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 공인 패셔니스타다. 부정하지 않고 왕관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못난이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번팅이나 미팅, 소개팅 자리에 나를 절대로 끼워주지 않았다. 겉으로 나름 쿨한 척 굴었지만 마음이 많이 상했다. 그때 나는 깡마른 몸에 검은 피부, 그리고 치명적인 쇼트커트.
수능이 끝나자마자 졸업도 하기 전에 나는 과외를 했다. 집안이 가난한 탓도 있었지만 직접 돈을 벌어 욕심만큼 옷을 사 입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기에 더욱 열심히 했다.
첫 과외비를 받자마자 친구들과 어울려 시내 옷집을 갔다. 내가 옷을 고를 때마다 그들의 표정은 띵~~ 그런 옷을 어디에, 어떻게, 입고 다닐 건지 의아해했다. 지금은 나름 많이 평범하지만 당시만 해도 거의 연예인들 무대복 수준의 옷을 골랐으니 친구들의 반응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오죽하면 여동생 왈 “ 저런 미친년 같은 옷을 누가 사나 보면 언니 네가 다 입고 다닌다.”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내가 입으면 신기하게도 잘 어울렸다. 나의 못난이 외모를 극복할 방법을 찾았으니 신세계의 문이 열린 것이다.
직장이라는 곳을 가보니 나는 튀는 정도가 아니라 뭐라고 표현할까?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선배 선생님들마다 한 번씩 뒤돌아 보셨다. 교장선생님께 불려간 날도 여러 번. 선생님들의 옷차림은 참 바르다. 단정하다. 솔까 촌스럽다.(지극히 사적인 생각입니다)
옷이 많으면 그에 맞는 신발도 필요하다. 삼 남매 중에 나는 제일 작다. 그래서 늘 킬 힐을 신었다. 학교 실내화는 무려 11cm. 고학년 키 큰 아이들이 내려다보는 게 싫었다. 나의 발을 자세히 보지 않은 사람들은 내 키가 엄청나게 큰 걸로 오해한다. 그 오해가 계속되길 바란다.
또 하나. 나는 어깨가 정말 좁다. 그래서 별명이 대갈 장군이었다. 사실 비교해 보면 내 머리는 오히려 작은 편이다. 단지 살짝 긴 건 인정한다. 킬 힐을 신어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비율이 완성된다.
어릴 적 가난했던 탓인지 아직도 물욕이 넘쳐흐른다. 사고 싶은 물건을 잘 포기하지 못한다. 신예희 작가의 ‘돈 지랄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며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그 책을 다섯 명의 친구에게 선물했을 정도다.
흠…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 무릎이 약해지니 힐을 신는 것이 힘들었고 패션의 성향도 조금 변해 편하고 세련된 옷이 더 눈에 찬다.
건강이 나빠진 탓에 운동의 세계를 경험하고 빠져들었다. 옷과 신발, 가방을 사던 돈으로 운동화를 산다. 그 운동화를 신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돈을 쓴다. 제일 좋은 건 자유로운 곳에서 향이 좋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읽을 책을 모으는 것이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세월과 함께 서서히 변한다. 각자가 가지는 가치관이나 환경이 달라도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변화에 어떻게 순응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계획이 필요하다. 내 20대가 영원할 줄 알았고, 내 30대가 빨리 지나길 바랐으며, 나의 찬란했던 40대도 끝이 났다.
육신과 정신이 모두 건강한 50대로 새로운 꿈을 꾸며 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읽고, 쓰고, 그리고, 걷는다.
새 운동화를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