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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Apr 28. 2024

에필로그. 잃어버린 수평선

[제2부] 사라져 가는 샹그리라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인간은 누구나 낙원을 그리워한다. 


인간이 꿈꾸는 낙원에는 인간이 소망하고 동경하는 모습, 그리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투영되어 있다. 과거 동아시아의 우리 선조들은 무릉도원을 현세적 유토피아로 인식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그 낙원의 땅을 찾아 헤맸다. (무릉도원 이야기는 <별유천지비인간, 무릉도원을 찾아서> 참고) 현대 서구의 문명인들은 티베트고원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신비의 땅, 샹그리라를 그리워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들의 현실 세계를 샹그리라로 만들고자 한다. (샹그리라 이야기는 <일요일엔 참으세요> 참고)


소오생 역시 평생 동안 낙원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울릉도를 찾았다.




울릉도!

한반도 동쪽 짙푸른 망망대해 한가운데 찍힌 한 점의 섬.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신비의 섬.


겨울에 혼자 걸어서 그 섬을 일주했던 적이 있다. 눈 덮인 성인봉의 정기와 나리분지의 원시림. 장쾌한 일출부터 꿈결 같은 일몰까지, 깎아지른 절벽 능선마다 울울창창 하늘을 가르고 치솟은 소나무, 향나무, 너도밤나무! 깊고 깊은 계곡마다 은방울 휘날리며 떨어지는 신령스러운 물줄기들! 우주와 주파수를 함께 하는 마음으로 대자연이 전해주는 그 메시지를 들어보았다.


무엇보다 울릉도는 삶의 낭만이 넘치는 곳이었다. 피어나는 인정과 함께 훈훈하게 익어 가는 밤이 너무나 좋았다. 그곳은 정녕 우리들의 유토피아였다.


그게 언제였더라? 찾아보니, 2003년이었다. 바로 엊그제 같은데 20년 세월이 흘렀다. 그 섬에 일주도로가 완공되고 비행장을 건설 중이란다. 조바심이 났다.


2022년 가을, 서둘러 다시 울릉도를 찾았다. 울릉도는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두 번에 걸친 방랑의 추억을 정리하며 이야기를 갈무리한다.




울릉도의 특징은 3풍 3고 3 무無란다. 그게 예전 울릉도였다.


물, 오징어, 향나무가 많다고 해서 3풍.

산도 높고 파도도 높고 물가도 높다고 해서 3고.

뱀과 거지와 도둑이 없다고 해서 3 무란다. 


9가지 요소 중에서 부정적인 것은 무엇일까? 딱 하나, 물가物價일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긍정 요소다. 아, 물론 뱃멀미를 심하게 하시는 분에게는 파도가 높은 것도 부정 요소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그 요인 때문에 육지와 격리되어 낙원의 땅이 될 수 있었음을 생각하면 동시에 가장 큰 긍정 요소도 되는 셈이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소오생 나름대로 곰곰곰곰 생각해 본 결과 <신新 3 무無>로 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첫째, 울릉도 식당에는 공짜 커피가 없다.

둘째, 울릉도에는 오징어가 없다.

셋째, 울릉도에는 울릉도 사람이 없다.



울릉도 식당에는 공짜 커피가 없다



한국 식당에 처음 오는 외국인 친구들은 한결 같이 놀란다. 시키지도 않은 반찬들이 왜 잔뜩 나오는 거지? 불안해하다가 그 모두가 공짜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즐거워한다. 오옷! 커피도 꽁짜? 리얼리? 거기다가 밥 먹고 났더니 커피까지 공짜로 준다. 더욱 깜짝 놀라며 한국 예찬을 늘어놓기도 한다.


울릉도는 아니다. 울릉도 식당에는 공짜 커피가 없다. 여기 혹시 커피 없나요? 물어봤다가 무안만 당했다. 손님들이 빨리빨리 먹고 빨리빨리 나가줘야 하는데, 커피를 주면 그만큼 늦게 나간다는 것이었다. 헉... 울릉도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슴이 아팠다.  

