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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May 14. 2024

아직은 젊고 싶다,

다디어트를 시작하며

자타 공인 패셔니스타다. 부정하지 않고 왕관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못난이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번팅이나 미팅, 소개팅 자리에 나를 절대로 끼워주지 않았다. 겉으로 나름 쿨한 척 굴었지만 마음이 많이 상했다. 그때 나는 깡마른 몸에 검은 피부, 그리고 치명적인 쇼트커트.


수능이 끝나자마자 졸업도 하기 전에 나는 과외를 했다. 집안이 가난한 탓도 있었지만 직접 돈을 벌어 욕심만큼 옷을 사 입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기에 더욱 열심히 했다.


첫 과외비를 받자마자 친구들과 어울려 시내 옷집을 갔다. 내가 옷을 고를 때마다 그들의 표정은 띵~~ 그런 옷을 어디에, 어떻게, 입고 다닐 건지 의아해했다. 지금은 나름 많이 평범하지만 당시만 해도 거의 연예인들 무대복 수준의 옷을 골랐으니 친구들의 반응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오죽하면 여동생 왈 “ 저런 미친년 같은 옷을 누가 사나 보면 언니 네가 다 입고 다닌다.”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내가 입으면 신기하게도 잘 어울렸다. 나의 못난이 외모를 극복할 방법을 찾았으니 신세계의 문이 열린 것이다.


직장이라는 곳을 가보니 나는 튀는 정도가 아니라 뭐라고 표현할까?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선배 선생님들마다 한 번씩 뒤돌아 보셨다. 교장선생님께 불려간 날도 여러 번. 선생님들의 옷차림은 참 바르다. 단정하다. 솔까 촌스럽다.(지극히 사적인 생각입니다)


옷이 많으면 그에 맞는 신발도 필요하다. 삼 남매 중에 나는 제일 작다. 그래서 늘 킬 힐을 신었다. 학교 실내화는 무려 11cm. 고학년 키 큰 아이들이 내려다보는 게 싫었다. 나의 발을 자세히 보지 않은 사람들은 내 키가 엄청나게 큰 걸로 오해한다. 그 오해가 계속되길 바란다.


또 하나. 나는 어깨가 정말 좁다. 그래서 별명이 대갈 장군이었다. 사실 비교해 보면 내 머리는 오히려 작은 편이다. 단지 살짝 긴 건 인정한다. 킬 힐을 신어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비율이 완성된다.


어릴 적 가난했던 탓인지 아직도 물욕이 넘쳐흐른다. 사고 싶은 물건을 잘 포기하지 못한다. 신예희 작가의 ‘돈 지랄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며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그 책을 다섯 명의 친구에게 선물했을 정도다.


흠…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 무릎이 약해지니 힐을 신는 것이 힘들었고 패션의 성향도 조금 변해 편하고 세련된 옷이 더 눈에 찬다.


건강이 나빠진 탓에 운동의 세계를 경험하고 빠져들었다. 옷과 신발, 가방을 사던 돈으로 운동화를 산다. 그 운동화를 신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돈을 쓴다. 제일 좋은 건 자유로운 곳에서 향이 좋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읽을 책을 모으는 것이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세월과 함께 서서히 변한다. 각자가 가지는 가치관이나 환경이 달라도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변화에 어떻게 순응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계획이 필요하다. 내 20대가 영원할 줄 알았고, 내 30대가 빨리 지나길 바랐으며, 나의 찬란했던 40대도 끝이 났다.


육신과 정신이 모두 건강한 50대로 새로운 꿈을 꾸며 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읽고, 쓰고, 그리고, 걷는다.

새 운동화를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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