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남은 것들로 새로운 지도를 그리자

성미산마을 답사기

by 신혜정


마을, 공동체 키워드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성미산마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팍팍한 서울에서 '마을'이라니.

누군가에게는 '공동체의 롤모델',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기업의 모범사례,

또 누군가에게는 '좌파양성소'(아님) 로 불리기도 하는(ㅋㅋㅋ)

성미산마을에 '마을공동체 재생' 수업 답사차 다녀왔다.

바야흐로 꽃이 피고 하늘이 푸르던 오월의 일요일에.



성미산마을의 시작은 어언 29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이 동네 부모들이 모여 공동육아를 하게 되면서

아이들을 중심으로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던 차에,

동네의 성미산을 개발한다는 소식에 함께 힘을 모아 개발을 막았고,

함께 싸웠던 그 6년 동안 공동체가 단단해졌다.

그러다 공동육아 속에 자라난 아이들이 크자 초등학교도 지어보자,

해서 학교도 만든,

대단한 사람들이 있는 성미산 마을



2004년 개교한 성미산학교. 초중등 과정이 있다고.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을 키우고자 한단다.



이날이 스승의 날이었다.

"저희가 든든한 동료로 함께하겠습니다"라니,

역시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들 답다.



학교에는 빗물저금통도 있고



길고양이 밥과 놀이터도 있고



공유우산들도 꽂혀있다.

누구나 빌려갈 수 있고, 공유 마크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반납 가능하다니

이 마을 곳곳에 공유 플랫폼이 더 있나보다.



우체통이 있다.

웬만해서는 서로 이름과 주소를 아니,

주소 없이도 '누구누구에게'라고 편지를 적어 넣어두면

학생들이 그 사람에게 배달해준단다.

참고로 성미산마을에서는

어른이건 아이건간에 친근하게 서로를 별명으로 부른다.



성미산마을이라니 통째로 한 마을을 칭하는것 같지만,

그보다는, 성미산(마포구에서 유일한 자연산이란다!)을 중심으로 세워진

크고 작은 모임들의 네트워크를 성미산마을이라고 부르는거다.

크고 작은 모임들이란 어떤 것이냐,

성미산학교도 기고, 공동육아협동조합도 기고,

윗지도에 보면 되살림가게라고 재활용가게도,

문턱없는 밥집이라는 식당도,

동네책방도,

두레생협도,

등등등 70여개의 단체, 기업, 조직들이다.

그 네트워크 위에서 이런저런 활동들이 들고 난다.




성미산 마을 한해 행사.

지신밟기를 한다구?



동네 곳곳 자세히 보면 보이는 이런저런 마을 행사들.

성미산 마을 사람이라는 것은, 이런 조직들이나 활동에 함께하는

약 1000-1500가구의 사람들이란다.

처음에는 아이들 키우는 부모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2-30대 비혼가구들도 많이 들었단다.








이곳을 보다보니 예전에 방문했던 홍동마을과 차이가 짚힌다.


첫째, 좀 쿨하다.

농촌에 기반한 홍동마을은 끈끈했다.

마을조직들은 이리저리 서로 얽혀있었다.

성미산마을 조직들은 서로 독립적이란다.

여기도 어디서 협동조합한다 그러면

길가다가 출자 권유를 받긴 하지만

원치 않으면 안해도 된대.


우리를 안내해준 성미산마을 사슴님 말에 따르면

도심 공동체는 강제하면 튕겨나간단다.

그래서 느슨한 커뮤니티를 지향한단다.



둘째,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

여기 마을지도는 4-5년마다 바꿔야 한단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서 이사를 하거나 없어지거나 한단다.



상당히 유명했던 문턱없는 밥집도 이사를 해야할 상황이 되어

마을에 새로 지은 공동주택(왼쪽 위 사진) 1층에 들어왔단다.

팍팍한 서울에서 고생이 많아보인다.



동네에 이런 발랄한 재개발 현수막도 붙어있더라고


그럼에도 이 느슨한 마을이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인상적이다.

성미산 마을극장의 사연을 한번 보자.


마을극장의 관객석 앞에서 설명하시는 사슴님


2009년 시민단체가 지어 임대해준 건물 지하공간에

뭘할까 하다가 극장을 만든 성미산마을 사람들,

처음에는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원을 받았는데

지원이 끊기니 수익이 없었단다.

직원들은 다 퇴사하고 버티고 버티던 극장장이

마을에 '하소연대회'를 벌여

마을 사람들이 몇 달 동안 매주 모여서

극장을 닫느냐 마냐 논의하다가

마을협동조합을 하자!

해서 지금까지 십년을 넘게 버티는 마을극장.


극장으로 내려가는 벽이 출자한 사람들의 이름들로 빽빽하다


사슴님이 그랬다.

여기에서는 뭔가 시작해서 해보다가 힘들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그래도 안되면 해산하는 것같다고.

보통은 협동조합 과정없이 그냥 해산인데.

협동조합이 뿅하고 중간 완충과정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이곳은

느슨하지만 마을은 마을이다.








사람들이 힘들어도,

이 차가운 도시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해나가는 힘은 뭘까.

사슴님 동생도 이 근처 사는데,

사슴님이 공동육아하는 것 보고

"부모 등골 빼먹는데"라고 질색을 하셨다고.

(공동육아하면 부모의 역할이 많을수 밖에 없다)

그런데 동생이 아이를 낳고서는

공동육아를 찾아가셨다고 ㅋㅋ

등골을 빼먹더라도

서로 돌봐주는 문화가 있기에

버텨볼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럼으로써 다양한 관계가,

서로 비빌 언덕이 이 도시에서도 생긴다.


교수님의 교수님이 그러셨단다.

한 조직이, 마을이 갈등이나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망한다면

그것은 갈등이나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이 아니라

그 너머에 공동의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성미산마을의 공동의 희망은

마을 조직들이 부지런히 관리행정과 금융자본에 쫓기고 차이고 하는 중에도

그렇게 살아서 현재진행중인가 보다.

오늘 받은 마을지도에 표시된 조직들 중에 또 없어질 것도, 또 이사를 갈 것도 있겠지만,

그런대로 사람들은 또 새로운 지도를 그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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