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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Jan 07. 2024

제5장. 일요일엔 참으세요

[제1부] 2003. 1. 12. 샹그릴라 이야기

오늘은 일요일. 주일, 쉬는 날! ^^


무척이나 청명한 날이네요.

날씨가 조금 아깝긴 하지만 연일 무리했으니 하루쯤 푸~~욱 쉬어야겠죠?

아랫목에서 뒹굴거리며 가지고 온 소설책이나 마저 읽어야겠습니다.


근데 어쩐지 근질근질...

너무 쉬면 발에 곰팡이가 필 우려도 있으므로

오전에는 가볍게 뒷산에 있는 봉래폭포나 다녀오기로 결정.

저동에서 폭포는 약 2km!

얼마 전 옆방에 있던 커플이 갔다가 눈이 넘 많아서 그냥 왔다는 그 폭포이지요.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까지 왔다가 그걸 안 가?

하지만 어제 그제 하도 눈에 치인 터라 은근히 염려가 아니 되는 건 아니더군요.

         

그런데 여긴 눈이 많이 쌓이긴 쌓였지만 (태하령의 1/3 정도?)

이미 사람이 많이 다닌 터라, 길이 모두 다져져 있구먼요? 근데 뭐가 문제지?

혹시 아이젠을 안 가져왔나? 설마... 겨울 울릉도에 오면서 그럴 리가.

 

아무튼 발밑에 아이젠을 부착하니,

척척! 조금도 안 미끄러지고 단숨에 다녀왔지요.

단숨? 단숨은 아니고... ^^;;

왕복 2시간쯤? 암튼 내수전 상봉이나 태하령과는 비교도 안 되더군요.


게다가 내일 새벽에는 드디어 성인봉에 오를 계획!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 그런지, 자세히 보고 드릴 만한 내용이 별로 없네요.

일요일이니까 좀 참아주세요. 네? ㅋㅋ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다. 높이 30m. 울릉도 상수도 수원지. 물맛이 너무 좋다. 2003. 1. 12.
20년 만에 찾아가니 풍혈 칸막이 시설이 생겼다. 2022.10.24.
풍혈. 여기서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엔 따스한 바람이 나온단다.
(좌) 폭포로 가는 산책길 (우) 산림욕장
봉래폭포. 가을이 익어 가는데도 단풍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2022. 10. 24.



점심 먹고 낚시도 좀 해봤는데, 입질도 안 하네요?

용왕님이 드래곤을 무시하시다니... ㅠㅠ

에라, 들어가서 책이나 마저 읽자.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독서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와, 금방 다 읽어버렸네요.

사실은... 울릉도 오기 전부터 읽기 시작한 거라 거의 다 읽은 터였지만. ^^;;


무슨 책이냐구요?

제임스 힐튼 James Hilton (1900~1954)이라는 영국 소설가가 쓴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이라는 책인데, 혹시 읽어보셨나요?

네? 작가 이름은 고사하고 책 이름도 처음 듣는다구요? 아, 네... 죄송합니다~ ^^;;


그럼... 혹시 '샹그릴라 Shangri―La'라는 말은 들어보셨나요?

아, 그건 아신다구요? 네? 동네 카페 이름이라구요?

쩝... 하긴, 그런 이름의 모텔도 있더구먼요.  

그 외에도 여기저기서 은근히 많이 본 것 같네요.

근데... 이 이름을 왜들 그렇게 많이 쓰는 걸까요?


사실 '샹그릴라'는 서구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단어 중의 하나랍니다.

특히 1940~60년대에 많이 사용되었다는데요, 최근에 갑자기 또 부각되고 있답니다.

예전에는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몇 개만 예를 들어볼까요?


1) 미국 해군의 군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하와이 진주만에서 일본군에게 격침되었지만...)

2) 미국 대통령의 하계휴양지. (지금은 캠프데이비드로 이름을 바꿨지만. 데이비드는 아이젠하워 손자 이름)

3) 50~60년대 항공사의 퍼스트 클래스 좌석 이름.

4) 전 세계적인 체인망을 가진 5성급의 호화찬란한 호텔 이름. (아직도 세계 곳곳에 있어요.)

5) 미국 육군항공대의 비밀기지.

6) ‘화장실’을 지칭하는 미군의 은어.


어떤 뉘앙스인지 대충 짐작하시겠죠?

‘아주 고급스럽고 호화로운’, 또는 ‘은밀한 곳에 위치한 쉼터’.

