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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페어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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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안 Oct 31. 2024

페어

#5

오빠, G 레스토랑으로 바로 와.

   새벽에  나리로부터 파일 동영상이 와 있었다. 머리에 마스코트를 쓰고 웃는 표정으로 유행가 가사를 개작해 불러 주었다. 오늘이 내  생일인지도 몰랐다. 둘만의 공간이라지만 몇 걸음 옆에는 다른 테이블이 있었다. 어제 기획실 회의에서 심드렁하게 말하던 차 부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북유럽에서도 출시하자마자 순조롭게 판매가 되고 있는데 또 새로운 신규 아이템이라니, 이거야 원, 숨 좀 돌리면 안  되는 건지······. 당장 이달 안으로 절묘한 방책을 만들어 내라고 하는데 유일무이한 대안은 쉬 보이지 않았다. 들떠 있는  나리와 달리 머릿속은 온통 그 대안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2개월 뒤에 결혼식인데 과연 내가 결혼을 하는 것인지 세탁기가  건조기와 결혼을 하는 것인지······. 이런 속내를 나리가 알 턱이 없었다.

   오빠, 이곳 멋지지? 이 식당 예약하기가 얼마나 힘들은 줄 알아? 낮에는 저 아래 북한산 자락이 다 보여, 밤이라 아쉽다. 

   아니, 지금도 괜찮은데? 정말 근사해!

   촛불을  하나씩 켜고 자신이 주인공처럼 신난 나리의 얼굴과 오렌지빛 촛불이 얕은 어둑함 속에서 일렁거렸다. 생일 축하의 노래를 부르는 나리  앞에 불빛은 노래와 함께 작은 불길로 자신을 빠르게 녹여 갔다. 그 순간, 앞으로 나는 촛불을 못 불 것만 같았다. 오롯이 자기  몸을 태우며 녹아드는 촛불이, 어째 그 처연히 떨어지는 촛농이 얼마 못 가 퇴출당할 내 꼴처럼 여겨져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다. 

   집에  돌아와 나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고마웠다고······. 있잖아, 내 생일에는 촛불 켜지 마. 환경에 안 좋아. 그러자 바로  문자로 답이 왔다. 그녀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참 오빠, 환경에 민감하지? 그러면 내년에는 태양열로 작동되는 전기 촛불로  켜자.


   지방에서  수도권 대학으로 올라온 동기 모임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가볍게 공을 차고 술자리를 가졌다. 의도한 건  아니라도 공교롭게도 11명이었다. 그 11명 중에서 10명이 품절남이었고, 가판대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내가 이제 2개월 기한을  갖고 있었다.

   졸업 후  지금까지 친구들의 행불행을 가까이 지켜보게 되었고,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끝까지 버티자던 친구가 품절남이 되자 이제 우리  모임에서 남은 건 나였다. 걔들은 3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결혼에 골인했고, 서너 명이 후반에 했는데 나보고 버틸 수 있으면  끝까지 버티라고 아니면, 끝까지 솔로의 길을 가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판타지는 딱  3개월이야, 그러자 한 녀석이 동시에 일어나 주절거렸다. 인마, 3개월은 무슨, 딱 일주일! 결혼 후 그들은 점점 지쳐 가는 것  같았다. 건물주인 친구를 빼고 모두 맞벌이다 보니 육아와의 전쟁이었다. 늘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첫 말은 하루 정도 잠만 푹~  자고 싶어, 였다. 

   단 하루도  보지 않고는 못 살겠다던, 어떨 때는 여친 만난다고 동기 모임에도 나오지 않던 녀석들도 아내가 처가에 가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갈 때는 전화 통화 음성부터 확 달라졌다. 마치 푸른 들판에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그들은 들떠 있었다. 전화 통화 내내  자유를 갈망하다가 드디어 자유를 찾았다는 격한 흥분의 몸짓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그들의 입김에, 그들에게 세뇌돼 결혼을 늦춘  건 결코 아니었다. 솔직히 늦었다고 볼 수도 없었다. 결혼 적령기라는 건 사회의 부추김일 뿐, 사람마다 제각기 다를 수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내재한 종족 번식 욕구로 결혼? 바로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1년 뒤면 마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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