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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페어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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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안 Oct 31. 2024

페어

#6

집에 도착해  핸드폰을 확인한 건 늦은 밤이었다. 수백 건의 댓글들이 달려 무슨 큰 이슈가 생긴 듯 다들 호들갑이었다. 별의별 추측성 댓글들과  신춘문예가 이어졌다. 심지어 구두느님이 집사가 싫어 새 집사를 찾고자 지하철로 갔다는 글도 있었다. 나는 어째 픽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내가 올린 글을 보고 주인이 벌써 구두를 찾아갔을지도 몰랐다. 몇 백만 원 하는 구두를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이 나라에 몇 퍼센트가 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 댓글에 달린 내용 중 하나였는데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구두의 처음 존재 목적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현실은 본질보다 그 다른 뭔가에 더 강렬하게  사람들이 목을 매었다.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것은 유실물 센터 직원이 내 당부를 잊어버렸거나 직원이 얘기했는데도 주인이 사례금  때문에 연락하지 않은 게 더 적확한 이유인지도 몰랐다.


   구두 하나면 돼.

   그래도  그건 좀······. 결혼 비용으로 그녀나 나나 힘든 상황도 아니었지만 모든 예물을 생략하고 단 한 켤레의 구두를 사 달라는  그녀의 간단한 요청이 꼭꼭 잠겨 풀 수 없는 함의로 나에게 무겁게 와닿았다. 친지들과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나름 알차게 실속  있게 하자고-축의금을 전액 사회에 기부하는 부류도 있었으니까- 거기까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가 그렇게 하자고 말했어도 나도  흔쾌히 따랐을 것이다. 혹여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아프리카 오지의 봉사 활동으로 가자고 말을 하지 않은 것만도 나는  감사히 여겼다. 내 친구 중에서는 그 일로 곤욕을 치르다 이혼 도장을 찍은 친구도 있었다. 형식적으로 30분 안에 끝나는 예식은  나도 사양이었지만 이상한 것은 스몰 웨딩이 스몰 웨딩이 아니란 거였다. 스몰 웨딩이 스몰인 탓에 높은 품격이 따라올 줄이야! 구두  선택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냥 내 생각에는 보통 남들 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더 편해 보였다. 

   그나마  예식 장소라도 미리 정해서 다행이었다. 처음에 전원에서 하는 것도 생각했지만-나리 이모가 양평에 큰 전원주택에 사셔서-교통도  그렇고 우천 시 여러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배로 비용이 들었다. 이 부분은 나리가 바로 아니라고 했다. 전원 분위기도 나고  도심에서 그렇게 벗어나지 않은 가든 웨딩에 적합한 장소는 우리를 만족하게 했다. 아무리 봐도 조촐한 파티는 아니었다. 모바일  청첩장에 웨딩 촬영에 아직 남은 것들이 있었지만 나리는 나보다 준비할 게 더 많아 보였다. 

   어제는 구두 샀고, 아까 침대도 배송해 달라고 했고, 오늘은 뭐가 남았지? 쇼핑 후 나는 녹다운 상태인데 나보다 일곱 살 아래인 그녀의 체력은 고갈을 몰랐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오빠 우리 맛있는 것 먹으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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