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여름의 이야기
내가 스타트업에 뛰어든게 2021년 5월 쯤이니까 2022년 7월이면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은 때이다.
오늘은 그 때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글로 남겨두어야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에 나는 양가적인 감정에 빠져있었다.
처음 도전한 스타트업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좌절감에 빠져있도록 두지만은 않았다. 나간 팀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줘야 했기에 과외 3개와 알바 2개를 병행했다. 과외를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음식점에서 알바를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상당히 유명한 브랜드의 술집 홀서빙 알바를 했고, 동네 육회집에서 홀서빙 알바를 했다. 알고보니 나는 음식점 알바에 상당히 소질이 없다
좌절감과 동시에 열정(사실은 관성일 수도 있다)도 슬금슬금 돌아오고 있었다. 일을 하지 않는 기간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을 많이 했기에 이제 다시 도전해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스멀스멀 들고 있었다.
몇 달 간 고민 끝에 나는 내 정체성을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나름 규명하게 되었고, 무기력하게 좌절감에 빠져있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나는 좌절감과 열정이 동시에 공존하는 독특한 상태에 있었고, 소진되었던 에너지가 차츰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금 내 열정을 쏟을 곳이 필요했다.
(아 참, 하나 언급해야 하는게 있는데 당시 무기력증에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친구들의 권유 + 전문성에 대한 욕심 때문에 로스쿨 입시 시험 (LEET)를 응시한 상태였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풀어내려 한다.)
자연스레 내 관심은 다시금 스타트업으로 향했다.
이십 몇년 간 인생에서 무언가 제대로 해본 분야가 미디어와 교육 뿐이기 때문인지, 내가 그 분야에 사명감이 있어서인지 교육 + 미디어 커머스 형태의 스타트업을 구상하였다.
함께 할 강사들을 뽑고 시스템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비즈니스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어느 정도 그림도 잡혔고, 함께해줄 고마운 분들도 찾았지만 하나 부족한게 있었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게도 그건 '나 자신의 역량'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시도해본 적은 있지만, 자랑스러울만한 매출을 내 본 경험도 없고 사업의 처음과 끝을 경험해보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새로운 스타트업을 제대로 도전하려면 내 자신의 역량부터 강화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다음과 같은 경험을 통해 내 역량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어엿한 규모의 조직에 적응하는 경험
다양한 부서의 인재들과 수평적으로 교류하는 경험
사수의 피드백을 통해 성장하는 경험
수 억 단위의 매출을 내보는 경험
그리고 이런 역량을 쌓기 위해서는 이미 궤도에 올라가있는 스타트업에서 일해볼 필요가 있었다.
내 꿈, 가치관, 진로계획, 살아온 길을 담은 조잡한 5장짜리 이력서를 작성한 후 마음에 드는 교육회사 3곳에 콜드메일을 보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 회사에 무급으로라도 일할 기회를 얻고 싶다
운이 좋게 한 곳에서 연락이 왔고 대표님과의 면접 후 (면접 썰은 나중에 풀고자 한다) 신사업개발부 Associate로 2022.12.31까지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Business Developer Associate라는 명함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신사업 개발부 팀장님께서 '배포가 있어 보여서' 뽑으셨다고 한다.
당시 얼마나 막무가내였냐면, 대표님이 면접에서 '너는 이메일 어떻게 보내는지부터 가르쳐야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면접 현장에서 회사가 무급으로 인력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그런 식의 제안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에 어떠한 교훈을 담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고 막무가내로 콜드메일을 난사한 것은 나다운 선택을 한 것이다. 운이 좋아서 회사 첫 특별채용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 점에 대해서는 참으로 감사하다.
앞으로도 나다운 선택을 이어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