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아버지가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늙은 개처럼 취급해서는 안돼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그렇다고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필요하다고."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오늘 부장님과 개인 면담을 하는데,
"이번 연도 승진은 자리가 없어서 안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들었다.
순간, 이 대사가 떠오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었어. 마음대로 안되는거지.'
그날 사무실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고,
회의실에서는 웃음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나만,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나지리 못했다.
컴퓨터 화면이 꺼질 때까지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서 밀러가 1949년 발표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세일즈맨으로 승승장구 하던 윌리 로만의 이야기다.
60대가 넘고 미국에는 대공황이 오면서
윌리의 사회적 입지는 좁아져만 간다.
월급도 받지 못하고, 세일즈 수수료만 간신히 받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아들들에게 희망을 걸지만, 두 아들은 사회 부적응자로
윌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윌리는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다.
위의 대사는 윌리의 아내인 린다가 두 아들에게
아버지에게 다시 예전처럼 애정있게 대해주길 부탁하면서 말하는 대사이다.
내가 이 작품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윌리의 몰락이 극적이이서가 아니었다.
윌리가 끝까지 '성공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서 6년째 만년 과장이다.
동료들과 바로 아래 후배들도 모두 승진했는데, 나만 그자리였다.
작년에는 어쩐 일인지 인사 고과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승진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기대를 완전히 접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이나 울적했다.
집에 돌아와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다시 펼쳤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윌리의 모습에
다시 마음이 울컥했다.
아마 나의 성공에 대한 욕구와 좌절 경험이
윌리와 닮아 있어서일 것이다.
20대의 나는 뭐든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여러 도전을 했다.
30대에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커리어 우먼이 되어
당차게 세상을 주무를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삶은 그때 꿈꾸던 모습보다 훨씬 소박하다.
그리고 이제는
직장에서의 '승진'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아들의 성공을 바라면서 보험금을 위해
자동차를 몰고 그대로 돌진한다.
'성공'을 추구하던 남자가, '자신의 성공'이 깨지자
'자식의 성공을 위해' 인생의 끝을 향해 가는 허무함.
그 허무함이
오늘은 유난히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날 나는,
성공이 멀어진 게 아니라
내가 얼마나 그것에 매달려 있었는지를 처음으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