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9도의 겨울 왕국, 화천의 기억
군 생활의 고됨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훈련의 강도를 떠올리지만, 내가 겪은 가장 혹독한 적은 사람이 아닌 자연, 바로 강원도 화천의 겨울이었다. 그곳의 추위는 단순한 추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살아있는 실체였다.
화천의 겨울은 대관령보다 혹독했다. 일기예보에서 대관령이 영하 15도라고 하면, 우리 부대가 있는 곳은 영하 18~19도가 평균이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침을 뱉으면 수초 안에 얼어붙고, 그 얼음을 발로 차면 유리처럼 흩뿌려지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얼어붙는 세계였다. 스키파카와 두꺼운 내피 같은 방한 장비가 지급되었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 앞에서는 무력했다.
야간 매복 훈련의 진짜 고통은 훈련 자체가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추위를 견뎌내는 것이었다. 영하 19도의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감각을 잃는 것은 손가락이었다. 손가락이 나뉜 장갑으로는 한 시간도 버티지 못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생존의 지혜를 터득했다. 보급품 가죽 장갑 대신, 부대 근처 시내 군장점에서 사 온 '매직 장갑'을 먼저 끼고, 그 위에 두꺼운 '벙어리장갑'을 덧끼는 것이었다.
세밀한 작업을 할 때는 매직 장갑만으로 버티고, 장시간 대기할 때는 벙어리장갑으로 체온을 지켰다. 여기에 귀를 덮는 '귀도리'와 입김이 하얗게 얼어붙어 수시로 털어내야 했던 '방한 마스크'까지, 우리가 의지했던 것은 보급품이 아닌 사비로 구매한 사제 방한 장비들이었다.
나는 제대를 두 달 앞둔 3월에 GOP(일반전초)로 투입되었다. 2년간 온갖 힘든 훈련은 다 받아놓고, 정작 훈련이 거의 없는 GOP 생활을 말년에야 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였다. 실탄을 지급받고 근무에 나서는 긴장감도 있었지만, 내가 배치된 30TF 소초는 다른 의미로 특별한 곳이었다.
7사단 동부전선의 다른 구역들이 험준한 산악 철책을 오르내려야 하는 것과 달리, 우리 90mm 무반동총 소대는 직사화기라는 특성상 북한강 상류의 평탄한 다리, '오작교'의 경계를 맡았다. 근무지 시작부터 끝까지 산책하듯 걸어도 5분이면 오갈 수 있는 곳이었다.
옆 초소의 소총 중대원들이 무릎 높이의 가파른 철책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여름에는 땀 냄새가 진동하고, 겨울에는 방한 장비를 더블백에 넣어 짊어지고 이동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군대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진리를 실감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배치된 포지션의 차이가 군 생활의 질을 극과 극으로 갈라놓는 곳. 그것이 군대였다.
GOP에서의 내 말년 생활은 아이러니의 연속이었다. 오작교라는 편한 근무지 덕분에 몸은 편했지만, 소초장이었던 젊은 중위는 왕고인 나를 배려해 한 달 만에 근무에서 빼주었다.
하지만 중대 본부에 함께 상주하던 중대장은 그 꼴을 보지 못했다. 그는 야간 순찰을 돌 때 자신의 전령 대신 굳이 나를 깨워 데리고 다녔다. "왕고라도 편하게 둘 수 없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하지만 막상 순찰에 동행하며 나는 그의 진짜 의도를 알게 되었다. 그는 나를 닦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곧 다른 부대로 떠나야 하는 자신의 고민, 새로 만날 부대원들을 잘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너처럼 군대 돌아가는 걸 다 알만해지면 제대한다"는 군 시스템의 허무함 같은 속내를 털어놓기 위해 나를 파트너로 택한 것이었다.
덕분에 통신병도 아니었던 나는 말년에 최신형 핸디 무전기 사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중대장의 순찰 동선을 보고하고, 상급 부대와 교신하며 나는 사병으로서는 결코 엿볼 수 없었던 간부들의 무덤덤한 일상을 체험했다.
GOP 생활은 단순한 쳇바퀴의 연속이었다. 특히 야간 근무가 많아 잠은 늘 부족했다. 하지만 훈련이 없는 대신,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페바(FEBA, 일반전방)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작교 아래 북한강은 수심이 무릎 높이밖에 되지 않아 거대한 황쏘가리와 민물 숭어가 훤히 보였다. 하늘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매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거대한 독수리 아홉 마리가 날갯짓도 없이 상승기류를 타며 유영했고, 그들보다 더 많은 수의 까마귀 떼가 하늘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했다. 밤에는 짝을 지어 다니는 오소리 한 쌍이 제논 조명을 비춰도 도망가지 않고 건방지게 우리를 쳐다보곤 했다. 짬밥을 먹고 자라 중형견만큼 커진 '짬타이거'는 이곳 생태계의 또 다른 일원이었다.
강원도 전선은 산과 강으로 막혀 북한 초소가 직접 보이는 구간이 드물다. 그래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적이 아니라, 압도적인 자연 그 자체였다. 4월 중순, 사회에서는 봄이 한창일 때 우리는 제설 작업을 했다. 1000미터가 넘는 산 정상에는 5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겨울 내내 쌓였던 눈이 녹았다.
나는 말년 휴가를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총 중대가 맡았던 험준한 서쪽 지역을 걸어 대대 본부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송별회를 끝으로 GOP를 떠났다. 2년간의 훈련과 두 달간의 GOP 생활.
그 모든 과정은 고통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다큐멘터리로도 보기 힘든 진짜 세상을 보았다. 그것은 총과 철책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지독한 추위와 경이로운 자연이 공존했던 나의 스무 살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