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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우울녀의 MBTI

나도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다.

by 정말빛

사람들은 누군가와 동질감을 느끼고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물론 나와 같이 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이나 시절의 유행 따위에 관심 없는 사람도 많다. 언젠가부터 혈액형보다 MBTI의 분석이 일반화되고 있다. 우리가 어릴 적만 해도 혈액형으로 성격이 맞는 사람을 규정짓기도 하고 B형 남자는 피곤하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B형으로 상극의 궁합니다. 어느 정도 믿어야 하나 싶다.


나이가 들었다고 가끔 느끼게 되는 경우는 내가 알고 있는 아이돌에 대한 정보가 점점 구식이 되어가고, 시시각각 변하는 젊은 이들의 트렌드에 발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느낄 때다. 그래서 나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 공공연히 말하고 나의 조금 낡은 생각과 행동들을 합리화시키고 있다. 사실 나는 아날로그가 좋다. 기계도 감성도.


내가 MBTI 검사를 해 본 것은 꽤 오래전이다. 기억력이 나빠서 보고도 금방 잊어버린다. 사람들이 나에게 E와 I를 물어볼 때 잘 모른다고 말하면 다들 백퍼 E일 것이라 장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에서 나의 행동은 E에 가깝다. 나도 E라고 생각했다. E는 외향형, I는 내향형이다. 나는 명랑한 사람이니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 딸의 말을 듣고 내가 I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스타일이 아니다. 모든 에너지를 학교에서 소진하고 너덜너덜해진 육신을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 진실된 나와 만나 에너지를 충전한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 사람들과 만나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성향이 E, 조용한 곳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행복과 충만함을 느끼는 내향형이 I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군가와의 시간이 즐거웠다 해도 그 에너지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글을 읽었다. 학교에서 나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속된 말로 아이들을 위해 내 영혼까지 갈아 넣는다. 행복은 학교문을 나서면 사라진다. 내가 선생님이란 이름표를 학교에 두고 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진정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외부 활동이, 만남이 있었나?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 내가 내 맨얼굴로 만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오면 행복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고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고 싶고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에너지 제공자들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 하나의 에너지원을 발견했다. 글을 처음 쓰던 그때부터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쓰고 있다. 내 속에 깊이 감추었던 감정, 들추고 싶지 않았던 비밀, 누군가에 대한 존경과 사랑, 내가 반짝반짝 빛났던 시절까지.

어쩌면 마음속에, 기억 속에 봉인되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일들이지만, 그것들은 글을 만나 빛났다. 내 아픔을 치유해 주었고, 어린 시절 나를 내가 안아주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듣고 싶었던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나에게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생겼다.


쉽게 장담할 수 없지만 이제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즐겁게 보내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만 다할 생각이다. 나에게 상처를 내지 않을 것이고, 아프고 힘든 일을 억지로 참아내지 않을 생각이다. 건강한 내가 전해주는 진실된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빛나는 별이 되는 것이 맞다. 나는 아이들에게 빛을 전하는 태양이 되지 않을 생각이다. 모두스스로 빛을 낼 수 있도록 해 볼 생각이다.


나도 작고 반짝이는 그냥 별이 되고 싶다.

억지로 만든 E가 아니라 행복한 I를 꿈꾼다. 숨지 않는 그냥 명랑한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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