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수학학원 사건 이후로 김 여사는 더욱 마음이 공허해졌다.
기껏 남편에게 친구가 생겼다며 자랑했던 게 민망하게 그녀의 우정(이었나 싶은 비슷한 어떤 것)은 급속도로 끝나 버렸다.
“여보, 그러지 말고 여보도 골프 배워봐.”
상심에 빠진 김 여사에게 남편이 말했다.
“골프?”
어린 시절부터 머릿속이 문과 감성으로만 똘똘 뭉쳐 있었던 김 여사에게는 운동 신경이랄 게 전혀 없었다. 그녀 인생에서 운동을 배워본 건 제주에 내려오기 전 서울에서 3개월 배웠던 필라테스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온몸에 생긴 근육통으로 골병이 들면서, 필라테스 시작과 동시에 샀던 룰루레몬 레깅스와 상의도 당근행이 됐다. 그 이후로 그녀는 운동이라곤 해본 역사가 없었다.
그녀는 맘이 쓰렸지만 티모시 엄마와의 대화를 회상했다. 그 엄마가 그랬듯, 골프를 치면 사람들과 함께 필드도 나가고, 스크린도 치며 친해질 기회가 훨씬 많았다.
‘한 번 나도?’
마음이 허했던 탓일까. 남편의 말 한 마디에 김 여사의 뻥 뚫렸던 맘 한 구석에 골프라는 새싹이 뿌리를 내리고 점차 그 덩치가 커지고 있었다.
어느 날, 김 여사는 점심 시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내가 찾아보니까 여자 초보는 무조건 젝시오라던데 현대 가서 젝시오 풀세트 하나 사서 이번 주말에 가져와.”
“뭐? 골프채 세트를 사서 나보고 가져오라고?”
“응. 아, 그리고 요즘에 백화점 행사 기간이라 상품권 행사하거든. 현대 10층에 고객센터 알지? 골프채 세트 사고, 거기 올라가서 상품권 받아오는 것도 잊지 말고.”
“여보, 나 원장이야. 내가 백화점 갈 시간이 어디있어.”
“왜!! 오빠 병원은 여섯시에 끝나고 백화점은 여덟시에 끝나잖아. 알았지? 꼭 사서 내려와. 젝시오다 젝시오!!”
며칠 후 주말, 김 여사의 남편은 투덜투덜대면서 젝시오 세트를 들고 제주에 내려 왔다.
“아오, 내가 이거 무거워서 얼마나 혼났는지 알아?”
“어머, 너무 예쁘다. 핑크색이네. 색도 곱다 고와”
“여보, 듣고 있어? 나 진짜 무거워서 혼났다고.”
“응. 고마워 오빠. 오빠가 최고야!!”
김 여사는 젝시오 아이언과 드라이버를 요리조리 뜯어보며 감탄했다.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젝시오 채 하나하나를 바라보던 김 여사는 비닐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오케이! 골프로 다시 시작한다! 인간관계!‘
김 여사는 그 날로 가까운 골프연습장에 달려가 연습장 이용권과 함께 레슨을 등록했다. 처음 들어보는 골프백은 운동이라곤 해본 적 없어 근육이 0에 가까운 김 여사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어떻게 들어야 할지조차 몰라 이리 매고, 저리 매보며 그나마 가장 덜 불편한 자세를 찾은 김 여사는 골프채가 한가득 든 젝시오 골프백을 매고 스크린 연습장에 들어가 타석 앞에 섰다. 김 여사가 어떻게 채를 잡는 지도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을 때 김 여사에게 레슨을 가르치기로 한 프로가 다가왔다.
“김연주 회원님이시죠?”
오랜만에 듣는 자신의 본명에 화들짝 놀란 김 여사는 토끼눈을 한 채로 프로를 쳐다보았다. 프로는 김 여사에게 그립 잡는 법부터 똑딱이라고 불리는 하프스윙을 가르쳤다.
‘와 이거 진짜 어렵네’
보기에는 그냥 채를 잡고 반만 휘두르는 거라 아주 간단해 보였는데, 자신은 왜 이렇게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뒤뚱거리는지 김 여사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30분간 똑딱이만 했을 뿐인데 김 여사는 땀이 비오듯 흘러 겨드랑이에 홍수가 났고, 손가락에는 잔뜩 물집이 잡혀 쓰라렸다.
