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오생 Feb 26. 2024

제12장. 독도의 눈물

[제2부] 저의 슬픔을 아시나요

독도를 아시나요?

얼만큼 아시나요?


저는 독도입니다.

수많은 분들이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저를 찾아주십니다.

그분들은 제 슬픔을 아실까요? 여러분은 제 눈물을 얼마나 아시나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저에 관한 노래가 있습니다. 다들 아시죠? 1982년에 박인호 선생님이 작사 작곡하고 정광태 님이 불러서 국민가요가 된 노래입니다. 가사만 알아도 저에 대한 기본 지식을 알 수 있죠. 그런데 2017년까지 가사가 모두 4번이나 바뀌었다네요? 그동안 저에 대해 몰랐던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고, 시대와 상황도 바뀌었기 때문에 고치신 거랍니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면 제 슬픔, 제 눈물을 조금쯤은 공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먼저 오리지널 버전으로 노래를 들어보시죠.


[ 독도는 우리 땅 (정광태 오리지널 버전) ]


지금은 가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200리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87K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

▶ '리'가 'Km'로 바뀌었군요. 현대적 감각 때문이라네요? 읽을 때는 '팔칠 케이'로 읽는다는군요. 전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200리'가 더 좋은데... 왠지 아쉽네요. (제 나이는 사백만 살 정도?)

▶ 87Km: 정확하게는 87.4Km예요. 현대적 감각으로 고치려면 차라리 '팔칠사'가 어떨까요?

▶ 어떤 분들은 그러시더군요.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인데, 굳이 이런 제목 이런 가사가 필요할까?

네, 필요하답니다. '그 누가'는 누구일까요? 일본뿐일까요? 그래서 이 노래 이 제목이 필요한 거랍니다.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도동 1번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 132(백삼십이) 북위 37(삼십칠)

평균기온 12도 강수량은 1300

평균기온 13도(십삼도) 강수량은 1800(천팔백)

독도는 우리 땅(우리 땅)

----------------

▶ 행정구역 변동으로 인해 주소가 바뀌었어요.

▶ 도로명 주소도 있답니다. 동쪽 섬엔 '독도이사부길', 서쪽 섬엔 '독도안용복길'. 저를 지켜주시는 독도경비대는 독도이사부길 55에 있구요, 주민숙소는 독도안용복길 3에 위치해 있어요.

기후변화 때문에 평균기온과 강수량이 변했답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이죠.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오징어 꼴뚜기 대구 홍합 따개비

연어알 물새알 해녀대합실

주민등록 최종덕 이장 김성도

십칠만 평방미터 우물 하나 분화구

십구만 평방미터 799(칠구구)에 805(팔공오)

독도는 우리 땅(우리 땅)

----------------

▶ 기후변화로 인해서 독도의 생태계도 변했답니다. 명태 거북이가 사라졌습니다. 이젠 해녀 대합실도 아니랍니다. 지금은 홍합 따개비로 대체하고, 주민등록했던 분들의 이름을 대신 적어놓았군요.

요새는 오징어도 주민들도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고 최종덕 님은 1962년에 최초로 독도로 주민등록을 이전하신 분이죠. 그 뒤를 이은 김성도 님은 2018년에 사망했구요. 현재는 그분의 부인 김신열 님이 유일한 거주민인데요, 노령에 병환으로 요새는 거의 여기에 살지 않고 있답니다. 오징어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죠. 이래저래 가사를 또 바꿔야 할 것 같네요.


▶ '우물 하나 분화구'? 전 '우물 하나밖에 없는 섬'이 아니거든요. 고쳐주셔서 고맙습니다.

'799-805'는 여기 우편번호죠. 2015년 개편으로 지금은 40240이에요. 고칠 게 자꾸 생기네요.

