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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재능, 개뿔!!

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by 유리

“엄마, 오늘 나 친구랑 놀고 올 수 있다!”

“몇 시까지?”

“몰라! 오늘 일찍 끝나잖아! 숙제는 좀 놀다가 저녁에 하면 되지!”

“아니..12시 반에 끝나는데 몇 시까지 놀다 오려고 저녁에 한다는 거야?”

“몰라!! 나 어쨌든 학교 끝나고 친구랑 놀다 와!!”

“네시까진 와!! 일단 전화해 학교 끝나면!!”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금세 흘러 조슈아와 김 여사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벌써 1년 지났어. 365일, 8760시간!!!!!! 너흰 뭘 했어?“

글쎄… 뭘 했더라. 하지만 크고 작은 일들로 많이 울고 웃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조슈아는 오늘 종업식 겸 방학식을 한 후 두 달 간의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다. 그 후 8월이면 이제 국제학교 5학년, 육지의 일반 학교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 즉 마지막 초등학교 1년이 시작된다.

‘1학년 때 왔는데 벌써 초등부 졸업 학년이네.’

엄마의 싱숭생숭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슈아는 그저 오늘 학교를 일찍 마친 후 친구들과 놀 생각에 신나기만 했다. 그런 아들에게 4학년으로서 마지막 교복을 입혀 셔틀을 태워 보내고 김 여사는 거실 소파, 그녀의 지정석에 털썩 앉았다.

지잉

그녀의 휴대폰에 문자메시지 알림이 와있었다.

<조슈아 엄마, 4학년 한 해도 고생했어요. 우리 내년에도 같은 반 되면 좋겠다. 서울은 언제 가요?>

대니얼 엄마에게 온 문자였다. 그녀는 미소지으며 답했다. 서울에 있는 동안에도 시간이 맞는다면, 대니얼 엄마와 한두 번은 볼 예정이었다. 국제학교의 여름방학은 길고 기니까.

김 여사가 용기내 연락했던 그 이후, 대니얼 엄마와는 조금씩 그녀만의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맞았던 김 여사와 대니얼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전시회에 간 적도 있었다. (김 여사에게 그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필드 동반자가 없었던 이슈로 손 놓고 있었던 골프도 조만간 좀 더 연습을 해서 대니얼 엄마와 필드도 한 번 나가기로 약속했다. 그녀에게도 이제 손절 안 하고 계속 ‘친구‘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이 생긴 듯 했다. 제주에 있던 3년 동안 못 이루어졌던 일이 단 두어 달 만에 이렇게 이루어질 수 있다니…김 여사는 스스로도 놀랍고 사람 일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김 여사도, 조슈아도 1년 동안 많이 성장하고 변화했다.

‘아 맞다! 오늘 아침에 조회수 확인 못 했네!‘

그녀는 대니얼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는 그녀의 글이 연재 중인 플랫폼 두 곳에 들어가 글의 조회수를 확인했다. 김 여사는 지난번, 밀리의 서재에서 주최한 이달의 크리에이터에 당선된 이후 쭉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와 브런치 두 플랫폼에 자신의 글을 틈틈이 연재해왔다. 그리고 그 때부터 조회수 확인은 이제 그녀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아…어제와 같네….’

그런데….

그녀의 글은 인기가 없었다. 김 여사가 쓴 글의 조회수는 어제와 같았다. 즉, 밤새 아무도 그녀의 글을 읽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김 여사의 글이 밀리의 서재 메인 페이지에 소개될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제 막 그녀 앞에 작가로서의 탄탄대로가 펼쳐질 줄로만 알았다. 조슈아를 돌보는 틈틈이, 그리고 집에 있을 때마다, 조슈아가 잠든 새벽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또 썼다.

처음 그녀는 ‘내글최고야병‘에 걸렸었다. 세상 어떤 글을 읽어도 자신이 쓴 글만큼 재미있는 게 없었다.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지겹지 않았다. 밀리의 서재 메인 페이지에 ‘이달의 크리에이터‘ 글로 김 여사의 글이 소개됐을 때 그 병은 정점에 치달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와도 자신의 글에는 못 비빈다고 생각했다. 이런 복선과 죽이는 암시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었다니 스스로도 자신이 대단해 미칠 지경이었다. 김 여사는 자신의 글을 원작으로 한 웹툰과 드라마들을 생각했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매일 머릿속으로 누구를 주인공으로 하면 좋을지 혼자 가상 캐스팅의 나래를 펼쳤다.

