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T STOP THE _____ !

2025-1 10주차 여영추 <헤어스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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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더위 속 축축 처지는 머리를 구원해 줄 필수품, 헤어스프레이! 여름마다 이마와 딱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 앞머리를 견디다 못한 나는, 얼마 전 헤어스프레이를 구입했다. 시원한 치이익- 소리와 함께 둥그런 모양으로 고정되는 앞머리를 보는 것은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괜히 여름과 맞서 싸울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까지 만들어준다.

영화는 이렇게 제목인 “헤어스프레이”처럼 시원한 쾌감도 뜨거운 용기도 지니고 있다. (정말로!)


“Good Morning, Baltimore!”


1960년대 미국 메릴랜드 주의 항구도시 볼티모어. 그곳에 살고 있는 키가 작고 남 들보다는 조금, 아니 많이 뚱뚱한 몸을 가진 소녀 트레이시 턴블래드는 춤을 춘다. 헤어스프레이를 잔뜩 뿌려 고정한 머리와 함께 신나는 음악이 들리면 언제, 어디에서 라도 당당하게 몸을 흔들고, 놀림을 받아도 굴하지 않는다. 친구 페니와 꿈의 무대 <코니 콜린스 쇼> 오디션에 참가한 그녀는 춤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인정받아 결국 쇼의 고정 출연진이 되고, 의상실 Hefty Hideaway의 모델로도 고용된다. 밝고 당찬 성격은 같은 쇼에 출연하는 인기 멤버 링크까지 반하게 하고, 그녀를 방해하는 여러 차별주의자들에게 평화롭게 맞서도록 한다. 그렇게 명랑하게만 보이는 트레이시가 자 신이 마주한 인종차별, 외모지상주의 등 현실의 부조리함을 타파해 나가며 영화는 끝난다.


“There’s a light in the darkness, burning bright showing me the way”


1960년대의 미국은 극심한 인종차별로 인한 흑인민권운동, 냉전체제, 노동자문제, 빈부격차의 심화 등 중첩된 문제들로 인해 허덕이고 있었다. 농담으로라도 즐거운 때라고 평가할 수 없는 이 시기에,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볼티모어에서, 신나는 음악과 해맑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뮤지컬 영화라니. 개인의 성장 드라마나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헤어스프레이는 이렇게 무거운 주제들을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로 사람들에게 스며들게 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Big, Blonde, and Beautiful”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야기를 ‘여성’들을 통해 풀어낸다는 것이다. 헤어스프레이에는 여러모로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주인공 트레이시, 엄마 에드나, 레코드 가게 주인인 흑인 여성 메이벨(모터마우스)을 살펴보자. 메이벨이라는 인물은 <코니 콜린스 쇼>의 ‘흑인의 날’ 진행자인 동시에 레코드 가게의 주인이다. 차별은 점점 더 심해지고, 결국 흑인의 날마저도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음모로 폐지될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인종분리 철폐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다. 흑인들의 평화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며, 뒤로 숨기보다는 미래를 위하여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는 남성배우가 연기할 정도로 큰 체형, 사회가 추구하는 ‘여성상’에 부합하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아주 오랜 시간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딸의 도움으로 용기를 얻고 세상과 마주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인물로 변화한다. 이런 성인여성들과 함께하는 주인공 트레이시는 말 그대로 특별하다. 영화를 처음 감상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트레이시와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었다. 인종차별을 넘어, 흑인과 백인을 철저히 구분하는 인종분리가 만연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주인공 백인여성 트레이시는 흑인들의 춤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그들의 시위에도 참여할 만큼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를 동등하게 대한다. 또한 패션에 열광하며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시대임에도 사람들은 얼굴만 예쁜 악역보다는 트레이시의 다른 매력을 알아보고 그녀를 ‘당연히’ 사랑한다. 이 당연함은 누구라도 차별적인 시선과 코르셋을 들이댈 수 없도록 한다.


“YOU CAN STOP THE BEAT US!”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예쁘고 날씬한 백인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세 인물 외에도 여러 여성캐릭터들이 서로 연대하고 함께 싸우며 각자 자신을 옭아매는 큰 억압에서 벗어나려 저항한다. 저항하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하고, 또다시 춤춘다. 영화를 감상하는 그 누구라도,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 스텝을 밟는 이 여성들의 발을 묶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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