고난의 7번 아이언 똑딱이 기간이 시작됐다.
좀처럼 김 여사의 스윙은 나아지지 않았다. 김 여사는 오기가 생겨 매일 아침, 조슈아를 학교에 등교시킨 후 두 시간씩 연습장을 찾았다. 집념의 김 여사, 옛날부터 그녀는 한다면 하는 여자였다. 매일을 그렇게 7번 아이언과 씨름하던 김 여사는 드디어 7번 아이언으로 90m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딱, 그녀가 골프를 시작한지 2개월 반 때 일어난 일이었다. 김 여사의 프로는 그녀에게 90m를 보내지 못 하면 드라이버로 못 넘어간다고 했었다.
‘드디어!!! 나도 드라이버!!!‘
김 여사는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김 여사가 7번 아이언으로 갓 태어난 송아지 스윙을 하고 있을 때 양 옆에서 드라이버로 뻥뻥 150m씩 날려대는 다른 엄마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김 여사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타석 테이블에 던져놨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비거리 90m’를 사진으로 찍어 남편과 프로에게 전송했다.
그 때였다.
“어머, 조슈아 엄마 아니에요?”
댄 엄마가 골프백을 어깨에 매고 연습장으로 들어오며 김 여사에게 아는 체를 했다. 김 여사는 마침 자신의 스크린에 비거리 90이라는 숫자가 당당히 적혀 있을 때 아는 사람이 들어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어머, 댄 어머님도 여기 다니시나봐요?”
“네, 여기 다닌지 꽤 됐는데 처음 뵙네요.”
“아, 전 여기 다닌지 얼마 안 됐어요.”
“아 그러시구나. 언제 같이 나가요.”
“좋죠. 다음에 나갈 때 저도 껴주세요.”
“네, 그럼.”
댄 엄마는 골프백을 들고 빈 타석 쪽으로 갔다. 능숙하게 무거운 골프백을 한쪽 어깨에 척 걸친 그녀의 모습을 보니 꽤나 골프에 익숙한 모양새였다. .
‘맞아, 골프는 필드 나가는 게 중요하잖아. 이제 여기서 아는 사람 만나면 나도 껴달라고 말해야겠다. ‘
김 여사는 드라이버로 뻥뻥 150m, 160m 날리는 댄 엄마의 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그 다음날부터 김 여사도 드라이버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벼워서 쉬워 보였던 드라이버 역시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고, 김 여사는 90m도 겨우 칠 때가 많았다.
‘이럴 거면 7번 아이언이나 드라이버나 비거리가 똑같잖아…‘
하지만, 김 여사는 낙심하지 않았다. 또 다시 그녀의 집념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매일 같이 조슈아를 등교시키면 연습장으로 달려가 드라이버를 연습했다.
90m였던 비거리가 110m가 되고, 어느 순간 120m가 되더니 드디어 140m가 되었다.
그 날, 김 여사는 연습장에서 대니얼 엄마를 만났다. 티모시 엄마에게 예전에 들어서 그녀가 골프를 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김 여사는 대니얼 엄마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대니얼 어머님, 안녕하세요?”
“어머, 조슈아 어머님, 여기 다니셨어요?”
“네. 잘 지내시죠?”
“네. 조슈아 어머님도..?”
“네. 저, 나중에 필드 나가실 때 저도 한 번 끼워주세요. 주변에 치는 분이 안 계셔서…”
김 여사는 눈을 질끈 감고 대니얼 엄마에게 친근하게 말했다. 그나마 대니얼 엄마는 김 여사가 아는 엄마들 중 김 여사와 가까운 편에 속했다. 대니얼 엄마는 흔쾌히 말했다.
“너무 좋죠. 제가 조만간 연락 꼭 드릴게요. 너무 재미있겠다!”
“감사해요. 연습 열심히 하세요.”
“네 조슈아 어머님도요.”
대니얼 엄마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조만간 그녀를 필드 나갈 때 불러줄 듯 싶었다. 김 여사는 뿌듯함과 동시에 설레기 시작했다.
