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 10주차 여영추 <모노노케 히메>
스튜디오 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는 ‘환경주의’ ‘여성주의‘ '반전주의'라는 세 주제를 중심으로 많은 작품을 만들어 왔다. 1997년에 개봉한 '모노노케 히메‘는 하야오가 추구하는 세 요소가 모두 드러난 걸작 중 하나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자연과 자연의 분노,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소년과 소녀의 모험이야기이다. 인간에게 버려져 자연에서 자란 ‘산’은 인간에도, 자연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하나 그렇기 때문에 산은 그 중간에서 자연의 원대함을 보여주면서도 인간과 자연이 함께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작품의 배경은 12~14세기 중세 일본으로 여성 인권이 매우 낮은 시기이다. 그럼에도 작품에선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여럿 등장한다. 그중 작품의 여성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타타라 마을의 지도자 ‘에보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보시는 뛰어난 무예와 지략을 지닌 인물로 갈 곳 없는 여성과 노인, 병자들을 데려와 기술을 가르쳐 마을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타타라 마을은 약자들이 차별받지 않으면서도 강인하고 풍족한, 마치 유토피아와도 같은 곳이다. 이런 마을을 만든 에보시는 현대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훌륭한 지도자이지만, 동시에 자연에게 있어선 최악의 파괴자로서 군림한다.
모노노케 히메는 에코 페미니즘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반적인 작품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 작품에선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이 동시에 실현되지 않는다. 에보시는 여성들을 보호하고 스스로 살아갈 힘을 주었지만 그 수단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택했다. 즉, 에보시는 페미니즘의 수호자 이면서 자연의 적대자이다. 이런 지점에서 모노노케 히메의 지향점은 일반적인 에코 페미니즘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여성과 남성, 자연과 인간, 자연과 전쟁과도 같은 얼핏 대립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각각의 독립적인 존재로서 다룬다. 그렇기에 우리가 흔히 대립하여 생각하는 것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고 있다. ‘산’은 자연을 상징함과 동시에 자연을 구원하는 인간 여성이다.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은 자연과 여성의 궤를 일부 함께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과 전쟁은 반대되는 것이 아니기에 여성성과 평화는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남성성이 전쟁과 폭력을 상징하지 않는다. 동시에 여성과 남성 또한 반대되는 존재가 아니므로 남성이 인간 문명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작중 인간을 상징하는 인물은 여성인 에보시이다.) 이 세계에선 페미니즘을 실천한다 해도 그것은 생태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될 수 없기에 결국 둘은 각각의 독립항으로서 남게 된다.
그럼에도 모노노케 히메의 근본은 에코 페미니즘과 궤를 함께한다. 작품은 여성과 남성을 반대되진 않지만 각각의 구분된 존재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남성은 인간-man을 여성은 세계임을 보여준다. 이는 남성들이 전쟁에 나가 죽어갈 때, 여성들은 용광로를 돌리는 등의 생산성-생명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마을(세계)의 원동력이 되는 철을 생산하는 것은 여성이며 위협당한 마을(세계)을 지키는 것 또한 여성이다. 자연의 구원자(산)도 문명 세계의 구원자(에보시)도 모두 여성이다. 더불어 일본의 정신적 근간이 되는 ‘신토(神土)’라는 애니미즘 사상을 고려한다면, 자연-여성은 결국 세계의 근원이자 근본이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노노케 히메는 에코 페미니즘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코 모노노케 히메는 온전한 에코 페미니즘이 될 수 없다.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며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발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단순히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 인간은 자연-세계의 창조자가 아닌 발견자에 불과하며 이에 속한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자연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더 고차원적인 원리로 존재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빌려왔을 뿐인 자연을 원래 있던 형태로 돌려놓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존재 원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환경, 여성, 반전 이 세 주제를 넘어 우리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을,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영화가 당신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