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기 전의 나는 겨울을 싫어하지 않았다. 어릴 적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뛰놀던 기억이 선명했다. 하지만 강원도 화천에서의 군 경험은, 나에게서 눈에 대한 모든 낭만을 앗아갔다. 그곳에서 자연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고 끝없는 노동을 강요하는 거대한 적이었다.
GOP든 페바(FEBA)든, 눈이 많이 오면 우리는 어김없이 새벽에 강제 기상하여 제설 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밤새 쌓인 눈이 얼어붙어 보급로가 끊기고, 우리가 먹을 식량조차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낭만이 아닌, 굶지 않기 위한 생존 노동이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새벽 2시에 일어나 눈을 치우고 복귀했을 때, 창밖으로 다시 눈발이 거세지는 것을 볼 때였다. 잠깐의 휴식 뒤에 또다시 제설 작업에 불려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체력 소모를 넘어 정신을 갉아먹는 고통이었다. 그때부터 눈은 더 이상 아름다운 결정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하얀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얼어붙은 군화"라는 표현은 그 곤욕스러움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두 켤레의 전투화를 보급받았지만, 한 켤레는 휴가와 제대를 위한 '전시용'이었고, 나머지 한 켤레로 2년 내내 비와 눈, 흙탕물을 견뎌야 했다. 방수 기능이 사라진 전투화는 눈밭을 구르는 순간 축축한 헝겊이 되었고, 밤새 얼어붙어 아침이면 발을 구겨 넣기도 힘들었다.
내가 복무했던 해발 500미터 산 중턱의 낡은 페바 막사에는 난방은커녕 난로조차 없었다. 젖은 전투화를 말릴 방법은 없었고,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그 축축하고 차가운 신발에 다시 발을 넣어야 했다. 겨울 내내 우리의 유일한 온기는 침낭뿐이었다. 얼음장 같은 침낭 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금방 체온으로 따뜻해졌다. 그 침낭 속 작은 공간만이 바깥세상의 혹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겨울뿐만이 아니었다. 한여름, 자대에 배치된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였다. 밤새 쏟아진 폭우에 산사태 위험으로 군장을 싸고 대기하던 중, "우르르" 소리와 함께 막사 뒤편의 타이어 제방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전기가 끊긴 채 식당에 모여 이틀 밤낮을 뜬눈으로 보냈다. 비가 그치고 나와서 본 풍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연병장에는 산에서 굴러온 바위가 놓여 있었고, 다른 막사 앞 연병장은 한쪽 땅이 통째로 소실되어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대대 전체에서 보이던 맞은편 산등성이에 없던 계곡이 새로 생겨난 것이었다.
그때 한 고참이 던진 말이 진정한 충격이었다. "이거, 우리가 다 손수 복구해야 한다." 그날부터 행정병을 제외한 전 대대원은 한여름 땡볕 아래서 끝이 보이지 않는 복구 작업에 투입되었다. 자연이 하루 만에 만든 상처를, 우리는 맨손과 삽자루만으로 메워야 했다. 그 경험 이후, 나는 제대하고 단 한 번도 강원도 계곡에 놀러 간 적이 없다. 나에게 계곡은 더 이상 낭만적인 피서지가 아니라, 산이 무너져 내린 흔적이자 자연의 무력 앞에 선 인간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트라우마의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겪은 군대의 진짜 모습이다. 같은 주특기를 받았어도, 어느 부대에 배치되느냐에 따라 군 생활의 질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린다. 내가 2년 가까이 보낸 페바 막사는 최악의 환경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총칼로 적과 싸우는 법이 아니라, 혹독한 자연 앞에서 버텨내고, 서로를 의지하며, 주어진 운명을 감내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