묘한 선망과 향수를 자아내는 신비한 느낌의 단어죠.

그래서 마침내 사전에까지 등록되었답니다.


샹그릴라: 전원목가 田園牧歌 풍의 세외도원 世外桃源


신조어가 만들어진 거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바로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 이 책 때문이랍니다.

'샹그릴라'는 이 책에 등장하는 티베트불교의 사원 이름이에요.

아, 진짜로 있는 게 아니구요, 작가가 허구로 지어낸 가상의 공간이어요.


작품의 공간 무대는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고원~!

그곳 어딘가에 숨어있는 외부 세계와 완전히 격리된 어느 신비의 땅이죠.

삼각형의 거대한 설산이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아있고... 그 밑으로는 사금이 나온다는 깊고 깊은 계곡~

그 사이, 테라스 지형의 푸른 초원에 자리 잡은 샹그릴라 사원!

정말 생각만 해도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풍광이겠죠?


근데... 엥? 이게 어찌 된 일이람?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곳이라면서, 초현대적인 시설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다네요. (말도 안 돼 ^^;;)

사금이 나온다는 계곡 덕택인지, 먹는 것도 엄청 희귀한 식재료로 무지 잘 먹고...  

게다가 여기 사람들은 다들 젊어 보이는데... 알고 보니 나이가 백 살, 이백 살이더래요.

한 마디로 여기는 인간의 욕망을 완벽하게 만족시켜 주는 이상향의 낙원이라는 거죠. (심하다 심해... ^^;;;)


아무튼 이 책은 1933년에 발표되었는데요,

그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 경제적인 대공황,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드리워지던 몹시 살기 힘든 때인지라,

책이 출판되자마자 어지러운 세계정세 속에서 시달리던 서구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답니다.

"아, 나도 샹그릴라에 가고 싶다. 그런 곳에서 살았으면..." 그랬겠죠?


그래서 영화도 만들어졌대요.

1937년에 할리우드의 컬럼비아 영화사가 이 소설을 영화로 제작했는데요, (감독: 프랭크 카프라)

그때 만든 영화가 공전空前의 대히트를 친 다음부터 이 단어가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군요.

그래서 '샹그릴라'라는 단어가 서구인들의 뇌리에 ‘지상의 낙원’이라는 이미지로 깊게 각인되었다는 이야기.

(좌)《Lost Horizon》표지. (우)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 세트장. 카라쿨 설산 아래, 초현대식 사원인 샹그리라가 보인다.


그런데... 그 샹그릴라가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현실 속에 진짜로 있다면?

여러분 같으면 가보고 싶겠어요, 아니겠어요?


1957년, 놀라운 뉴스가 서구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답니다.

소설 속의 샹그릴라는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록에 있는 발티스탄 Baltistan이 모델이었다~! 그런 뉴스였죠.

누가 주장했을까요? 하하, 당연히 인도 정부였겠죠, 뭐. (아래 지도의 ①번)


아무튼 그로부터 서구인들이 물밀듯이 그곳을 찾아가는 바람에,

인도 정부는 30년 동안 관광 수입을 7억 달라나 올렸다는 이야기!

그러자, 어라? 이거 돈 좀 되겠는데? 네팔, 부탄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답니다. (아래 지도의 ②, ③번)

여기가 진짜 샹그릴라예요! 일루 와서 돈 좀 풀고 가세요~! 하하하


자, 그러다가 21세기가 되었습니다.

앗, 잠자는 용이라던 중국이 드디어 돈에 눈을 번쩍 떴네요?

니네들 거기는 히말라야 남쪽이지 티베트고원이 아니잖아. 티베트고원은 이젠 울리 쌀람 땅이라고!

그리고는 운남성 중전현 中甸縣의 지명을 아예 '샹그릴라'로 바꿔버렸다는 이야기. (아래 지도의 ④번)


그러다가...

아예 캄 kham 지역, 그러니까 동티베트 전역을 '광역 샹그릴라'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샹그릴라'가 한 두 곳이 아니네여~ 하하

아무튼 그래서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서구인들이 대거 그곳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부터 그런 뉴스가 계속 뜨고 있네여.

 

참 웃픈 이야기 같긴 한데... 대체 어떤 자연환경이길래 그 야단일까, 궁금해집니다.

저도 언젠가 그 동네에 가 볼 수 있을까요?

