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야, 진짜 하기 싫지? 뭐가 문제냐?
내 표정이 어땠어?
집도 장만했겠다, 뭐 안 된 것 있냐? 아니면, 설마? 예전에 걔 임신이라도 했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야! 그 이쁜 나리를 두고······. 역시 있는 새끼들이 나쁜 새끼야······. 승진도 하고 어! 월급도 오르고 어! 일곱 살이나 어린 애랑 어! 그라믄 안 돼!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입을 꾹 닫고 있자 자기들끼리 신이 났다.
안다, 그 기분 우리도 알아. 근데 뭐 사실 입장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는 거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입장하고 나서도 모르는 것이고. 야, 대학교 때 걔 기억 나냐? 예식 다음 날 이혼한 거······.
희망적인 저주에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야, 오늘은 운동 못 하겠다. 내일 중요한 보고서 있다. 이쁜 얼굴로 상무님 봬야 한다. 자야 해.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잠깐 나왔어.
그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나, 간다.
야, 인마, 좀 뛰다 가, 오늘 재호도 못 온단 말이야.
왜?
아 몰라. 단톡방 확인 안 했냐? 그냥 ‘좆 됐다.’ 메시지 남기고 채팅방 나갔잖아.
마지막으로 들은 상스러운 표현에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을 향했다. 재호가 뭔 일 생긴 건가······. 전화하려던 찰나 이전의 진동과 함께 찾아온 문자 알림을 확인했다. 문자는 뜻밖에도 그 구두 주인이었다.
막상 문자를 보자 딱히 그 여자를 만날 필요까지 있을까, 구두를 찾아 주었으면 되지 않았나 싶었다. 내가 문자를 그렇게 보내자 그 여자는 나를 꼭 만나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사례를 하려고 에둘러 말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답장하지 않자 그 여자는 그 구두가 출근 시간에 그 지하철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듣고 싶지 않냐며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실 그 구두와 여자의 불가불 관계가 궁금하기도 했고 나도 묻고 싶은 게 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괜스러운 친절이었지만 이렇게 그 괜스러운 친절에도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니 괜스러운 관심을 둔 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사례는 둘째치고라도 그 구두의 사이즈가 다른 것에는 뭔가 사연이 있을 만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명품 브랜드는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조금씩 차이가 있었기에 그렇게 신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나리에게 들은 것도 같았다.
이 시간에 모두 예약했는지 몰라도 카페에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여자는 내가 들어서자 천천히 일어섰다. 30대 중후반으로 내 또래 같아 보였다. 키가 컸고, 마른 체형의 여자는 마른만큼 얼굴도 창백했지만 세련된 멋이 있었다. 옷차림새를 봐서는 전문직 여성 같았다. 그리고 여자가 신고 있는 H사 구두가 보였다. 여자는 반쯤 목례하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며 나의 관심을 더 강하게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