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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페어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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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안 Oct 31. 2024

페어

#7

나리를 처음  만나고 나리의 눈과 마주친 날은 정말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문학적 표현인 줄로만 알았던 몇몇  문장들이 내 삶에 나타났다. 물론 대학교 때부터 회사 생활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교제했었다. 그때 당시도 분명히 나의 날들은  로맨틱했을 것이고 상대방과 함께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 찾아온 관계의 비대칭성은 연속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무한을 바라고 그렸던 날들은 유한의 현실에서 상대성이라는 자각을 맞이했고, 그렇게, 시간에, 해결을 맡기는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몇 차례 대칭된 ‘짝’을 찾던 나에게 나리를 만난 순간이 찾아왔다.   

   4XD 영화관에서 의자가 좀 흔들리는 바람에 우산을 떨어트린 줄도 몰랐다. 그날 시간이 돼 혼자 히어로 영화를 보러 갔고,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우산을 챙겨 갔었다. 

   엔딩  자막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고 시선은 자막을 따라가는데 생각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읽은 위인전에 나오는 시대의  히어로부터 39년간 내가 살던 시대의 히어로까지······. 시대마다 히어로가 있다면 세상의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될까 싶었다.  역사의 위기마다 히어로는 존재했고, 그 위기를 히어로 때문에 넘겼는지도 몰랐지만 과연 그 히어로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어찌 된 게  군중의 욕구에 따라 히어로는 변형되고 색다르게 만들어져 갔다. 우리는 영화라는 프레임의 환상 속에서 끊임없이 히어로를 만들어  내다 보니 우리의 삶도 그러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애초에 불완전한 인간이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인 히어로를 만들어 만족감을 누리려고  하는지, 사람들은 늘 히어로에 목말라 있는 것도 같았다. 신이 아닌 이상 완전한 히어로는 없는 법이었다. 전략기획부에  들어가고부터 나는 추락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명하는 히어로가 되기보다 연명하여 평범해지고 싶어졌다. 결혼도, 회사도,  관계도······.

   엔딩 컷이  올라갈 때까지 멍하게 앉아 있다가 우산을 놓고 나온 거였다. 그때 어떤 여자가 뒤따라와 “저기요, 우산요.” 하며 나를 불러  세웠다. 미미한 역사의식에 잠겨 내 일생일대의 목소리를 놓칠 뻔했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딱 얼굴 한 가지에 반하는 게  아니었다. 생물학적으로 3초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순간이었다. 목소리에 눈을 마주친 그 순간. 

   얼마 전  친구가 승진 선물로 사 준 비싼 우산을 찾아 줘서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 여자라면 평생 내 곁에서 나와 긴 여정을 시작해도 될 것  같은, 처음으로 운명의 짝을 찾았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내 안의 영사기는 벌써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며 우산을 선물한  친구에게 정장을 사 주는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회사 업무  스트레스로 돌아 버릴 것 같다가도 나리의 목소리만 들으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지금 견뎌 내고 있는 것도 순전히 나리  때문이었다. 나보다 남에 대해 관심이 이렇게 지대하게 커 버릴 줄은 나도 몰랐었다. 침대에 누워서 늦도록 대화해도 지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생겼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했던 내가 여유로워진 나로 변하였다, 눈을 뜨면 회사의 일보다  먼저 떠오르는 그 얼굴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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