위의 지도는 구글 지도를 인용하여 수정한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 같은 단어를 막연히 동경했답니다. 그래서 등산을 유달리 즐기며 전국 방방곡곡의 골짜기를 뒤지고 다니길 좋아했죠. 그 심리의 이면에는 필경 낙원의 땅에 대한 그리움이 숨어있었을 거예요. 툭하면 배낭 하나 훌쩍 짊어지고 드넓은 중국 대륙 여기저기 방랑하는 것도 어쩌면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제 거기에 '샹그릴라'까지 만나게 되었군요.


근데요, 여러분! 제가 겨울 울릉도에 오면서 왜 이 소설책을 가져왔을까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울릉도'야말로 우리나라의 '샹그릴라'가 아닐까 싶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이유를 들어보실래요?


(1)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울릉도만큼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곳이 또 어딨겠어요, 그쵸?

(2)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울릉도의 풍광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죠!

(3)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땅이다. 이건 《노자 老子》에 나오는 말인데요, 영토가 작은 나라에 백성의 인구가 적으면 바람직한 대동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는 뜻. 울릉도가 딱 그렇죠!

(4) 갈등이 없는 평화의 땅이다. 인정이 넘쳐흐르는 울릉도! 제 울릉보고서를 읽어보신 분은 다 아실 거예요.

(5) 시간이 멈춘 곳이다. 샹그릴라의 주민은 이백 살이니 뭐니 너무 비현실적이지만, 울릉도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바우 민박집 주인장 어르신이 증언해 주셨어요. ^^


어때요? '울릉도'가 '한국의 샹그릴라'라는 제 생각에 동의해 주시는 거죠?

근데... 그렇게 해서 너무 유명해져서 이 좁은 땅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지면... 그것도 참 그렇네요.

'소국과민'이 '소국다민小國多民'이 되어버리면 완전 망해버리는 거잖아요. ^^;;


엇? 벌써 시간이 꽤 되었네요?

이런저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다 보니 금방 밤이 깊었습니다.

내일은 고대하던 울릉도의 최고봉 성인봉 등산!

어서 자야겠죠?


별이 무척 많군요.

내일 살아 돌아와야 할 텐데...



後記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줄거리


근심 걱정이 없는 ‘낙원’이란 공간은 사실 따분하게 마련이다.

서구문학에 면면히 맥을 이어온 이른바 ‘유토피아 문학’이란 그래서 모두 따분함 일색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이 소설은 다르다. 이 소설은 자칫 따분함으로 흐르기 쉬운 ‘유토피아 문학’에 추리소설의 기법을 도입하여 독자들을 단숨에 그 신비로운 세계로 몰입시킨다.


게다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수미상응首尾相應하는 치밀한 구도, 등장인물의 대화 속에 넘쳐흐르는 독특한 유머 감각과 페이소스, 무엇보다도 소설의 주요 무대인 티베트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에 대한 해박하고도 정확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생생한 현장감과 박진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작가는 인도와 파키스탄 등지를 여행한 경력만 있을 뿐, 정작 이 소설의 주요 무대인 티베트와 중국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소설의 공간무대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었을까? 무엇을 근거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소설을 쓴 것일까? 작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남기지 않고 있다. 마치 독자들이 직접 추리해 보라는 듯이.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도 소설의 추리기법을 흉내 내어 그가 소설에서 묘사한 ‘샹그리라’의 제반 특징을 통하여 그 실마리를 추적해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외형적으로 이른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부분이 소설의 ‘몸체’ 부분을 감싸고 있는 형태로, 일반적으로 추리소설에서 흔히 취하는 전개방식이다.


작가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두 명의 국외자局外者를 등장시킨다. ‘탐정’에 해당하는 떠돌이 소설가 러더포드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의 ‘나’는 옥스퍼드 대학동창이다.


소설은 그들이 비행기 납치사건으로 행방불명된 그들의 또 한 명의 대학동창인 콘웨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러더포드가 ‘나’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매우 뜻밖이었다.


얼마 전 중국의 한 병원에서 우연히 기억상실증에 걸린 콘웨이를 만나 함께 여행을 하였는데, 나중에 기억을 되찾자 다시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이다. 러더포드는 당시 콘웨이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 놓은 원고를 ‘나’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콘웨이의 종적을 찾아 길을 떠난다. 소설의 몸체 부분인 그 원고에는 ‘샹그리라’의 위치와 특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1931년, 인도의 바스쿨(현재는 파키스탄에 위치)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당시 현지 영국 영사인 콘웨이는 현지의 영국인들을 철수시킨 후, 자신도 세 사람의 일행과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마지막으로 바스쿨을 탈출한다.