▶ 독도의 인구는 독도경비대 44명, 독도 항로표지관리원(등대 관리원) 3명, 독도관리사무소 직원 2명, 김신열 포함하여 저한테 주민등록을 둔 주민은 모두 13명이랍니다. 2019년 12월 기준)

지증왕 13년(십삼 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50쪽에 셋째 줄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조선땅

독도는 우리 땅(우리 땅)

----------------

▶ 대마도가 '조선땅'? 오버한 거 아냐? 아니에요. 세종실록지리지》와 지도를 근거로 고친 거예요.

▶ 아래 지도를 보셔요. 조선의 영토를 나타낸 <조선국지리도>의 <팔도총도>죠. 누가, 왜 그렸을까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조선의 <팔도총도>(1530년 제작) 아니냐구요? 아니에요. 거의 비슷하지만 조선에서 제작한 게 아니라서 지도 이름이 다르답니다. 그럼 누가 어디서 제작한 걸까요? 놀라지 마세요.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의 명령으로 구끼 九鬼喜隆 등이 1592년에 일본에서 제작한 지도라네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남아있는 건, 그걸 1872년에 똑같이 베껴 그린 지도랍니다. 일본 국립 공문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잘 보세요. 울릉도 독도는 물론이고 대마도도 조선땅으로 나와있죠? 그걸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베낀 걸까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사람들, 디테일에 무지 강하잖아요. 그 사람들도 독도와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는 거죠. 그래서 가사를 "대마도는 조선땅"이라고 고친 거랍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세종 1년(1419)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를 정벌한 사실은 다 아실 거예요. 하지만 그때 대마도주였던 소 사다모리 宗貞盛가 조선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겠으니 대마도를 조선의 행정 관할에 넣고 그 대신 통상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 사실은 잘 모르시더라구요? 조선이 '대마주 對馬州'라는 행정 명칭을 하사하고 경상도에 속하게 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르시구요. 조선은 비록 관리를 파견하여 직접 통치하지는 않았지만, 임진왜란 이전까지 외교적으로 대마도는 엄연히 '조선땅'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노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 땅(우리 땅)

----------------

일전쟁을 일전쟁으로 바꾸었어요. 1906년, 일본은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기 위해 저를 멋대로 '임자 없는 섬 無主島'으로 규정하고 불법적으로 자기네 영토에 편입했죠. 그리고는 당시 울도(울릉도) 군수인 심흥택 에게 일방적으로 통고했답니다.


심흥택 님은 제 이름을 최초로 '독도'라고 지어준 분이에요. 그전에는 전라도 어부들이 저한테 자주 와서 고기를 잡으셨는데요, 제가 바위섬/돌섬이라고 해서 '독섬'이라고 불러주셨어요. '독'은 전라도 사투리로 '돌'이라는 뜻이거든요. 그 '독섬'을 심흥택 님이 행정 지명으로 등록하면서 한자로 '독도 獨島'라고 적어주신 거죠. 그걸 기념해서 제 앞바다의 바닷속 제2 독도 해산海山 이름을 '심흥택 해산'이라고 이름했답니다. 영화 <강철비 2>에서 대한민국 한경재 대통령(정우성 분)이 탄 북한 잠수함이 일본 잠수함의 공격을 피해서 여기 이 심흥택 해산으로 피하는 긴장된 장면, 다들 기억하시죠?


▶ 러일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대한제국이었어요. 하지만 말이 '제국'이지 현실은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외교권조차 빼앗긴 상태였답니다. 그러니 공식으로 항의를 하려야 할 수가 없었죠. 하지만 내부적인 문서로는 과거와 다름없이 우리 영토로 다루었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당시에 대한제국이 자기네한테 공식 항의하지 않았으니 자기네 거래요. 그게 말이에요, 막걸리예요?




제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은 전두환 정부 당시에 두 번이나 금지곡이 된 적이 있답니다. 알고 계셨나요? 그 이유가 뭘까요?