2003년에 처음 갔던 울릉도는 따스한 인심이 넘쳐흐르던 곳이었는데... 민박집주인이셨던 고덕진 어르신은 돌아가신 부모님보다 더 부모님 같으셨고, 통구미 마을 식당에서는 밥도 공짜로 주시더니 기념품으로 향나무 조각까지 챙겨주셨었다. 남양에 있는 호박엿 공장을 찾아갔더니 공장장님이 일하다 말고 여기저기 안내해 주고는 헤어질 때 호박엿을 호주머니 가득 넣어주셨었다. 분실한 줄도 모르고 있었던 지갑을 찾아주고는 이름도 안 가르쳐주고 씨익 웃음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버스 기사님도 있었다. <무지개의 장>

울릉도는 그런 곳이었다. 곳곳마다 인정을 가득 실은, 삶의 낭만이 넘쳐흐르는 인간 사랑의 땅이었다.




20년 세월이 흘렀다. 울릉도에는 숙원이던 일주도로가 완공되고 비행장까지 건설 중이다. 그동안 고덕진 어르신은 돌아가시고, 민박집은 펜션으로 바뀌었다. 2022년 10월, 울릉도를 다시 찾으면서 맨 먼저 고덕진 어르신 산소를 찾아뵈려고 했다. 그런데 펜션 주인이신 며느님 왈, 울릉도엔 화장터도 없고 묘지를 쓸 곳도 없어서 육지에 모셨단다.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졌다. <저동에 뜬 무지개>


어이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펜션 주인아주머니께서 나더러 2박 3일 동안 다른 곳에 가서 지내다가 다시 오라고 하신다. 단체 손님을 받아야 하니 비켜달란 요구였다. 분명히 며칠 전 내가 먼저 전화로 예약을 했는데... 결국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오르락내리락, 1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숙소를 옮겼다가 다시 옮겨와야 했다. 화가 났지만 고덕진 어르신 생각을 하며 꾹, 꾹, 참았다. 어떻게 울릉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걸까...

며칠 후 남양 일몰전망대에 갔을 때였다. 국수바위 밑에서 밭일을 하고 계시는 최OO(당시 78세) 어르신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커피 이야기, 고덕진 어르신 이야기를 꺼냈다. 산소에 가뵙고 싶었는데 울릉도에는 왜 화장터가 없는지, 왜 묘소를 못 쓰게 하는지 여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르신께서 90도 폴더 인사를 하신다.


"어, 어르신... 갑자기 왜 이러셔요?"


당황해서 얼른 만류하며 여쭤보니, 요즘 같은 세태에 너무 감사해서 그러신단다. 울릉도에 화장터가 없긴 왜 없겠느냐고 한숨을 쉬며 말을 흐리신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도동 저동은 사람 살 데가 아니라고 하신다. 공연히(?) 가슴이 저릿저릿 저며온다. 평소에 오죽 속상한 일이 많으셨으면 처음 보는 한참 손아래 사람에게 이렇게 폴더 인사까지 하실까 싶어, 여쭤보기가 민망하다...


울릉도 인구는 대충 8,000 정도. 성수기에는 아마 그 두세 배 숫자의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중 90%가 도동과 저동, 사동에 집중되어 있다. 전통적인 관광 중심지는 도동. 세 곳 마을 중에 가장 비좁은 지형에 군청 등 각종 관공서가 집중되어 있다. 최근에는 사동이 뜨고 있다. 자동차 싣고 다니는 대형 크루즈가 야간에 포항 출발, 아침에 사동 도착이다. 비행장도 사동 부근에 건설 중이다.

울릉도 관광객은 거의 대부분이 단기 여행이다. 아주 길어야 3박 4일, 짧으면 1박 2일. 도동을 중심으로 저동 사동에 잠깐 와서 하루 이틀 총알 같이 구경하고 쏜살 같이 사라진다. 떴다방이 따로 없다.

