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페어 09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안 Oct 31. 2024

페어

#9

이렇게 시간을 내줘 감사합니다. 게다가 구두를 세상에 알려 줘 더 감사하고요. 

   여자는 구두를 찾게 해 줘 감사하다는 인사 대신에 구두를 세상에 알려 줘 감사하다며 제법 힘주어 말했다. 

   애써서 찾아 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이 구두는 바로 버릴 겁니다.

   그 말을  내뱉는 표정이 기묘할 정도로 싸늘하며 비장해 보였다. 다리를 꼬아 앉은 여자가 음절을 뱉을 때마다 구두가 테이블 밖을 나왔다  들어갔다. 뭐가 무서운지 금방 숨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뭔가 비장한 얘기를 풀어놓기 전에 서막을 예고하듯 말했다. 순간 이  여자의 마니아 심리를 알려 주는데 이용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지금 이 만남 자리도 어쩌면 필요 없는 자리였는데  괜한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닌가 싶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구두를 신는데 사이즈가 다른 구두를 신을 수도 있는 건데 섣부른 호기심에  괜한 남의 일에 끼어든 것 같아 조금 짜증이 일었다. 

   버리기 전에 만나서 인사는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만나자고 했어요.

   여자는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말했다. 

   강민재 씨는 저에게 호의를 베푼 분이죠. 그냥 지나쳐도 될 것을, 구두의 진가를 알고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으니까요.

   그녀가 뱉는 모든 언어가 존재하고 쓰이는 것을 알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여자가 하고자 하는 그 행동만 물어보기로 했다.

   왜 버리려고 하시죠?

   그러자 여자는 웃자고 말한 것인지 혹 이 구두가 필요하세요? 라며 농담 어린 눈짓으로 되물었다. 나는 손을 들어 내저었다.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정말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요. 구두 사이즈가 다르더군요.

   나의 문장은 평서형으로 끝났지만 여자의 대답이 이어졌다.   

   네, 사이즈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군요? 그렇다면 저도 말씀드리죠. 제 너절한 연애사를 굳이 말하려고 뵙자고 한 건 아니에요. 사이즈에 관해 물으시니까 말인데요. 사이즈가 36, 37이잖아요. 

   예, 오른쪽이 37 왼쪽이 36이었어요. SNS에 올릴 때 사이즈가 다른지는 몰랐지만 혹 몰라서 그것은 올리지 않았어요.

   여자는 대뜸 그 구두를 바로 버릴 수도 있었지만 구두를 사 준 사람에게 만나서 돌려주기도 그렇고, 어떻게 관계를 끊을까 고민하다 이 방법을 선택했다고 했다. 

   2년  가까이 결혼을 약속하고 만난 남자에게 이 구두를 선물 받았는데 사이즈가 달랐다고 한다. 바로 물어보려고 하다가 의심쩍은 데가 있어  그 구두 매장을 가서 확인해 보니 매장 직원의 실수였는지 어떻게 된 건지 구두 사이즈가 바뀐 것이었다. 남자는 같은 날  36사이즈와 37사이즈의 구두 두 켤레를 사 갔다는 것, 그 남자는 그 매장의 VIP고객이라 두 켤레 주문이 가능했다. 확인 차  매장에 갔을 때 선뜻 VIP 정보를 말해 주지 않을 것 같아 해프닝을 좀 벌였다고 했다. 사이즈를 잘못 줬다고 건의했더니 두  켤레를 사 갔다고 말하더라는 거였다. 

이전 08화 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