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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룹LOOP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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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안 Nov 10. 2022

룹(LOOP)

#4

당근으로 채팅 알림이 왔다.
  어제 입장권 판 사람인데요. 죄송하지만 그 입장권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판매 금액의 10배로 배상하겠습니다.

 입장권을 판 소년의 문자는 새벽녘에 겨우 잠든 내 의식을 깨워 괴롭혔다. 정확하게 말하면 암막 커튼 뒤로 해가 뜨기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초등학생이 보낸 문자로 보기에 사뭇 어른스러웠다. 귀찮아질 게 뻔해 답장을 보내지 않고 폰을 끄려고 할 참이었다. 연이어 두 번째 채팅 알림이 왔다. 누나, 돌려주세요. 제발요. 필요 없는 줄 알고 모르고 판 거예요.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팔지를 말든가. 판다고 당근 마켓에 올릴 땐 언제고 다시 돌려달라니, 판매 금액의 10배를 더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년 못지않게 내 상황 역시 절박했다. 이미 소재 기획안을 제출한 뒤라 무를 수도 없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깬 탓일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판매자를 누르고 거래 환불 분쟁 절차를 밟아 신고했다. 계속 채팅 알림이 올 것 같아 판매자 역시 차단했다. 소년의 사정을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정당한 거래였다.
  연수의 집요한 선택은 늘 주효했다. 잘 돼 가? 아니. 너는? 전에 내가 말했었지? 썩은 나무 말이야? 응. 아무래도 그걸로 밀고 나갈까 봐. 나무 둥치? 응⋯. 작품에 기선을 잡은 연수는 몸 전체가 상기돼 보였다. 썩은 나무를 옮기며 생긴 연수의 팔 근육마저 작품 같았다. 우리 집 마당에 썩은 나무로 꽉꽉 차 있잖아. 엄마 아빠가 냄새난다고 눈살을 찌푸려. 연수가 하는 말들이 도통 내 귓가에 머물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대화가 비주얼 라이징이 된다면 말들은 블러 처리가 되는 거였다. 솔직히 연수가 부러웠다. 콘셉트도 확실히 정해졌고 주제를 향해 여러 다양한 아이디어로 하나하나 완성을 향해 갈 게 분명했다. 거기에 위트만을 한 방울 떨어트려 준다면 끝나는 일이었다. 이미 연수는 마 쉐리(ma chérie)로 불리는 교수의 사랑받는 제자였다. 3학년 과제 때도 칭찬을 도맡아 받았다. 문득 원룸에 움직이기도 불편하게 차지하고 있는 박스 안에 갇힌 소품들이 떠올랐다. 이것저것 손대다 박스에 갇히고 만, 켜켜이 일그러져 쌓인 박스에 담긴 작품들이 빛을 볼 수나 있을까. 담당 교수는 주제를 정해 설명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러 번 바뀐 소재에 대해 조금은 우려를 드러냈다. “우리 피차 알잖아, 뛰어넘지 못할 바에는 시도를 안 하는 게 낫지?” 담뱃갑 소재도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 금연과 환경문제를 연상하게 만든다고- 마땅치 않아, 라는 말만 거듭했다. 교수의 고개는 연신 갸웃거렸다. 오늘은 타깃이 나구나. 적절한 모티브를 활용 못할 때 비판을 즐겨 하는 교수의 입을 떼는 데 한몫거든 셈이었다. 재료 소재부터 아웃되다 보니 가만히 서 있는 데도 두 발은 영화 〈겟 아웃〉의 주인공처럼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았다.
  걸터듬다 보면 반드시 찾게 돼 있어. 그 과정은 꼭 필요한 거야.
  그래도 교수는 자신의 교수다움을 뽐내고 싶었는지 대화의 끝에 불쑥 마지막 말을 집어넣었다. 볼품없었던 누더기 천에 꽤 볼만한 천을 기워 넣은 듯 어색했지만 자꾸만 마지막 말을 곱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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