상황이 그러하니 남양 태하 천부 등 서부와 북부 해안 마을에는 숙소가 거의 없다. (물론 있긴 있다. 초호화판 딜럭스 리조트도 있다) 인구도 시설도 돈도 몽땅 남동쪽 해안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며 울릉도 사정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게 되니, 펜션 주인아주머니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한 마디로 그만큼 먹고살기가 힘든 탓이었다. 울릉도는 겨울에는 폭설, 여름에는 태풍의 상습 피해 지역이다. 특히 내가 처음 다녀간 2003년 여름에는 태풍 매미가 덮쳤다. 2004년에는 태풍 송다가, 2005년에는 태풍 나비가 울릉도를 3년 연속 직격하며 섬 전체를 철저히 파괴해 버렸다.



그런 상황인데도 아주머니는 나와 조금 낯을 익힌 뒤로는 김치도 푹푹 퍼주시는 등, 점점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역시 아주머니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행정력의 부재다. 경상북도와 울릉군청, 특히 농협이 문제인 것 같았다. 최근 2, 3년 내의 울릉도 관련 뉴스를 한두 시간만 검색해 봐도 얼마나 정책의 일관성이 없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사안일주의, 땜질식 대처, 복지부동... 전형적인 후진국의 모습을 모두 다 찾아볼 수 있었다.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봤다. 세상에, 동네 구멍가게보다도 더 작은데 있는 물건은 거의 없고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다. 아니, 농협이 얼마나 돈이 많은 집단인데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울릉도가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만큼 특별한 수급 대책을 세워서 가격을 안정시켜야 할 것 아닌가! 울릉도의 고 물가는 관광객 이전에 현지 주민들이 더욱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울릉도에는 오징어가 없다



물론 한 마리도 없기야 하겠는가. 생각보다 훨씬 더 없고, 생각보다 훨씬 더 비싸다는 이야기. 우선 오징어 말리는 횃대에 걸린 오징어가 별로 없다. 저동도 그렇고 도동도 그렇고 울릉도 전역이 마찬가지다. 오징어를 말리고 계신 가게 주인 어르신에게 사연을 여쭤보았다.


어르신, 왜 이렇게 오징어가 없나요? 아직도 중국 배가 북한 해역에서 싹쓸이를 하나요?


그건 예전 이야기고 지금은 그것 때문이 아니란다. 북한에서 중국 배에게 허가를 내 준 3년 기간이 지난 지 이미 오래란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 때문일까? 기후가 변한 탓으로 오징어가 덜 잡히는 이유도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육지 배가 와서 저인망으로 쓸어가 버리기 때문이란다.


울릉도 배는 작고 육지 배는 커서 애당초 경쟁이 안 되는 데다가, 육지 배들은 십중팔구 저인망으로 훑어버리는 불법 어로를 저지르는 것 같은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단다. 설상가상, 멀리 나가면 기름값도 못 건지는 탓에 가까운 바다에서 잡으니 어획량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 육지 배들은 잡은 오징어를 당연히 육지에 하역하고. 그러니 울릉도 오징어가 서울에서 사 먹는 것보다 더 비쌀 수밖에 없다. 결국 울릉도 주민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이다.

울릉도 배

육지에서 온 배


1934년, 울릉도에 적설량 4m가 넘는 폭설이 쏟아져 일 년 내내 기근이 들었던 해가 있었다. 1934년 12월 11일 자 동아일보 송기찬 기자의 기사에 의하면, 울릉도의 모든 것이 흉년으로 모두들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고 한다. 오징어였다. 오징어만큼은 다른 해처럼 여전히 대풍이어서 사방에 횃대를 꽂아놓고 말렸다고 한다. 모든 것이 부족해도 이것만은 차고 넘치는 것. 그게 울릉도 오징어였다. 그런데 지금 울릉도에는 오징어가, 사라져 가고 있다.

