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6월 12일
무슨 선물을 해가야할까 선물은 받은 사람이 마음에 들 것을 해야함이 마땅한데 이미 죽은 사람의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할 수 있는걸까 하는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일수도 있겠다, 는 생각을 했다.
1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 추모원에 도착했다. 주차장이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고,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려다 폭이 너무 좁아 실패하고 멀고 넓은 주차장이 차를 세웠다
김민준을 찾으러 왔다고 하자 직원은, 김성민이 담당하셨던 분 맞으시죠 라고 되물었다. 김성민이 누구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다고 했다. 아니면 다시 물으면 되지 하고.
1층 23번 실, 약도를 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프랑스의 공동묘지와는 다른 편리함이다. 곧 있으면 키오스크도 도입되지 않을까, 교보문고에서처럼 가는 길이 약도로 그려진 영수증이 나오는. 5-5, 밑에서부터 5번째 칸들을 보자 금방 보였다. 그대로인 얼굴. 가족들과 찍은 조그만 사진들이 나무 액자에 담겨져 납골함 앞에 세워져있다.
32년생. 36년생, 25년생. 30년생 47년생 42년생 사이에서 95년생 친구가 있다.
너무 젊어
400개의 유골함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이여서,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다들 그 정도의 연령대. 30년생부터 50년생 정도. 민준이가 막내겠구나 싶었지만 00년생도 있었다. 91년 생도 88년생도 89년생도 있다.
30년생정도의 분들 유골함 주변에는 손주들이 알록달록 쓴 편지가 하나씩은 있다. 편지는 다들 비슷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해요
슬픔보다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이. 그 나이즘에는 사랑이 생각보다 가볍기에 가볍게 사랑한다 쓴다. 그리고 그 때의 시간을 알게해주는 옷차림과 분위기의 사진들.
50년대가 넘어가면 사진에는 별 차이가 없다. 어느 실에는 누가 고인인지 모를 정도로 여러 사진이 들어있는 곳도 있다. 슬램덩크 피규어가 들어가도 있고 가오나시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민준의 죽음을 안 것은 21년 2월 운구를 할 때이다.
사실 도착 전까지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가보고 싶었기에 가는 것일 뿐. 가는 것도 선물도 편지도 죽은 이는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추모원이 가까워지자, 이 길로 그의 타버린 뼈의 잿더미가 항아리에 담겨 지나갔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쓸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