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소
예전에는 사업을 하는 것만이 나의 목표에 다다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목표가 불분명한 시절에도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해왔다.
내 인생의 일부를 스타트업에 쏟아부으면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갈 것이며,
그 목표를 이룬 내 모습은 상당히 멋있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매출이 나오지 않아서 진이 빠진 순간에
직원들의 월급을 마련하려 과외를 몇 개씩이나 뛰던 순간에
하루 종일 서울 온 구석을 돌아다니며 영업 미팅을 하느라 흐리멍텅한 눈으로 지하철에 타던 순간에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일을 하는가
그래서 몇 달간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다.
새벽까지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며, 무엇을 지향하는지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아직까지도 명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완벽한 결론은 아니지만 중간 단계쯤까지는 온 것 같다.
나는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영향력이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즉, 나로 인해 타인들의 감정에 파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영향력을 원하는 사람이기에 자본주의 세계에서 영향력의 원천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생각하면, 기존 체게를 부수는 희열이 느껴지며
디즈니를 생각하면 말로 형용하기 힘든 몽환적인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이키를 떠올리면 JUST DO IT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도전해볼 용기가 생긴다.
언젠가는 이들만큼 큰 브랜드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위에 얘기한 이유들은 본질이 아니다.
너무 결론이 안 나와서 무슨 프로이트적인 접근을 시도해봐야하나 고민도 했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연계해주는 심리 상담 프로그램까지 신청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 본질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내가 내린 쉬운 결론은 이거다.
나는 그냥 원래 이런 사람이다.
나는 내가 지금 힘들어 죽겠는 느낌이 들더라도
며칠 쉬고 나면 다시 일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지금 스타트업을 포기하더라도 내가 언젠가 다시 도전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게 1주일 뒤가 됐든 10년 뒤가 됐든 말이다.
연인 사이에서 '내가 왜 좋아?' 라고 물으면 '그냥 너라서 좋아'라는 대답이 나오는 것처럼
이유를 모르고 좋아해야 진짜 좋아하는 것 일수도 있겠다.
(사실은 아무리 고민해도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내가 생각해낸 쉬운 결론일 가능성이 더 높다)
내가 그냥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니까 마음은 조금 편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