소오생이 대만 유학을 할 때 얘기 하나. 군것질을 하러 뒷골목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오징어를 구워 팔고 있었다. 그런데 한결 같이 간판에 [ 韓國 鬱陵島 魷魚, 한국 울릉도 오징어 ]라고 붙여놨네? 물론 사기다. 뻥이다. 맛은 물론이고 생김새부터가 달랐다. 짜아식들~ 좋은 건 알아가지구... 근데 니들이 오징어 맛을 알기나 하냐? 괜스리 자부심으로 어깨가 으쓱했다. 울릉도 오징어의 명성은 그 정도로 국제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울릉도에는 오징어가 사라져 가고 있다. 이 사실은 대체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울릉도에는 울릉도 사람이 없다



'울릉도 사람'이란 '울릉도 토박이'를 말한다. 제주도에는 토박이가 있지만 울릉도에는 진정한 토박이가 없다. 우산국이 고려 현종 13년(1022)에 멸망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북부 및 함경도 남부까지 세력을 뻗쳤던 여진족이 자주 쳐들어오자 견디지 못하고 모두 육지로 도망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시 일몰전망대에서>


텅빈 울릉도는 계속 무인도였을까?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조선 시대에는 낙도에서는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공도空島 정책, 누군가 섬에 몰래 들어가서 사는 게 발각되면 몽땅 잡아와서 치도곤을 돌리는 이른바 쇄환刷還 정책을 무려 450년이나 시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도 인근 천혜의 어장에는 늘 어부들이 몰려들었다. 가까운 강원도 경상도 어부들은 물론, 전라도 여수 거문도 고흥반도 사람들, 심지어 왜인들까지 몰려들었으니 그들이 조업을 나왔다가 이렁저렁 부정기적으로 울릉도에 묵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전라도 사람들이 제일 많았던 듯. 1892년 검찰사 이규원이 고종에게 올린 장계에 의하면 일본인 78명과 조선인이 140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중 115명이 전라도에서 온 뱃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울릉도의 수많은 지명에는 상당히 많은 전라도 사투리가 남아 있다. <바람 부는 대풍감>




고종이 울릉도를 정식으로 대한제국의 행정구역 안에 편입시킨 것은 1900년 10월 25일의 일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일이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삼으면, 4대 째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을 울릉도 토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4대 째 토박이 주민은 모르긴 해도 거의 없을 것 같다.

1934년 12월 15일 자 동아일보를 보면, 당시 울릉도 인구는 12,000명. 울릉도가 살기 좋은 낙원이라는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왔단다. 지금도 8천 명 수준인데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다. 울릉도에서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다해서 그중 5,000명을 강제로 원산으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울릉도의 적정 인구는 7,000명 정도라는 이야기다. 아무튼 그 과정을 통해 한 세대가 걸러진다.


그렇다면 3대 째 토박이는 얼마나 될까? 통계는 못 봤지만 이 또한 거의 없을 것 같다. 1949년 울릉도의 행정구역이 경상북도로 이전되는 데다가,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지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인구 유동이 심한 법이니 이 시기에 또 한 세대가 걸러졌을 것이다.


2대 째 토박이는 그래도 꽤 있을 것이다. 우선 충청북도가 고향이신 고덕진 어르신 가족이 여기에 해당한다. 어르신은 오징어 배를 타다가 울릉도가 좋아서 아예 눌러 앉았노라고 늘 말씀하셨다. 하지만 역시 '경상도 사람'이 많은 것 같다. 1963년 포항에서 울릉도를 왕복하는 여객선이 생긴 탓이겠다. 아무튼 울릉도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언어가 경상도 사투리다.


2대 째 토박이가 울릉도 전체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 궁금했지만 내 검색 실력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일일이 물어보기는 했다. 놀랍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이주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여행 왔다가 울릉도가 좋아서 눌러앉은 사람, 자본을 가지고 들어와 호텔이나 리조트를 경영하는 사람 등등. 최근 울릉도는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투기 지역 중의 하나란다.


