 의도하지 않은 대답이 들려올까 봐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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