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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힐데 Jan 03. 2023

그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내가 목표했던 사무관을 달았단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으니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가시내야, 잘 사냐?”

“누우구우세요?”

“오메 내 목소리 이져부렸냐! 첫사랑 목소리를 잊어먹고 염병하네이잉”


그때야 어렴풋 얼굴이 떠 오르자,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 안에서는 받으면 안 될 전화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 너무나 사적인 전화라.


“니 이야기는 계속 보고 있시야, 잘 살고 있어 좋드라! 그란디, 오늘은 꼭 니 목소리를 듣고 잡아 전화했다. 나는 니 덕에 공돌이 돼서 엄마아부지한테 효도했시야, 그라고 작년에 사무관 달았다…염병하네, 오빠한테 니는 내가 니보다 두 살이나 많고만 한 번도 오빠라 안 불렀시야, 나도 얼마 안 남았시야, 퇴직하고 당구장이나 하믄서 놀라고 상가 하나 장만했다. 그란디 자야스토리에 나도 등장하냐? 한 페이지는 들어가지 않겄냐? 이왕 쓸 거면 좋게 써줘라 이잉?”

“와! 무섭나?, 등장시킬지 안 시킬지는 생각해 볼팅께, 잘 살고 축하하고…”


아주 오래전에 사귄 남친, 우여곡절 끝에 서로 다른 남자,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전 남편은 그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결혼 11년 차에 이혼 같은 별거를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을 떴다. 그는 한 참 늦게 결혼을 해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었다.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아 내가 목표했던 사무관을 달았단다. 나보다 6개월 늦게 임용되었는데, 그것도 그곳에서 작년에…


순전히 나의 못된 성깔을 탓해야 할 것이다. 적당하게 넘어가면 좋을 것을 다름?, 아니, 아닌 것에 대해 반색하며, 혼자만 의기 충천하여 정의에 불타는 여신마냥, 동색이고 싶지 않은 부류의 인간들과는  죽었다 깨어나도 함께 하지 못할 성깔 말이다. 아님 누구에게 인정받는 것에 익숙지 못한 나의 기질, 팔자일 수도 있고.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알량한 정의감으로 패거리에 대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나를 공격하는 모든 이에 대해 절대적으로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의 몸부림일 수도 있고.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내가 평소에 많이 사용하는 말이란다)은 잘못은 내가 먼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바닥, 조직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것은 적당하게 그들의 말에 고분고분했으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반론을 제기해서 말썽을 부린 것에 대한 그 조직 패거리들이 삼삼오오 암묵적으로 눈짓을 해 가며 따를 시키는 것 말이다. 대부분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무기 삼아 이상한 혹은 특이한 사람으로 매도한다는 것이다.(사실 개중에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눈빛과 마음결로 느끼지만)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이면 서로가 합리적?으로 처리했을 것인 만, 그때는 그리하지 못한 조직, 그 조직에 반항한 나였다. 여기에서 나는 또 나 이후의 희생자들이 없길 바라는 정의감에 부조리에 저항했노라고 변명하는 것일지 모른다.



“미안한데요, 정말 많은 일을 하셨는데, 이 건은 어쩔 수 없이 훈계처분을 했어요, A업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B업무를 처리하셨더라고요, 해서 각각은 주의경고인데, 연계한 업무에 고의성이 더해져서 중과처분을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일주일 이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복잡해져요!”

죄송해야 했다. 당연히, 그래서 난 죄송한 건 맞고 당연히 이의신청하겠다고 했다. 이의신청 이유는

1. A업무는 내 업무가 아니며, 같은 팀 동료의 업무였고, 2. B업무 처리는 동료가 잘못한 A업무에 대해 어떠한 조치든 취해야 했으며, 그래서 처리한 사항이니 내 업무에 대한 처분만 받겠다고 했다.


그러자, 직장을 옮겨 온 지 얼마 안되어 꼴랑 몇 알지 못하는 직원들이 동원되어 전화가 왔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라고, 아직까지 감사 후에 잘못된 감사에 대해 이의 신청한 적이 없다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 둥…,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이면 적당이 넘어갔을까???), 기득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하지 말라는 암시였다. 그 부당한 상황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지금까지 꼬리표를 달게 한 상황이 되었다(그들은 지금 그렇게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인물정도? 이것도 그들 일부는 존재감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개무시하겠지만, 이 이야기는 내 입장에서 기록하는 것이니까). 그 후로 그 조직원?(이것은 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니 내가 소설 쓴다고 생각은 말아 줬으면 한다)의 눈길을 나의 촉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훗날, 대표가 바뀌어 지인이 나를 추천하자 그 조직의 영수가 되는 작자가 “다른 사람은 다 돼도 아무개만은 절대 안 된다”라고 했다니 이것이 반증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이후의 일들이 더 쎄서 그렇지만, 발단은 이 사소함으로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사소했지만 그들의 철옹성 같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해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업무분장도 확인하지 않고 행정처분 한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으며, 행정처분을 내리기 전에 업무 담당자의 사실확인(조선시대에도 본인 확인받기 위해 주리를 틀었지 않는가!)을 했어야 하는데도 감사받은 줄도 모르고 있었던 터라 이는 사실상 본인 확인 없는 행정처분에 대한 효력도 없는 사항이고, 솔직히 주위 사람들을 동원해 회유하는 전화를 받으면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상대를 설득하고자 하는 것에 위압감이 느껴지네요”(사실 이때부터 긴 싸움이 예고 되었는데 미쳐 깨닫지 못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 2주 지나자, 내 업무에 대해 주의경고장이 왔다. 그들은 그때부터 나를 다른 종으로 분류를 하는 듯했으며(나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으나, 위에서 확인했던바 대로 꼭 그렇지마는 아님을 다시 밝혀둔다), 나는 꿋꿋하게 버티고 여기까지 왔다.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지엽적이고 폐쇄적인 현재를 반영하고 있는 현주소로 현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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