울릉도에 점점 울릉도 사람이 없어져간다. 외부인이 점점 많아진다. 관광객은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앞으로 울릉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잃어버린 수평선



21세기에 들어서자 전 세계적으로 ‘샹그리라(Shangri―La)’라는 단어가 ‘낙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로 급부상했다.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그의 베스트셀러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1933)에서 티베트고원 어딘가에 존재하는 환상적인 가상의 공간을 ‘샹그리라’라고 이름하면서, 이 단어가 현대 서구인들의 뇌리 속에 ‘지상의 낙원’이라는 이미지로 깊게 각인된 것에 기인한다.

그러자 중국 정부가 이 단어가 지닌 경제적 고부가 가치를 노리고 티베트고원으로 진입하는 관문 지역인 운남성 중전현 中甸縣의 지명을 아예 '샹그리라(香格里拉)'로 바꿔버렸다(2002) 그리고는 각종 언론매체와 서적 등을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전 세계적으로 다시금 ‘샹그리라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KBS와 SBS에서 <차마고도>를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방영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샹그리라’는 ‘차마고도’의 핵심지역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심은 바로 곧 ‘샹그리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최근에는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와 정치적으로 반중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어느 정도 열풍이 가라 앉았지만 국제 정세가 바뀌면 다시 불붙을 것으로 짐작된다.

[잠시 광고 말씀 ^^]

샹그리라 일대는 《National Geography》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라고 공표했을 정도로 환상적인 풍광을 자랑합니다. 무엇보다 생각의 패러다임이 현대 문명인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필자는 2006년 경부터 2010년까지 매년 서너 달씩 그 지역을 떠돌아다닌 바 있습니다. 그들의 경건한 삶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접하면서 깊은 반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들과 그 느낌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오늘로 <울릉도, 방랑의 추억> 연재가 끝나면, 잠시 휴식 기간을 가진 후 <샹그리라, 방랑의 추억> 그리고 이어서 <동티베트, 방랑의 추억> 매거진 발행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그간의 성원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동안 제때 제때 발행하지 못한 게으름을 꾸짖어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그렇게 환상적으로 아름답던 샹그리라가 급격히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티베트고원의 설산과 빙하는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돈 때문이다. 탐욕 때문이다. 난개발 때문이다.


현지 소수민족들의 삶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2002년 개방 이후 불과 5, 6년 만에 티베트족藏族 나시족納西族 창족羌族 등 현지 소수민족들의 삶은 급속히 한족漢族 동화同化 현상을 보이며 고유의 정체성을 급격하게 상실해가고 있다. 이제 그들은 조만간 종족이 사라지는 위기에 처해질 것이다. 샹그리라를 향한 현대인의 노스탤지어가 오히려 샹그리라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 소수민족들의 절반은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샹그리라'의 원주민처럼, 자신들의 땅에서 외부에서 들어온 서구인들에게 종속된 삶을 살게 된다. 나머지 절반은 ‘샹그리라’를 탈출한 로센과 콘웨이처럼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도시로 떠나지만, 결국 도시의 새로운 빈민층이 되어 도시의 뒷골목을 떠돌게 된다.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줄거리는 <일요일엔 참으세요> 참고)


오늘날 ‘샹그리라’를 그리워하는 현대인의 욕망은 단순히 그리움의 단계에서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사회 개혁적’인 개발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현대화’와 ‘선진 사회’를 향한 꿈이 그것이다. 현대인들은 소설 속의 ‘샹그리라’처럼 문명화된 아름다운 전원에서 여유 있는 웰빙 생활을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꿈은 우리의 현실 세계를 ‘샹그리라’로 인도하기보다는,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갈 ‘욕망의 허상’이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울릉도는 또 하나의 샹그리라다. 지방 정부는 울릉도를 개발하고 현대화하여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려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개발이 되면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울릉도 토박이 사람들에게? 관광객들에게? 그럴 리가 없다. 땅값은 천정부지로 뛸 것이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갈 게 뻔하다. 수익은 90% 이상 외부 자본가에게 돌아가고, 울릉도는 쓰레기 더미에 파묻힐 것이며, 울릉도에 뱀과 도둑과 거지가 없다는 말은 옛날 전설로 남을 것이다.


