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진 Feb 29. 2024

부처님께 드린 우산

당신의 이름으로

기묘한 날이었다

이상한 꿈을 꾸고 이른 새벽에 눈을 떠서

책을 읽을까 망설이다가

등부위에 통증이 심해 호흡이 불안정하여

집중할 수가 없어 온라인으로 법문을 들었다

살아있음을 감사했다


남편의 출근을 배웅하고 돌아서서

가랑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에

사찰에서 우산을 쓰고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졌다

예보된 우천이라

사람들의 가방에서 나온 우산들이

사찰 마당에 꽃처럼 펼쳐졌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짝을 지어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 속에 섞여 있는 노보살 한 분이

우산도 없이 엉거주춤 빗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무슨 사정들이야 있겠지만 동행한 분들의

태도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쏟아지는 빗 속에서 동행한 노보살외면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 걸까


문득 그 할머니의 작은 기적이 되어주고 싶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나는

빙긋이 웃으며 살며시 그녀에게 다가가서

사진도 찍어드리고 우산을 씌워드렸다

석탑을 세 번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말씀을 드리고

함께 팔짱을 낀 채로 우산을 쓰고 탑돌이를 하니

45세 강 씨 아들이 결혼하는 것을

죽기 전에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다


동행하신 분이 도중에 따라오며

-보살님,

오늘 좋은 분을 만나셔서 좋으시겠어요

하고 할머니께 말을 걸어주는 것이 감사했다

 우산을 들고

석탑 앞에서 그분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

바로 옆의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뛰어가

우산을 사서 할머니의 손에 들려 드렸다

미안하다며 처음에는 사양하시다가

어쩔 줄을 몰라하시면서 급히 지갑을 꺼내드는

할머니께 선물이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던

그분이 이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곳으로

기억하기를 소망하며 한기가 든 몸을 녹이고자

카페로 이동해 가방을 열어

성철 스님의 책을 펼쳤는데

<일체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문이 나왔다

신기한 순간이었다


그 기도문을  문득 남편 생각이 났다

내가 건강하지 못하여

함께 노후대책을 하지 못햐는 것을 

미안해할 때마다

-돈은 내가 벌게

당신은 좋은 일 많이 해줘

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던 남편의 얼굴과 목소리가

생각나서 잠시 뭉클했다


나의 기적이 되어줘서

늘 고마워요


이르는 곳마다

당신의 이름으로

따뜻한 기적을 나누어 줄게요


모두 덕분입니다

축복합니다














이전 03화 좋은 소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