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이가 나에게 다시 연락한 것도 10년 만이었고, 항암 치료 2년간 받다가 포기하고 나를 찾았다는 사실을 숨긴 채 연락한 거였으니까.
나야 서울에 있었다지만 같은 부산에 살면서도 수정이가 한 번 잠수 타면 한 해를 넘기는 건 기본이었으니 우린 모두 여전히 수정이가 잠수 타서 어딘가에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해킹 당하던 날 순순히 수정이가 떠났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나는 두 번을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통곡했다.
곧 다가오는 4월 1일은 수정이의 생일이고, 5월 26일은 수정이의 기일이다.
오늘 6장 '인연'이라는 주제에 맞춰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고민하다 나에게 누구보다 많은 추억과 감정을 남기고 떠난 수정이가 떠올라 오랜만에 추억을 살펴본다.
인연이란, 연 날리기와 비슷한 듯하다.
너무 멀리 날리면 전봇대나 전깃줄, 지붕이나 나무에 걸려버려서 당기기 힘들어지고 끊어지기도 한다.
너무 낮게 날리면 툭 툭 바닥에 떨어져 버리고,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바라봐 줘야 한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안되고, 날려 둔 채로 내버려 둬도 안 된다.
당기고 느슨하게 풀어주고를 반복하며 적당한 밀당을 해야 하는 것이 꼭 연 날리기와 같다.
그래서 힘들다.
나는 유독 어린 시절부터 가족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전교생 따돌림 당할 정도로 전교생 중에 가장 가난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질 못 했다.
그런 나에게 수정이가 중학교 2학년 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남자애가 나를 좋아해서 누군가 궁금해서 왔다는 사실을 숨긴 채 나랑 친구하고 싶어서 먼 반에서 왔단다.
그땐 처음으로 내게 친구 하자고 해준 수정이가 너무 좋아서 집착을 하게 됐다.
수정이는 다른 친구들이 있었지만 내겐 없었으니 수정이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하려 했다.
지친 수정이가 절교하자고 말을 하며 그제야 "멍게(별명)가 너 좋아한다길래 얼굴이라도 보려고 수소문해서 찾은 것뿐이다. 친구 할 생각도 없었는데 네가 하도 해맑게 웃길래 친구 하자 했던 거다"
그 말을 듣고 화를 내며 펑펑 울었다.
우는 내 모습에 당황했는지 미안하다며 사과해서 화해하고 친구로 지낼 수 있게 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내가 알게 된 모든 친구들도 수정이를 통해서 알게 되거나 같이 친해진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먼저 다가간 인연이 없다는 것이다.
늘 인연을 이어줬던 수정이는 이제 없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인연 맺기'를 위한 도전을 시작했고 그 시작이 자원봉사를 나가는 것이었다.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연 날리기도 못하는 내가 인연 맺기가 더 힘들겠지만.
사람이 싫고 두려워도 사람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니.
겁 난다고 방구석에 홀로 박혀 살 순 없다.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장아장 걸어서 길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넘어가 보려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아무리 싫어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타인도 존재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고.
고로 타인이 존재해야 나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6장이 왜 '인연'의 글이어야 하는지 타로를 다루는 사람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사실, 작가들 중 가장 무모하게 브런치 스토리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일 게다.
고작 6장의 글만 준비된 채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앞서 쓴 5장까지의 글과 10장의 글은 작년에 타로 메이저 숫자에 맞게 응용해서 글 쓰다 말았던 걸 이곳에 올렸다.
10장은 10번 운명의 수레바퀴 카드의 의미에 맞게 써 둔 글이기 때문에 순서를 바꿀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화, 수, 목, 금 주 4일 글을 올리겠다 다짐하고는 오늘 글 내용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무모한 내 글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진 모르겠지만 준비된 글도 없으면서 주 4일 글을 올리고, 주 5일 영상 촬영과 편집을 해야 하고 간간히 상담도 해야 한다.
그리고 주말마다 자원봉사도 나가야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굳이 주 4일의 글을 쓰기로 결정한 것도 사실 계획에 없던 거지만, 처음 이곳 브런치 스토리 글을 보던 중 화수목금 연재하는 작가님의 글을 보고 '아, 나도 이 날에 맞춰서 올려야겠다'는 즉흥적인 생각으로 결정한 터라 무모한 약속을 '나'와 한 셈이다.
내 글을 누가 기다리겠냐만, 내가 작가로서 인정받길 바랐던 수정이는 기다릴 거란 기대와 바람으로 오늘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