한국전쟁 즈음, 일본 배들은 제 앞바다에 툭하면 나타났답니다. 그래서 열혈남아 홍순칠 님이 의용수비대를 조직하여 일본 순시선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면서 저를 지켜주셨죠. 그 공로로 1966년엔 5등 근무공로훈장을 받기도 하셨구요.


그런데 이상하죠? 박정희 정권 당시였던 1974년 12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사흘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셨다지 뭐예요? 더 이상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떠들지 말라’는 요구를 받으셨대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아래 사진은 울릉도 안용복 기념관에 걸린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랍니다. 국토수호, 기공불멸. 국토를 수호했으니 그 공이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그런 뜻이죠. 홍순칠 대장님은 민족중흥을 기치로 내건 그 위대하신 대통령께서 이런 글씨까지 남겼는데 왜 자신을 괴롭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답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가시나요? 저도 모르겠네요. 슬퍼집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옵니다.  ** <박정희 정권은 왜 독도지킴이의 손을 부러뜨렸나 - 독도 밀약, 이제는 말해야 한다> 한겨레, 곽병찬 칼럼. 2012. 8. 15. 꼭 읽어보셔요.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일본 총리에게 "기다려 달라" 그랬던 건가요? 기다려서... 그래서 뭘 어쩌자구요?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그 전두환 정권 때 홍순칠 대장님은 <독도는 우리 땅> 노래 보급을 위해 열심히, 열심히 노력하셨대요. 그런데... 제 노래는 금지곡이 되고, 홍순칠 님은 이번에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당했답니다. 까불지 말아 이 짜샤! 풀려난 지 얼마 안 되어 결국 '지병'으로 사망하셨죠. (1986. 2. 7.)


아니, 도대체 '대한민국 국가'는 그분한테 왜 그랬을까요? 저한테는 또 왜 이러는 거죠? 정말 울고 싶습니다. 아니, 통곡하고 싶습니다. ** <‘독도는 우리 땅’ 작곡가 박인호 씨> 2006. 7. 20.  KBS 뉴스.


 (홍순칠 대장은 2005년 열린 우리당 전병헌 의원 등의 특별법 제정으로 비로소 국가 유공자가 되었다.)




홍순칠 대장님 이야기를 꺼냈으니 안용복 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안용복 님은 조선 숙종 시대의 어부였던 모양이에요. 노비였다는 설, 관리였다는 설도 있어요. 아무튼 제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왜놈들 배가 몰려와 싸움이 붙었는데 중과부적으로 납치되었대요. 그런데 일본땅에 끌려가서도 일본 관리들과 당당하게 논쟁을 벌여서 결국 다시는 울릉도 독도에서 고기를 잡지 않겠노라 각서를 받고 귀국했답니다.


안용복 님은 의기양양하게 귀국해서 동래부사에게 그 각서를 제출했대요. 어떤 상을 받았을까요? 세상에... 치도곤으로 곤장을 맞았답니다. 아니, 상은 못줄망정 어쩌면 그럴 수가 있죠? 왜냐하면 왜적의 출몰로 골머리를 앓던 조정에서는 쇄환刷還 정책, 즉 아예 주민들을 외딴섬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공도空島 정책을 시행 중이었기 때문이었대요. 조선 태조부터 시행해 왔던 소극적 방어 정책이었죠. 그 영민하시다는 세종대왕께서도 그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구요. 안용복 님은 그 정책을 어겼다고 곤장을 맞은 거예요. 기가 막히지 않나요?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풀려난 안용복 님은 다시 제 앞바다에 와서 고기를 잡더군요. 그런데 일본 어선들도 각서를 쓰고 나서도 여전히 여기로 몰려와서 고기를 잡지 뭐예요? 그만큼 여기가 황금어장이라는 얘기겠죠. 안용복 님은 화가 나서 다시 일본땅으로 갔답니다. 이번에는 꾀를 써서 관리로 위장한 다음, 조선의 지도까지 가지고 가서 담판을 했대요. 그래서 마침내 최고 권력인 막부幕府의 약속까지 받아냈다는군요.