그러나 비행기는 정체불명의 조종사에 의해 납치되어 캐라코람산맥과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고원 어딘가를 향한다. 오랜 비행 끝에 비행기는 어느 이름 모를 계곡에 불시착하고, 조종사는 그 충격으로 사망하며, 일행은 때맞추어 등장한 현지 주민들에 의해 인근의 티베트불교의 사원인 ‘샹그리라’로 안내된다. [주]


[주] 흔히 '티베트불교'를 '라마교'라고 표기하는 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이라는 뜻. '라마교'라는 말은 '스승교'라는 뜻이니, 성립할 수가 없는 말이다. '티베트불교'라고 표기해야 옳다.



유청색 지붕의 화려한 누각들로 이루어진 ‘샹그리라’는 천인절벽의 산허리에 매달려있었다. 웅장한 잿빛 암벽으로 이어진 그 위쪽으로는 눈부신 피라미드형의 거대한 설산이 신비롭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해발 8,540m라는 그 산의 이름은 ‘카라칼’. ‘푸른 달(Blue Moon)’이라는 뜻이란다.

절벽 아래쪽으로는 얼음같이 차가운 푸른빛 속에 현지 주민들이 사는 불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을 펼쳐내고 있다. 계곡 전체는 육지에 둘러싸인 항구의 모습. 카라칼산은 마치 그 항구를 내려다보는 등대처럼 ‘샹그리라’를 지키고 있었다. 피라미드형의 설산 카라칼은 ‘샹그리라’의 수호신이며 상징인 것이다. 


주인공 콘웨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그 풍광에 넋을 잃는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샹그리라’의 내부였다.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이 은밀한 사원은 동방의 지혜와 서양의 문명이 완벽하게 결합된 곳이었다.


사원 전체에 중앙난방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었고, 객실에는 최고급 욕조가 설치되어 있었다.

박물관에는 중국 역대 왕조의 진귀한 예술품들이,

도서관에는 동서고금의 온갖 귀중한 서적들이 구비되어 있었으며,

야외 정원에 마련된 음악실에는 고풍스러운 하프시코드와 초현대식 그랜드피아노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아름다운 중국 소녀 로센이 연주하는 피아노 멜로디는 황홀하고 영롱한 천상의 음악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부富의 원천은 블루문 계곡에서 생산되는 황금이다.

든든한 경제력이 확보된 ‘샹그리라’는,

사원의 라마승들이 중용中庸과 자비의 이치로 주민들을 다스리는 자그마한 지상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콘웨이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하였다가 뜻하지 않게 이 격리된 신비의 세계로 초대된 일행은 모두 네 명.

납치되어 ‘샹그리라’를 대면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캐릭터는 모두 대단히 독특하다.


먼저 직선적이고 다혈질인 24세의 바스칼 주재 영국 부영사 멜린슨 대위. 

합리주의자라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인내심이 없으며 매사에 따지기 좋아하고 투쟁지향적이다.

단순 흑백논리의 소유자이며 서구적 이원론二元論의 천박한 우등생이다.

자신의 삶의 계획이 돌연 차단당한 사실을 견딜 수 없는 그는 늘 외부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미국인 사업가 바너드. 

농담 잘하고 넉살 좋은 그는 상황을 의외로 여유롭게 받아들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그는 은신처를 찾는 희대의 경제 사기꾼, 브라이언트라는 인물이었다.

작가는 그의 ‘변명’을 통해 당시의 세계경제 전체가 파탄 상황임을 지적함으로써,

경제적 위기상황에 처한 독자들로 하여금 ‘샹그리라’에 대한 갈망을 가일층 심화시킨다.

그는 물론 이 은신처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동방전도회의 여자 전도사인 브링클로.

기독교 지상주의자인 그녀는 동방의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감에 사로잡혀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티베트불교와 유교, 도교 등을 믿는 현지주민들을 전도하기 위해 열심히 티베트어를 배운다.

그러나 소설은 과거 이곳을 찾아왔던 기독교 선교사들이 그러했듯이

그녀 역시 장차 차츰 티베트불교의 승려로 변신하게 되리라는 복선을 도처에 매복시켜 놓는다.


주인공 콘웨이는 책임감이 투철한 37세의 영국외교관이다.