고덕진 어르신 가족과 같은 울릉도 토박이들은 팔고 땅을 판다 한들 돈으로는 울릉도에서 버틸 재간이 다. 울릉도에서 계속 버티려면 외부인이 지어놓은 시설의 종업원으로 취업하여 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울릉도의 주인이던 사람들이 외부인에게 종속된 노예나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게 싫으면 울릉도를 떠나야 한다. 수평선을 잃어버리고 육지 어느 한 구석에서 새로운 빈민굴을 형성해 나갈 수밖에 없다. 아마존 개발의 역사가 그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 서구인들이 아마존을 개발하기 전에는 그 밀림 속에 약 700개의 종족이 존재했다. 커피 농장, 젖소 목장 등으로 개발이 시작된 20세기 초에는 그 개체 수가 270개 종족으로 급감했고, 21세기 초에는 다시 180개로 감소했다. 자신들이 주인으로 살던 땅에서 돈 몇 푼 받고 쫓겨나자 그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오빠는 농장/목장의 종업원이 되어 노동을 착취 당하고, 누이동생은 대도시로 가서 몸을 팔며 빈민굴을 전전하게 되었다. 소위 경제 구조의 분화다. 그렇게 종족이 분산되고 소멸되었다. 울릉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울릉도 토박이'가 없고 뜨내기만 있는 울릉도, 현대화된 울릉도, 수평선이 사라진 울릉도. 그런 곳이 과연 옛날처럼 낙원일 수 있을까? 쾌속선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쏟아져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관광객의 물결 속에서, 울릉도가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대자연을 만날 수 있을까? 민족의 호연정기를 만나고 키울 수 있을까? 과연 삶에 지친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되살릴 수 있는 힘찬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 참 고 ]

1987년, 유엔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는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여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을 제시했다. 현대 물질 문명이 야기한 문제점에 대한 엄중 경고였다.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현대 물질문명은 지속적인 성장 신화의 허상 속에서, 성장과 개발의 대가로 지구의 자원 고갈 및 지구온난화, 생태계 파괴 등과 같은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였다.

(2) 이것은 지구에 내장돼 있는 자원이 무한하다는 전제 위에 출발한 것으로, 이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성장 · 풍요 · 개발 등의 모든 가치는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양적量的 물질적 가치는 인류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3) 그러므로 인류의 삶은 향후 ‘적은 것’과 ‘작은 것’ 속에 내재된 질적 · 정신적인 측면의 새로운 가치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류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그것으로 미래지향적인 패러다임을 삼아야 한다.

세계환경개발위원회는 이 메시지를 통해 ‘물질적 샹그리라’의 허상을 깨고, 인류 공동의 노력으로 이 세상에 진정한 ‘샹그리라’의 세계를 구현하자고 선언하고 있다. 울릉도 개발도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요원하다.
우울하게 마무리해서 죄송하고 속상합니다.

제가 울릉군수라면 사전 신청을 받는 입도제入島制와 지역화폐제도를 시행하고 싶습니다. 방문객 숫자 조절, 물가 통제. 방문자들에게 입도 요금 포함한 고액의 돈을 받아 지역화폐로 돌려줌. 울릉도에서는 지역화폐만 사용 가능하게 함. 남는 지역화폐는 돌려주지 않는다. 등등 조금만 머리를 쓰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문제 같은데 속상합니다. ^^;;

울릉도를 가실 생각이 있는 작가님들께서는 비행장이 완공되기 전에 서둘러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성수기를 피해서, 최소한 열흘 정도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최대한 많이 걸어다니시길 추천합니다. 궁금한 점을 질문해주시면 성심성의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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