다시 귀국한 안용복 님. 이번엔 조정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막부의 약속까지 받은 외교적 승리였으니 이번엔 대우가 달랐겠죠?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관리 사칭죄, 국제적 물의를 일으킨 죄... 등등으로 사형 판결이 내려졌답니다. 아니, 막 판결이 내려지려는 그 순간... 마침 자기네 잘못을 사과하고 울릉도/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확인한다는 일본의 문서가 도착했다네요.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그 대신 귀양을 가야 했습니다. 이게 뭐죠!? 훌륭한 일을 하고도 죄인 취급을 받다니... 지금도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여기가 왜 황금어장인지, 잠깐 제 앞바다의 바닷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실래요? 

강치초(독도 해저 지형의 우리나라 고유명사. 국가지명위원회 2015년 1월 6일에 제정)의 모습

제가 수면 위로 살짝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만 보고서, 국토의 막내라느니 조그만 바위섬이라니, 그런 말을 하시면 은근히 속상하더라구요. 바닷속에 있는 제 몸집을 좀 보셔요. 수면 위로 솟은 제 얼굴의 4,000배 크기의 몸집이 정말 장대해 보이지 않으신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를 '대화퇴' 또는 '대화퇴 어장'이라고 불렀어요. 일제 강점기 당시인 1924년, 일본 해군의 측량선이었던 '야마토大和 호'가 이 지역을 발견해서 '야마토타이大和堆'라고 이름한 거랍니다. 배 이름 뒤에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언덕'이라는 '퇴 堆' 자를 붙인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속도 없이 그 이름을 한자 발음대로 '대화퇴'라고 불렀구요.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모든 언어는 '실제'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불러주어야만 비로소 빛나는 '꽃'이 되는 법인데, 어쩌면 이렇게 속상한 일 투성일까요...


다행히 2015년에 국가지명위원회에서는 새로 '강치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여러분도 앞으로는 그렇게 불러주실 거죠? '강치'는 예전에 저랑 같이 놀던 제 친구 바다사자 이름이에요. '초 礁'는 '암초'라는 뜻. 아무튼 강치가 수만 마리 살았는데 일제 강점기 시기에 깡그리 사냥당해서 지금은 멸종되었답니다. ㅠㅜ

이제 왜놈들이 왜 옛날부터 여기에 몰려와서 그 난리법석을 피웠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게다가 최근에는 여기 이 강치초에 '불타는 얼음'이라는 별명을 지닌 '메탄하이드레이트/가스 수화물 Gas Hydrate'이라는 고체 천연가스가 6조 톤이나 매장된 것으로 밝혀져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답니다. 물론 시추 과정에서 메탄이 발생하여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겠지만요.


일본이 저를 노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제가 지니는 지정학적 가치 때문일 거예요. 1885년에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라는 인물이 '탈아입구론 脫亞入歐論'을 펼친 이후로, 일본인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한반도를 점령하고 대륙을 정벌하는 것만이 나라의 위용을 떨칠 수 있다는 소위 '정한론征韓論'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요. 저를 점령해서 동해의 주인이 되면 그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 아니겠어요? 러일전쟁 때부터 그들의 야욕을 지켜본 저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너무나 섬뜩하답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야욕을 못 느끼시나요?

일본의 근대적 국가 체제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후쿠자와 유키치. 정한론 주창자.




저는 억울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살짝 억울한 정도였어요.

사람들은 제가 울릉도의 동생인 줄 알잖아요.

아녜요! 제가 한참 형이걸랑요?


