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념이 곧 나의 브랜드다
나보다 경험도 부족하고, 자본도 부족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이 큰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무언가 다르게 느껴진다.
수능 만점을 맞고야 말겠다는 고등학생이나,
세상을 변화시키고야 말겠다는 창업가나,
소외된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구하겠다는 변호사 지망생이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한 번 더 눈에 밟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내가 그 사람의 꿈과 관련된 무언가를 알게 되거나, 얻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어진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문뜩 궁금해지는 친구들은 다 꿈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다.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친구들도 멋있기는 하지만, 사실 근황이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다.
항상 비슷한 것을 하며 비슷하게 살아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언가 목표가 있는 친구 같은 경우에는
지금 그 목표를 향해 어디까지 나아가고 있는지 근황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룬 친구 옆에 나라는 사람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뭐라도 더 챙겨주게 된다.
생각해보니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지금 당장은 가진게 쥐뿔도 없는 사람이어도,
그 사람의 그릇이 크다는 생각이 들면 '멋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대리만족으로 하려 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를 하기도 한다. 질투를 하는 이유도, 나는 제자리인데 그 사람은 결국 그 꿈을 이룰까봐 겁나서다.
큰 꿈이 사람을 자석처럼 잡아당기다보니
꿈을 계속 꾸면 어떻게든 그 꿈을 이루게 된다는 시크릿(책)의 주장도 일면 타당해보인다.
단, 시크릿의 주장처럼 '우주의 힘'이 그 사람을 목표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이 그 사람을 목표로 이끄는 것 같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니,
내가 좋은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난 때는 내가 낙관적으로 큰 꿈을 꾸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친척 어른들부터 주변 친구들까지 다들 내가 목표한 바에 다가가고 있는지 궁금해 했고, 심지어는 같이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던 우리 회사에 시드 투자를 해준 분도 이 때 만나뵈었다. 그 분은 투자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배포가 있어서 투자했다. 뭐라도 할 것 같다.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반면에, 그리고 내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을 때는 좋은 인연도 쉽사리 생기지 않았다.
이상하게만치 지원하는 소모임/동아리는 다 떨어졌고 새로운 인연은 쉽사리 맺어지지 않았다.
인생의 큰 진리를 깨달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