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마지막 선물

가족의 풍경

by 진주아지매

동생이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선물,

그 200g의 무게에 대하여



***

"어... 커피가 얼마 안 남아서 그냥 다 그라인더에 갈아야겠네."

중얼거리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커피는 내가 내리겠다고 했다.

"그래! 커피는 당신이 맛있게 내리잖아~"


'이게 마지막 커피구나... '


뜨거운 물을 부으면 여전히 기포가 뽀얗게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맘이 애잔해진다.



4월 9일, 동생의 전화가 왔다.


"누나! 커피는... 커피는 받았... 어요?"


하는데 발음이 뭉개지고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휠체어 위에서도 목소리만큼은 생생했던 동생이었는데, 갑자기 변해 버린 그 목소리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갑자기 왜 그렇게 안 좋아졌노?"

"이틀 전까지... 안 그랬는데 어제...부터 이래요... 커피를 보냈는데 누...나가 받았는지 연락이 없어서... "

"아! 그게 방송국에서 온 게 아니었구나! 네가 보낸 거였어?"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mbc 라디오 프로스램인 여성시대에 사연이 방송되고, 선물로 박이추 커피세트가 도착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원두 박스가 하나 더 배달됐다.


'이번엔 선물이 두 박스나 왔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게 동생이 보낸 커피일 줄은 정말, 몰랐다.



동생에게 택배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늘 내가 무언가를 챙겨 주는 쪽이었지, 동생이 보낸 적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상태가 아주 나빠진 뒤였으니, 무언가를 주문해 보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 다리와 왼팔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겨우 기대어 있던 사람. 등받이 베개 하나 스스로 고쳐 놓지 못해 아들의 몸을 빌려야 했던 동생이, 유일하게 움직이는 팔 하나로 화면을 누르고 원두를 주문했을 그 모습을 생각한다.


동생은 내 블로그를 통해 커피 내리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초창기에 얼기설기 써 올린 '커피 초보를 위한 드립커피 내리기' 글을 그대로 따라 했더니 되더라면서.


병을 얻은 뒤 동생은 커피 애호가가 되었다. 그라인더와 드리퍼, 커피주전자를 구입하며 나보다 더 제대로 커피를 내려먹기 시작했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커피 마시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다 보니 맛있는 원두가 있더라면서, 그걸 누나한테 보냈다는 거다.


"누나가 좋아하는 게이샤는... 너무 비싸서 못 보냈어. 이번에 보낸 그 커피도 꽤 괜찮거든. 200그람에 25,000원인데... 맛이 괜찮을 거야."




동생은 다음날 아침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고, 입원한 지 8일 만에 눈을 감았다.


가슴이 아파 동생이 보낸 커피는 한동안 개봉하지 못했다. 방송국에서 받은 것만 마시며 시간을 미뤘다.


그러다 지난주, 결국 개봉했다.


시골 갈 때마다 어머니 커피를 꼭 챙기는 남편을 아는지라, 남편과 시어머니 몫을 텀블러에 담은 뒤 나는 일부러 커피를 조금 남겨놓았다.


'오늘은 내가 마셔야겠다.'


작년 위 시술 이후 자극적인 음식과 카페인을 가능한 멀리 하며 살았다.

커피광이었던지라 정말 끊지는 못하고 디카페인 드립커피를 매일 한 잔씩 마시며 아쉬움을 달래긴 했지만, 동생이 보낸 커피는 카페인이라는 이유로 개봉하던 날 한 잔 마셨을 뿐 손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마지막 커피를 내렸다.

이 커피만큼은 내가 마셔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동생이 서운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동생이 보낸 커피는 로스팅한 지 37일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신선하고 깔끔했다.

나는 텅 빈 공중에 대고, 마치 곁에 있는 동생에게 건네 듯 나직이 읊조렸다.



'석아, 커피 참 맛있다!'




작가의 이전글치매 그리고 기억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