아득한 옛날이어서 그게 언제인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요. 대충 460만 년 전? 적어도 250만 년 전이었죠. 백두에서 한라로 이어지는 화산과 화산의 줄기. 그 땅속 용암의 흐름 한가운데에서, 어느 날 제가 푸르디푸른 이 동해 바닷물을 가르고 하늘 높이 장엄한 불기둥을 솟구치며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울릉도 나이는 기껏해야 250만 년? 아니, 5천 년이었는지도 몰라요. 아무튼 걔는 아직 한참 어린애예요. 키만 저보다 살짝 클 뿐, 몸집은 저랑 상대가 안 되죠. 제 몸집이 얼마나 어마어마 장대한지, 위의 강치초 그림에서 보셨잖아요. 언젠가 바닷물이 줄어든다면 제가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섬이 될지도 모르니까 너무 어린애 취급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하지만 이런 건 아주아주 사소한 문제겠지요.


저는 통곡을 합니다.


1948년 6월 8일 그날, 제가 목도했던 그 비극이 잊히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450만 년 나이를 먹는 동안 가장 슬픈 날, 대성통곡을 했던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울릉도와 동해안 각지에서 몰려든 배가 제 앞바다, 강치초에서 평화롭게 조업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때였죠. 남쪽 하늘에서 한 무리의 비행기가 날아온 것은. B-29 폭격기였습니다. 전투기도 있었어요. 어, 뭐지? 우리 어부들이 바라보니 성조기가 보였거든요. 저도 보았으니 저공비행을 한 거겠죠. 아, 미군이구나! 어부들이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어요. 미쿡은 우리 편이니깐요. 그때였어요.


따다다다다다~~~~

꽈광~ 꽝~ 꽈광~ 꽝~


기관총이 불을 뿜었습니다. 총알이 사정없이 어부들에게, 저에게, 날아들더군요. 뒤이어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미군들이 저한테, 민간인 어부들한테 기총 소사를 하는 거죠? 왜 폭탄을 떨어트리는 거죠? 미쿡이 우리 편 아니었던가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동작이 빨랐던 분들은 바다로 몸을 던지고, 제 바위 구멍 사이로 숨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시뻘건 선지피를 쏟으며 바다로 떨어져 강치초붉게 물들였지요. 얼마 남지 않았던 오랜 친구, 강치들도 꽤액 꽤액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습니다. 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 조종사들이 사격을 하고 포탄을 투하하면서 낄낄낄 웃었던 건... 제가 환영을 본 거겠죠? 설마, 설마요!!!


며칠 후, 한반도 본토에도 이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울릉도에 와 있던 기자들의 활약으로 보도를 한 거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특파원들이 달려왔습니다. 하지 남한 점령군 미사령관은 6월 16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담화문을 발표했지요. 자기도 이제 알았노라. 미군의 실수였다. 독도가 오키나와 공군기지의 사격연습장이었다. 기총 사격은 안 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폭격한 거다. 십여 명이 사망했다. 정확한 것은 진상 조사 중이니 유언비어를 금지한다. 조종사들은 군법회의에 넘기겠다. 배상금은 충분히 주겠다. 그런 내용이었죠.


하지만 그뿐. 진상은 76년이 지난 지금도 모릅니다. 조사나 한 걸까요? 사망자 숫자도 10여 명이 아니라 150명이라는 생존자의 증언도 있었죠. 제 생각에정도 숫자였같아요. 그런데 4년이 지난 1952년에도 미군의 독도 폭격은 있었답니다. 그때도 인명 피해가 있었는지는 한국전쟁 중이니 없구요.


1950년, 그때 난을 당하신 어부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웠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위령비가 사라져 버렸지 뭐예요. 누군가 해코지를 한 걸까요, 태풍에 날아간 걸까요? 그 비석은 제 영유권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또 하나의 강력한 증거라서 백방으로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기적적으로 수중에서 비석을 찾아내어 인양을 했답니다. 지금은 울릉도의 안용복 기념관에 보관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희생 당한 장소에 복원하지 않았을까요? 왜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의 후미진 구석에 보관하고 있는 걸까요? 그래야 원혼들의 억울함을 위로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돌멩이라서 그런지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가여운 영령들, 억울한 원혼들이여! 부디 편히 쉬소서...


