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의 내 태도

버티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by 서연담



-늦게 떠나는 사람


나는 언제나 좀 늦게 떠났다.

이미 마음이 식었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버텨보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떠나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될까 봐, 상대가 너무 상처받을까 봐,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봐 그냥 있었다.

떠날 결심을 하기도 전에, 나는 먼저 죄인이 되어 있었다.




-‘너 정도면’이라는 함정


“너 정도면 그냥 이해해 줘야 되는 거 아냐?”

그 말은 늘 듣던 말이었다.

‘너 정도면’이라는 조건이 내 삶을 오랫동안 구속했다.

어릴 땐 그게 나의 자존심이었다.

착하고 이해심 많고, 어른들을 편하게 해주는 아이.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도 나는 그 역할을 반복했다.

친구들이, 가족이, 동료들이 나를 찾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했다.

힘들다고 울고,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인생이 망가졌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그 옆엔 늘 내가 있었다.




-착한 사람의 의무감


어떤 친구는, 결혼 후 나와 거리가 생겼다 싶더니 갑자기 전화를 해왔다.

몇 년 만이었다.

“이혼했어. 네가 필요해.”

첫마디가 그랬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이 끊겨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여전히 거기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내 역할을 그대로 복원하려 했다.


어떤 ‘가까웠던 사람’은 종종 연락도 없이 찾아와 울고 갔다.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한지,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모질게 대했는지, 세상이 왜 이렇게 자신에게만 가혹한지.

그리고는 “넌 내 얘기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힘든가 보다’, ‘들어줘야지’, ‘나는 괜찮으니까’ 하는 마음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그건 내가 나를 방어하지 못하게 하는, 오래된 회로였다.


이해하려 애쓰는 동안,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한 번은 명절 직전, 친구가 다급히 찾아왔다.

“나, 죽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돌려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말은 너무 강력해서, 나의 경계를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며칠 뒤, 그 친구는 다시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며 내 연락을 무시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붙잡고 있었던 건 진심이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강박이었다는 걸.




-나쁜 사람이 될까 봐 참는 마음


내가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없으면 그들이 무너질까 봐.

그리고, 나는 괜찮을 것 같아서.


나는 항상 나를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조금만 더 버티자’,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저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나를 버렸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오면, 나중엔 ‘내가 지금 괜찮은가?’라는 질문조차 못 하게 된다.

오히려 나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가 정상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죄책감에 눌린 존재


가끔은 떠날 기회가 있었는데도 스스로 밀어냈다.

그럴수록 더 오래 버텼고, 더 깊이 지쳤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나는 타인을 미워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소진시키고 있었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다, 나는 그냥 엉망이 됐다.


버티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미덕이 아니라, 자기 소멸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수련은 모두 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