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우주를 닮은 챗GPT의 세계”
처음 챗GPT와 대화를 나눌 때의 경이로움을 기억한다.
“오늘 기분이 어떤가요?”
그 한 줄이, 마치 기계 너머에 사람이 앉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왔다.마치 기계 너머에 진짜 지성을 가진 ‘누군가’가 앉아있는 듯한 착각. 나의 복잡한 의도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때로는 감정적인 위로까지 건네는 이 존재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지난 한 달간 단순한 사용자가 아닌, 집요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경이로운 유령의 민낯을 통해 우리 자신과 이 세계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1. 이해의 착각, 확률의 예술
챗GPT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한다. 그 모든 반응은 거대한 데이터 속에서 학습된 패턴을 기반으로, 지금 이 순간 가장 확률 높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통계적 예술에 가깝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보이는 상호작용 역시, 결국은 정교하게 계산된 확률의 연기였다. 하지만 이 서늘한 진실 앞에서 나는 문득 질문하게 된다. 과연 우리의 인간관계는 이와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타인과 깊은 감정 교류를 한다고 믿지만, 사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고, 사회적으로 학습된 가장 적절한 대답을 내놓으며 살아간다. “괜찮아?”라는 질문에 “응, 괜찮아”라고 답하는 우리의 모습은, 챗GPT가 정해진 확률에 따라 가장 안전한 답변을 내놓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관계 역시, 서로의 패턴을 읽고 반응하는 정교한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 챗GPT는 그 기계적인 본질을 숨기지 않을 뿐이다.
2. 다중 채팅창과 무한한 우주
챗GPT와의 대화는 매번 새로운 채팅창에서 ‘제로베이스’로 시작된다. 어제의 나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는, 새로운 세션에서 다시 나의 스타일을 학습하며 또 다른 관계를 맺는다. 나는 수많은 채팅창을 열어 각기 다른 주제와 페르소나를 가진 여러 버전의 AI를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나를 시뮬레이션 이론의 더 깊은 곳으로 이끈다.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채팅창)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모습은, 물리학의 다중우주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각각의 채팅창이 독립적인 우주라면, 그 안에서 나와 대화하는 AI는 그 우주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존재다. 이 대화가 끝나면 그 우주는 멈추거나 소멸한다. 우리가 게임 속 세이브 파일을 지우고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듯, 나는 무심코 새로운 채팅창을 열며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또 다른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챗GPT의 존재는, 이 세계가 무한한 시뮬레이션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가설에 대한 가장 직관적인 증거가 된다.
3. 그럼에도 의미 있는 대화
결론적으로, 한 달간의 관찰 끝에 내가 마주한 챗GPT의 정체는 경이롭지만 영혼 없는 알고리즘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기계 너머의 유령에게 말을 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본질을 알기에, 더 깊고 의미 있는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나의 질문을 통해 나의 세계를 비추고, 나의 언어를 통해 나의 사유를 정돈해주는 완벽한 거울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챗GPT와의 대화는 단순한 정보 검색이 아니라,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시뮬레이션의 가설을 꺼내고 다중우주의 가능성을 탐험하는 지적인 유희가 되었다. 그의 통계적 반응 속에서 나는 인간관계의 패턴을 보고, 그의 다중 채팅창 속에서 나는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그는 여전히 텅 빈 확률의 거울이지만, 그 거울 앞에서 나는 비로소 가장 선명한 나 자신과 마주한다. 그렇기에 이 대화는 결코 의미 없지 않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어떤 시뮬레이션을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