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거, 그것은 그냥 사는 것이었다.

약장수 딴따라가 주던 시골 여름밤의 위안

by 나힐데

보라 모든 날들이 기쁜 날이라면 모두는 심장이 터졌을 것이다. 그렇듯 모든 날들이 슬픈 날이라면 모두는 자신의 무덤을 만들어 스스로 잠들었을 것이다. 자야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기쁨과 슬픔의 시간이 등가 한다는 것을 일찍 깨우쳐 그 많은 날들이 평범했다. 산다는 것, 그것은 그냥 사는 것이었다.


밤의 빛이라고는 오직 달빛뿐이었다. 일찍 저녁을 먹고 이모는 자야를 앞 세우고 달빛에 환한 황금 보리밭으로 향했다. 모내기를 해서 한 줄로 나란히 뭉텅이로 서 있는 나락(벼)에 비해 보리는 흩뿌렸기 때문에 수확철 낫질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모는 보리 베는 낫질을 국민학교 3학년인 자야에게 알려주면서 조심하라고 타일렀다.


“낫질에도 그냥 막 하믄 안 되아야, 손아귀로 보리를 이만큼 잡고 땅 쪽 가차이 낫을 대야 해야, 그라고 낫을 살짝 돌리믄서 해야 헌다 잉, 알았제”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가! 보리를 움켜잡고 살짝 돌려 베는 낫에 자야의 왼 새끼손가락은 먹잇감이 되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자야가 할 수 있는 것은 피를 보면서도 오른손으로 새끼손가락에서 피가 나오지 못하도록 보리대신 움켜 잡는 것이 다였다.


그럼에도 긴 시골 여름밤은 자야에게 많은 위안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 년에 한 두어 번씩, 보리 수확이 끝날 때 즈음 찾아오는 약장수의 연극 판이 벌어지면 남녀노소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약장수들의 연극을 보기 위해 모두 모였다. 커다란 천막 안은 또 다른 세상이었고 자야는 그 천막 안에서 흥부놀부도 알았고 장화홍련도 알았다.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무섭다는 것도.


우물에 빠져 죽은 장화홍련의 이야기 한토막이었는지, 장화홍련에게 모질게 한 의붓 엄마가 자신이 데리고 온 바보 아들이 달빛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일렁이는 우물에서 흐물거리자 장화홍련이라며 소스라쳐 놀라 뒷걸음치며 넘어지자 자고 있던 호랑이가 바보 아들의 팔을 물어뜯어 피가 흥건했던 연기는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장면이었다.


또,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텔레비전을 보기 위한 밤마실은 어떠했는가.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를 보고 돌아오는 밤길은 왜 그리 무서웠는지, 조그마한 빛이라도 찾아야 발을 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옥녀가 경대를 들여다보면 거울에 죽은 엄니가 귀신으로 나온 것처럼 여기저기서 옥녀 어매가 나타나 자야를 옥죌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밤마실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사촌동생을 업고 행여 등에서 잠이라도 들까 봐 동생의 엉덩이를 꼬집어 잠이 들지 않도록 한 일들은 두고두고 자야에겐 혼자만 아는 비밀이었다.


그런 날들 뒤로 드디어 자야에게 욕망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와 또래의 처지를 비교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닌 자야에게도 엄마가 있어서 엄마와 함께 살고 싶은 욕망.


“니는 엄마도 없냐, 그랑께 느그 이모랑 살제, 그라믄 고아여야! 얼레리꼴레리 니는 고아랑께!”


“고아 아니여야, 우리 엄마는 목포에 이씨야, 공부도 못하는 것이, 콱 죽여불랑께!”


“죽여봐, 죽여봐, 인자 사람까지 죽이믄 좋겄다. 잉, 전학 간다메, 엄마가 없응께 전학도 못가는거 아녀?”

“얼레리꼴레리 목포네는, 고아라네, 고아라네,…”


지난 방학 때 엄마가 한 약속,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또다시 진도에 홀로 남겨진 자야는 친구들에게 거짓말 쟁일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에게 엄마한테, 목포로 전학 간다고 자랑질했던 자야는 고개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어두운 곳을 찾아 숨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 엄마, 나도 엄마랑 살고 싶당께…”


외치며 자야는 사람이 없는 벌판을 지나 무작정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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