그러다, 점점 김 여사는 현실을 깨닫게 됐다. 그녀의 글은 인기가 없었다. 메인에서 내려간 이후에도 조회수나 좋아요 수가 꾸준히 늘어나는 다른 작가들의 글과는 달리, 자신의 글과 관련된 모든 숫자는 정체돼 있었다. 조회수도, 좋아요 수도. 결국 그녀는 답도 없다는 암흑의 병에 걸리고 말았다. 진단명은 작가라면 누구나 거쳐간다는 ‘내글구려병‘ 이었다.

김 여사는 자신이 상상했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고통스러웠다. 인간이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게 저주로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의 글 속 주인공들을 혼자 가상캐스팅하던 그 날들이 민망하고 창피했다. 그 정도로 김 여사의 ‘내글구려병‘은 답도 없이 점점 중증으로 치닫고 있었다.

김 여사는 그렇게 오늘도 정체돼 있는 조회수와 좋아요 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렸을 적, 그녀는 글쓰기로 한 이름 날렸었다. 학창 시절 글쓰기와 관련된 상은 아주 작은 거라도 놓친 적이 없었던 그녀였다. 그래서였을까. 김 여사는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애매한 건지도 모르고.

김 여사는 예전에 인터넷 게시판에서 읽었던 글귀 하나를 떠올렸다. 신이 저주한 인간은 재능이 없는 것도, 적은 것도 아닌 ‘애매한 재능‘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

‘내 얘기잖아 완전? 애매한 재능! 괜히 희망고문만 주지, 개뿔!!!’

애매한 재능임을 자각하는 순간, 김 여사는 치열하게 노력한다고 했는데도, 결과는 왜 평범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희망 고문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녀는 식탁 위 올려져 있던 그녀의 로지텍 블루투스 키보드와 아이패드를 노려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그 쪽으로 향할 뻔 하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아이씨, 오늘도 습관처럼 글 쓸 뻔 했다! 안 써! 아무도 안 보는 글, 다시는 안 써! 퉤!! 퉤!!!’

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는 집을 나섰다. 6월의 싱그러움을 느끼며 머릿속의 온갖 잡생각을 떨치고자 냅다 뛰기 시작했다. 아침의 따뜻하면서도 선선한 공기가 그녀를 반겼다. 햇살이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같은 날, 글 같은 건 뭐하러 쓰냐? 어차피 안 오를 조회수, 그딴 거 보러 플랫폼 들어가지도 마!‘

그녀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달리기 시작했다.

#

그날 밤, 김 여사는 내일 오전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마지막으로 짐을 싸고 있었다. 두달 간의 방학이니 이번에 올라가면 최소 한 달은 제주 집이 빌 예정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제습기에 긴 호스를 연결해 화장실 배수구 쪽으로 빼놓고, 시간대별 자동 예약 기능이 켜져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제습기는 됐고. 이쯤 해놓으면 돌아왔을 때 곰팡이 공격에 초토화되진 않겠지?‘

그녀가 마지막으로 캐리어에 서울에서 필요한 옷가지와 물건들을 챙기던 참이었다. 그녀는 식탁 위 키보드와 아이패드를 바라보았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것들을 캐리어에 챙기려다 멈칫했다.

‘가져가야…되나? 아니, 아무도 내 글 안 보는데 이참에 좀 쉴까? 아니, 아예 절필해버릴까? 난 아마 이제까지 애매한 재능의 늪에 빠져서 착각하고 있던 걸지도 몰라.’

김 여사가 식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져가? 말아?를 수천 번 반복하고 있는데 조슈아가 휴대폰을 들고는 김 여사에게 다가왔다.

“엄마, 아빠 전화왔어.”

“오. 고마워. 조슈아.”

