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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힐데 Jan 21. 2023

우리큰엄마박항심

건빵간식

사전에는 ‘배추_끌텅이라는데 우리 시골에서는 ‘배추끄덩이‘라 했다. 또는 배추 꼬랑지라고도 한다는데, 무튼 우리는 배추끄덩이라 불렀고, 신의도 섬마을의 그 배추끄덩이는 한 겨울에 무와 같이 우리의 입을 심심 찬 게 해 주었던 간식거리였다. 눈 덮인 텃밭에서 이상 굵은 것을 찾아내 칠 라면 얼마나 오지던지.


 “이상 먹것는디?“


하시면서 낫을 칼 삼아 배추끄덩 껍질을 볏겨 싹둑 잘라 주시던 그 손길, 옛날이야기라야 구질구질하겠다지만 지금 다시 곱씹으며 향수를 불러낸다. 어느 님이 사진 올려 퀴즈를 낸 통에 또 호랭이 담배 묵던 시절이야기가 되살아 났다.


간식거리로 말하자면 또 건빵을 아니 말할 수가 없다. 나는 미취학이었고, 내 기억으론 사촌 오빠들 가방에서 건빵이 나왔다. 국민학교는 가방 없이 책보자기를 허리춤에 매달고 다녔응께 아마도 중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운데 오빠는 이상 주먹질을 해서 다른 친구들 몫으로 주어진 몫이던지 또 배급 후 남은 것은 자신이 다 챙겨 왔지 싶다.

“내놔! 내놔!, 안 내놔? 콱! 뒤지고 싶지 않으면 내놔!”

이렇게 말할 필요도 없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쥐고 상대의 눈앞에다 대면 상대는 눈을 내리깔고 분하고 억울하지만 자신 몫의 건빵을 스스로 오빠 가방에 넣었을 것이다.


온 식구의 간식 겸 한 끼 식사가 될 정도의 건빵을 가지고 온 사촌 오빠는 얼마나 의기양양했던지. 그 덕에 누군가는 주눅 속에서 자존감이 곤두박질쳤을 것이고, 하기야 그때는 자존감 같은 말도 없었다. 무튼, 건빵은 쇠죽 쑤던 안방 무쇠솥에 자리하게 되는데,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우리큰엄마박항심 여사는 그 무쇠솥에 건빵을 차곡차곡 쌓고 달착지근하면서도 쌉싸름한 사카린 물을 만들어 흩뿌렸다. 그리고 한 소꿈 불을 지피고 나면 그 무쇠솥의 건빵은 부풀어 올랐고, 주걱으로 한 그릇씩 떠서 우덜에게 배급이 되었다. 그 이국적인 맛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나는 그 건빵 맛 이후로 밀가루의 변신은 지존이라고 생각한다.


배추끄덩이 사진 덕에 메말라가던 서정이 다시 되살아난 듯하다. 그리고 그 기억들로 내 유년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아직 다 못한 이야기들이 세상 속에서 유영하고 싶다고. 나를 정리할 시간이 많지 않음에 대한 조급함도.


#우리큰엄마박항심, #배추끄덩이, #사촌오빠와건빵, #라일라의고해, #브런치매거진_인간이란참, #브런치작가_나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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