‘나도 드디어 필드를!‘
푸르는 잔디와 상쾌한 풀내음…그 위에서 플리츠 스커트를 입고 리본 썬바이저를 쓴 채 멋지게 스윙하는 자신의 모습…나이스샷을 외쳐주는 동반자들…
김 여사가 연습장에 다니는 동안 매일 머릿속으로만 꿈꿔오던 상상이 현실이 될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김 여사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다시 드라이버채를 들었다.
다음 날은 작년에 같은 반이었다가 올해는 다른 반이 된 재닛 엄마를 만났다.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예전에 수영학원을 같이 다녔던 리사 엄마도 만났다.
김 여사는 그들에게 살갑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했다. 웃으며 스몰토크가 시작될 때 진짜 목적인 필드 나갈 때 자신도 끼워달라는 말도 산뜻한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모두들 너무 좋다며 김 여사에게 진작 말하지 그랬냐, 조만간 꼭 함께 하자고 대답했다.
‘이따가 아웃렛 가서 골프복 몇 벌 한 번 입어봐야겠다.‘
김 여사는 예쁜 골프복을 입어볼 생각에 벌써부터 들떴다.
며칠 후, 수업을 하던 프로가 김 여사에게 물었다.
“회원님, 이제 필드 나가셔도 되겠는데요? 진짜 많이 느셨다. 연습 많이 하셨나봐요.”
“연습도 열심히 하고, 프로님도 너무 잘 가르쳐주셔서요.”
“아유 별 말씀을. 필드 나갈 계획은 잡으셨어요?”
“음…조만간?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어요.”
김 여사는 자신이 필드를 제안했던 몇 명의 엄마들 얼굴을 떠올리며 프로에게 말했다.
“아직 안 정해지셨으면, 제 회원님들 몇 분하고 필드레슨 나가실래요?”
“필드레슨이요?”
“네, 처음 나가시는 거니까 제가 가서 자세도 봐드리고, 골프 매너도 알려드리고…”
“아, 그거는 그럼 비용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한 번 나갈때 30 정도 생각하심 돼요.”
‘3…30????’
김 여사는 속으로 너무 놀랐지만, 태연한 척 미소지었다. 조금 생각해보겠다고 프로에게 이야기한 후 김 여사는 집에 돌아와 ‘필드레슨‘을 검색해 보았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필드레슨 비용에 프로의 그린피, 카트비, 그늘집 비용 등 부대비용까지 회원이 부담한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그게 얼마야 한 번 나가는데…‘
김 여사는 머릿속으로 비용을 한 번 계산해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비용을 다 부담하면서는 나가기 힘들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요즘 남편 병원에 환자도 많이 없다는데, 필드 한 번 나가자고 이 돈을 쓴다고 하면 남편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김 여사는 자신이 여기저기 찔러봤던 엄마들에게 연락이 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그녀들의 반응으로 보아 곧 연락이 올 것 같았다.
김 여사는 유튜브에서 ‘골린이 첫 라운딩 브이로그‘ ’첫 라운딩 밀착 A to Z‘ ’필드 나갔을 때 꼭 알아야 하는 골프 매너‘ 등을 찾아보며 달달 외웠다.
‘처음에 가서 트렁크를 열면, 프론트맨들이 골프백을 꺼내주고, 캐디분들이 골프백 넣어주기 쉽게 전방주차하고, 라커룸 갈 때는 샤워가운 꼭 가져가야 하고…’
이제 김 여사의 머릿속에는 처음으로 필드 나갈 때 필요한 모든 지식이 다 채워졌다. 정말, 나가기만 하면 됐다.
‘오케이!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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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뻥!
김 여사가 골프 연습장에 매일 출근한지도 벌써 6개월… 그녀는 이제 드라이버로 그녀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150m를 넘어 160m까지 보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아무도 그녀에게 필드 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까지 한 번도 필드에 나가보지 못 했다.
“와! 눈 온다! 올해 첫 눈이야!!”
누군가 연습장 창문 바깥으로 오는 눈을 보며 환호했다.
김 여사는 그렇게…
아무와도 필드를 나가지 못 한 채 골프 시즌을 종료했다.
‘내년엔…나갈 수 있겠지?‘
김 여사의 눈에서 하얀 눈처럼 또르르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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