조슈아는 그녀의 대답은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휴대폰만 전해주고는 쌩 가버렸다. 몸이성장한 만큼, 엄마와의 거리도 점점 멀어지는 조슈아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으이그. 저 놈 사춘기 되면 엄마랑 얘기도 안 하는 거 아니야. 난 그럼 그 때 혼자 뭐해야 하나. 남편은 육지에 있고, 아들놈은 엄마랑 얘기도 안 하면…‘

“유준아, 엄마 바꿨어?”

“어 오빠”

“여보, 짐은 다 쌌어? 내일 몇 시 비행기였지?”

“내일 아침 9시 25분.”

“어후, 짐 쌀 거도 많고 힘들겠다.”

“응. 서울에 꽤 있을 거니까 짐 쌀 게 많네. 매번 싸도싸도 귀찮아 죽겠어.”

“그래도 나 보러 오니까 좋지?”

“응. 좋지~”

“여보, 그런데 오늘 여보 글에 댓글 달린 거 왜 말 안 했어?”

남편의 물음에 김 여사는 무슨 말인가 싶어 순간 대답할 수가 없었다.

“…뭔 소리야.”

“여보 글에 댓글 달렸는데?”

“…진짜야?”

“응. 내가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해.”

“아니, 진지하게. 오빠가 단 거 아니고 진짜…진짜로 내 독자가 달았다고?“

“하…나 참….사람 말을 못 믿어!!“

“…잠깐 끊어봐. 나 확인 좀 하고 다시 걸게”

김 여사는 어안이 벙벙해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섰다. 가슴에 손을 대보니 쿵쾅쿵쾅 요란스럽게도 심장이 울려대 김 여사의 설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김 여사는 자신이 숨도 멈추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눈물이 날 뻔 했다. 고작…고작 댓글 하나인데…그녀는 신중하게 그녀의 글이 연재 중인 플랫폼에 접속했다.

<작가님. 작가님의 글에 울고 웃고, 정말 감동받고 있습니다. 아직 안 알려져서일까요? 조회수랑 좋아요가 너무 낮아 제가 다 속상해요ㅠㅠ 제가 많이 홍보하고 다닐게요! 전 오늘부터 작가님 지킴이!! 앞으로도 재밌는 글 많이많이 써 주세요. 정말 술술 눈을 뗄 수 없어서 단숨에 다 읽었어요>

김 여사는 댓글을 읽고 또 읽었다. 심장이 요동치다 못해 귀에서도 심장이 뛰고 있었다. 첫사랑이 그녀에게 ‘사실 나도 널 좋아해’라고 고백이라도 한 기분이랄까. 김 여사는 아까 애써 모른 척 했던 인터넷 게시판의 글귀를 다시 기억해냈다.

<애매한 재능은 신의 저주다. >

그녀가 그녀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기억했던 글귀였지만, 분명 그 뒤에 다른 문장이 있었다. 그녀가 흐린 눈으로 못본 채 했던 것 뿐.

<대부분의 99% 사람은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걸 노력으로 이겨낸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그 분야 전문가들이다.>

사실은 김 여사만 애매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대부분이 그랬다. 어차피 김 여사도 애초부터 뛰어난 천재가 아니고, 대부분의 99%에 속하는 평범한 인간 아니었나. 그러니까 나만 애매한 재능이라며, 저주 받았다며 폄하할 이유도, 자기 자신을 자학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노력으로 극복하면 되는 거였다.

‘그 노력, 도대체 얼마나 해야하는 건데!! 개뿔!!!!!‘

김 여사가 애써 마음 속으로 나쁘게 보려, 외면해 보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댓글 하나에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미치도록 설레는 자신이 어떻게 글쓰기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그녀는 닫혔던 캐리어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는 식탁 위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슬그머니 챙겼다.

‘조슈아가 5학년이 되면 또 어떤 일들이 생길까? 그건 어떻게 재미있게 써볼까?‘

그녀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또 조회수 망하고 좋아요 수 때문에 울 수도 있겠지만…내가 좋은 걸 어떻게 해! 가슴이너무 떨리는 걸 어쩌냐고. 애매한 재능인 걸 어쩌냐. 프로들도 다 죽 쒀봤다. 나도 간다, 못 먹어도 고!!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그동안 ‘국제학교 보내는 미쎄쓰 킴’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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