여러분은 이 사건을 알고 계셨나요? 얼마나 알고 계셨나요?

아무리 미쿡 형님이 하시는 위대한 일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할 말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물며 지금은 미군 점령 시기가 아니잖아요? ㅠㅠ

<K-독도, 우리 민족의 아픔 '독도조난어민위령비'를 아시나요?> 독도재단. 참고.

<미국의 독도 폭격 사건> 네이버 블로그 참고.



저는 슬픕니다.


노천명 시인의 사슴은 목이 길어서 슬펐지만, 저는 이름이 많아서 슬프답니다.

《삼국사기》에서 불러준 이름은 우산도于山島(512). 근데 자산도子山島는 웬 말이고, 방산도方山島는 또 뭐랍니까? 글씨를 쓸 때 흘려 쓰지 않고, 옮겨 쓸 때 눈을 크게 뜨고 제대로 보았으면 그런 엉뚱한 이름은 안 생겼을 텐데 말이죠. '우于'가 '자子'가 되고 '방方'이 되다니, 그런 코미디 주인공은 사양하고 싶어요.


그래도 그것 때문에 슬프기까지야 하겠어요? 《세종실록지리지》엔 무릉(1432), 그리고 삼봉도(1471) 가지도(1794), 19세기말엔 전라도 어부들이 불러주던 돌섬과 독섬. 고종황제께서 지어주신 이름 석도(1900). 그리고 심흥택 군수님이 지어준 지금의 이름, 독도!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사랑하는 님이 좋아하는 음식은 모두 모두 '야채'이듯이 절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불러주신 그 모든 이름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슬플 까닭이 없지요. '야채'가 궁금하시면 강경 작가님의 <눈물짓는 마음> 보시구요.


제가 슬픈 까닭은 리앙쿠르 Liancourt, 호네스트Hornest, 량고도, 다케시마... 그런 '음란한' 이름들 때문이에요. 상대방을 '존중'해주지 않는 모든 행위와 모든 이름은 '음란'하니까요. 그 이유가 궁금하시면 <슬퍼도 마음을 다치지는 말아라> 참고하세요.


서양인들은 왜 '발견'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걸까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구요? 거기 원래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은 왜 무시하는 거죠? 에베레스트라는 영국의 측량 기사가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 산의 이름을 '에베레스트'라고 했다죠? 원주민인 티베트 사람들이 처음부터 불렀던 '쪼모랑마'란 이름은 왜 존중해주지 않는 걸까요?


그 사람들이야 제국주의자들이었으니 그렇다고 칠게요. 그런데 왜 우리까지 그럴까요? '리앙쿠르'라는 배를 탄 프랑스 사람들이 독도를 '발견'해서, 그 배의 이름을 따서 '독도'를 '리앙쿠르'라고 불렀다... 그렇게 서술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왜 우리까지 그들의 입장에 서서 '발견'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는 걸까요? 그러니 미군이 독도를 사격연습장으로 삼고, 민간인 어부들을 사냥감으로 삼아 기관총 사격 연습을 한 것 아닐까요?


저는 눈물이 납니다.


량고도, 다케시마. 그런 음란하고 추악한 이름은 아예 듣고 싶지도 않아요. 제국주의의 멤버가 되어 동아시아 침탈의 현지 가이드 역할을 한 일본 사람들이, 저를 겁탈의 대상으로 바라본 더러운 이름 아니던가요? 제 이름은 단순히 저에 대한 영유권 문제가 아니잖아요. 일본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완전한 주권 확립을 상징하는 문제 아니겠어요?


