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7월
몇 주전 어느 주말에 몰래 제주도에 다녀왔다. 심심찮게 일어나는 심술처럼 그냥 문뜩 몰래 다녀오고 싶었다, 가족도 모르게. 좋아하는 책방에서 좋아하는 가수가 소규모 야외공연을 한다는데 안갈수는 없었다. 책방은 본래 종로구 계동에 있다가 6년전 쯤 제주 동쪽 수산리라는 조그만 마을로 이사를 갔다. 처음에는 도로에 접한 조그만 건물만 있다가, 언제 다시 가보니 계동에 있던 카페가 책방 옆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지금은 책방 뒷쪽의 건물을 고쳐 레코드 샵으로 쓰고, 책방과 카페와 레코드샵으로 둘러쌓인 조그만 정원이 생겼다. 그 정원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다. 이미 벌써 몇번의 조그만 공연을 했고, 이번이 아마 세 번짼가 네 번째의 공연이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비행기를 타고 책방으로 향했다. 언제나 좋은 책을 너무 많이 준비하기 때문에 내 통장에 남아있는 돈과 가방에 남는 공간을 생각하며 고심하며 책을 고르는 사이 책방 뒷편으로 보이는 창문으로 공연 준비가 한창인 중정과 파라솔을 피기 위해 애를 쓰는 사장님이 보였다. 책을 다섯 권 구매했다.
장강명 작가의 [팔과 다리의 가격]
[자기 감수성으로 쓴 열두 편의 환경 에세이]
[근대여성작가선]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사샤 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추리고 추린 책이기 때문에 한 권 한 권이 기대가 되지만 그 중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뻗친 책은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과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이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다치고 죽기를 반복하던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고통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씌여 있다. 나는 건축과를 졸업했고 건축가를 하고 싶다. 어느 직업이던 '노동'과 관련이 있겠지만 건축가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동자'에게 '노동'을 맡기는 사람이다. 건축가는 노동을 구체화하고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과 소개글을 보자마자 사야한다고 생각했다. 호기심으로 손을 뻗은 것이 아니라 한 종류의 의무로써 손을 뻗쳤다.
다른 하나는 [코스모스]의 저자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영화제작자 앤 드루얀의 딸인 사샤 세이건의 책이다. 나는 책을 고를 때 책의 아무 한 곳을 펼쳐 조금 읽어보고서 짧은 편견을 내린 후에 '음, 괜찮아 보이는 책이군' 혹은 '이딴 생각을 하다니, 다른 부분도 궁금한걸' 같은 생각이 들면 구매한다. 책을 집어올리기까지는 제목과 표지디자인, 두께, 글씨의 크기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니까 내게 들려 가판대까지 가는 책들은 수많은 우연을 통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샤 세이건의 책 또한 표지와 제목과 글씨 크기 등에서 합격하고 어느 한 부분을 펼침 당했다. 그 곳에서 내가 마주한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작은 존재이고, 작은 존재들을 위해야 하며 서로 사랑해야해. 세상에 발생되는 많은 문제들은 사랑을 통해 해결될 수 있어'.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고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내가 대충 이해한 내용은 그러했는데 그러한 것에 주저없이 손을 뻗쳤던 이유는 그 문장이 2년 전 쯤 내가 쓴 일기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가 조커를 제치고 예매순위 상위권에 올랐던 그 때의 일기다. 그때보다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했지만 그 때의 갈등은 단지 간지러움에 불과했구나를 느끼는 요즈음이다. 사랑은 다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