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수많은 노래들이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대부분은 그저 배경음악처럼 흘려보내지만, 어떤 노래는 불현듯 마음을 파고들어 멈춰 서게 만든다. 나에게는 이무진의 '에피소드'가 그런 노래였다. 경쾌한 멜로디에 실려오는 목소리를 무심코 따라 듣다가, 문득 그 가사를 음미하게 된 순간, 나는 노래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깊은 슬픔과 마주했다.
노래는 잠들기 전,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처럼 되새기는 버릇, 즉 '궁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화자는 우연히 떠올린 '너'와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눈 내리던 겨울밤, 첫 데이트의 설렘과 조심스러운 대화로 시작된 둘만의 '에피소드'.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추억하던 노래는 이내 서늘한 현실을 드러낸다. "모른 척해도 결국엔 이건 끝을 봤던 에피소드."
배경은 다시 쓸쓸한 끝을 향해 달려가고, 두 주인공은 서글픈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굿바이, 너무 아픈 이별의 굿바이." 화자는 애써 웃으며 안녕을 고하지만, 꿈에서 깨어난 현실의 그는 침대에 기댄 채 펑펑 울고 있다. "돌아서지 말았어야 했다, 널 안았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을 떠올렸다. 두 노래는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미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쓸쓸한 체념. 다시 만난다 해도, 예전의 그 사랑은 결코 다시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단순히 지나간 로맨스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나는 이 노래들 속에서, 15년간 몸담아온 사교육이라는 나의 직업이 주는 깊은 마음의 데미지를 보았다.
나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곱셈부터 다시 가르쳐야 했던 아이, 디자이너를 꿈꾸던 아이, 때로는 나를 부모보다 더 믿고 따르던 아이들. 나는 그들에게 나의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국 떠나간다. 좋은 관계로 이별을 맞이하든, 부모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갑작스럽게 헤어지든, 그들은 성장하여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 이 자리에 남는다.
그 아이들에게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머리로는 안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을. 하지만 마음 한편이 시리고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찬란했던 '에피소드'가 끝나고, 홀로 남겨진 노래 속 주인공처럼, 나는 떠나간 아이들의 빈자리를 보며 뒤늦은 후회와 쓸쓸함을 곱씹는다.
어쩌면 가르친다는 것은, 이처럼 수많은 이별을 감당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노래는 끝나고 사랑은 지나갔지만, 그 기억의 조각들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남겨진 사람의 몫이다. 나는 오늘도 카운터 너머에서, 혹은 교실 책상 앞에서, 수없이 반복될 그 '에피소드'의 시작과 끝을 묵묵히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