그런데 왜 대한민국 정부는 그 '누군가'가 저의 앞바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해도 끽소리 항의도 못 하고 가만있는 걸까요? 혹시 항의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존경하는, 공정의 화신이신 대통령 각하께서 일본 총리와 약주를 거하게 드셨다지요? 그때 일본 총리가 제 영유권 문제를 거론했다지요? 일본 아사히 신문이 그렇게 보도했는데 압색도 안 하고 잡아가지도 않고 항의도 안 하신 걸로 보아 사실인 것 같더군요. 그때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에도 기다려달라,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2023년 8월 8일은 제4회 섬의 날이었죠. 울릉도 동생과 제 앞바다에서 다양한 행사를 하기로 오래전부터 약속되어 있었죠. 그런데... 그 행사를 갑자기 취소하신 이유는 뭐죠? 네? 태풍 때문이었다구요? 그거야 2, 3일 연기하면 되는 일 아니었나요? 그걸 완전히 취소하신 이유가 뭘까요? 왜 대한민국 언론은 그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을까요? 자체적으로 미리 알아서 손타쿠 입틀막을 하는 걸까요?


얼마 전엔 제 앞바다에서 한미일 연합훈련을 하더군요. 좋습니다. 나라 방위 해야지요. 그런데 작전 지휘권은 누가 가지고 있죠? 전시 작전권이 미쿡 형님한테 있는 건 알겠어요. 그다음은 어디죠? 설마, 우리겠죠? 설마 우리가 제 앞바다에서 욱일기 휘날리는 일본 전함에 경례를 하고 일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설마... 이미 해버리셨나요?


한반도 유사 시엔 정말로 일본 자위대가 욱일기를 휘날리며 한반도에 들어오는 건가요? 일백여 년 전 그 역사를 되풀이하시려는 건가요? 그래서 홍범도 장군님 동상을 육사에서 끌어내린 건 아니시겠죠? 대한민국 국방부가 정훈 교육 자료를 만들면서 저를 일본과의 국경 분쟁지역으로 표시한 게... 설마 실수 맞겠죠? 실수라고 믿고 싶습니다. 일본 총리와 술 마시면서 몇 번 그렇게 알아서 '실수'해주마, 저절로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주마, 손타쿠 마음으로 그렇게 하시는 건 아니리라 믿고 싶습니다. 일본 총독이 아니시잖아요. 제가 또 잘못 생각한 건가요?


외롭지 않은데 눈물이 납니다.


저는 외롭지 않아요. 제 땅에는 사철나무 왕호장근 섬괴불나무 동백나무 보리밥나무 도깨비쇠고비 땅채송화 해국이 바람에 흔들리는 인연으로 함께 뿌리내리고 있구요, 오랜 벗님 강치는 제 곁을 떠났지만 아직도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해초롱이 잠자리 집게벌레 나비가 동도 서도 절벽과 분화구 사이사이에서 숨고 어울리며 한데 놀고 있으니까요.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눈물이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도 모르겠어요. 외롭지 않은데 외로운 이유를 모르겠어요.

서유석 님의 <홀로 아리랑> 노래를 들으니 눈물이 그냥 주르륵 흐르네요.

아, 우리나라 우리 민족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가슴이 먹먹합니다...


<홀로 아리랑>




부기 附記


2022년 10월 19일 오후 3시 20분. 독도의 땅을 밟았다. 허용된 30분, 비좁은 공간, 이 수많은 사람들... 나는 무엇을 볼 것인가.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가.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 것인가. 시간은 금방 흘렀다. 호르륵~~ 호각 소리. 이제는 배를 타야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탑승했다. 그 순간 나타난 어느 젊은 커플. 그 젊음을 위해 소망의 사진을 찍었다. 분들이 나이가 되었을 독도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것을 소망하면서, 안용복 심흥택 홍순칠 그리고 글에 공감해주시는 모든 분들이 독도의 눈물을 닦아줄 것을 소망하면서, 모든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인류애의 정신이 살아있을 것을 소망하면서... (사진은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