중국어 및 동아시아 각국의 언어에 능숙하다.

탁월한 피아노 연주 실력을 지녔는가 하면 상당한 등반 솜씨를 지닌 알피니스트의 경력도 지니고 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온갖 상을 휩쓴 다재다능한 전형적인 서구의 엘리트다.

동시에 명예욕과 공명심이 없고 명상과 고독을 즐기는 동방의 현자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콘웨이는 파격적으로 ‘샹그리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승정과 직접 만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대승정은 콘웨이에게 ‘샹그리라’의 모든 비밀을 이야기해 준다.


이곳에 현재와 같은 티베트불교 사원이 건축된 것은 약 200여 년 전.

건축자는 동아시아의 기독교 전파에 앞장섰던 제수이트파의 선교사, 페로 신부였다.

기독교 전도의 목적으로 세상과 격리된 블루문 계곡을 찾아온 그는 점차 티베트문화에 동화되어 간다.

티베트불교와 신비의 영약을 받아들이고 요가로 명상을 즐기며,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비로운 왕국 ‘샹그리라’를 건설해 가는 것이다.


대승정의 오랜 이야기를 듣던 콘웨이는,

‘샹그리라’가 멸망으로 치닫는 서구 물질문명을 대체할 인류의 희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대승정이 바로 곧 페로 신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샹그리라’는 시간을 초월하여 정신세계의 완성을 추구하수행자들이 숨어 사는 불로장생의 땅이었다.

대승정은 250여 세, 그의 비서 격인 장 노인은 100세,

심지어 앙증맞은 생머리로 쇼팽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중국소녀 로센도 이미 환갑의 나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샹그리라’는 불사不死의 땅은 아니었다.

대승정 페로 신부는 자신의 임종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예견하고,

콘웨이에게 ‘샹그리라’의 최고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아 인류의 지혜를 이어달라고 제안한다.


마침내 콘웨이는 자신들이 하이재킹을 당한 것이

‘샹그리라’의 후계자를 찾기 위해 치밀한 사전 계획 하에 진행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상향의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이곳 ‘샹그리라’에 한없이 매료된다.


여기서 소설은 돌연 급속도로 대반전을 이룬다.


페로 신부는 마침내 수명을 다하고, 콘웨이는 결국 ‘샹그리라’를 떠나게 되고 만다.

계기는 몇 달에 한 번 외부세계에서 물건을 날라주는 상인들이 드디어 푸른 달 계곡 어귀에 도착한 것.

늘 외부로의 탈출을 꿈꾸던 멜린슨이 동반 탈출을 권유하자

콘웨이는 부득불 ‘샹그리라’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 그의 권유를 거부한다.

그러자 멜린슨은 그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며 조롱과 냉소를 퍼붓는다.


그러나 콘웨이가 받은 충격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콘웨이는 자기도 모르게 어느덧 ‘샹그리라’의 꽃, 로센을 연모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멜린슨의 유혹에 넘어가 함께 탈출하기로 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과 회의에 빠진 것이다.


천국의 행복한 주민 로센이 서구의 천박한 이원론자인 멜린슨에게 의탁하여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페로 신부가 말한 그 모든 ‘샹그리라’의 꿈은 한갓 망상에 불과한 것이란 말인가!

콘웨이의 아름답던 꿈은 졸지에 산산이 부서진다.


소설의 <에필로그>는 콘웨이를 찾아 길을 떠났던 러더포드가 돌아와 ‘나’에게 들려주는 그 후일담이다.

콘웨이는 다시 ‘샹그리라’를 찾아간 듯싶고, 멜린슨의 종적은 끝내 찾을 수 없었으며,

‘샹그리라’를 떠난 소녀 로센은 쪼그랑 할머니로 변해 죽어갔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끝-




[ 표지 사진 설명 ]

◎ 중국 운남성 디칭迪慶 티베트자치주에 있는 메이리설산梅里雪山의 가와거버 봉우리(해발 6,540m). 가운데 테라스 지형에 보이는 마을에 비래사飛來寺라는 티베트불교 사원이 있다. 설산과 테라스 지형 사이의 깊은 계곡에는 메콩강의 상류인 난창강이 흐른다. 소설 속의 카라칼 산, 블루문 계곡, 샹그릴라 사원과 가장 유사한 환경이다. 2007년 1월 25일 촬영.


중국 정부는 원래 이곳을 '샹그리라'로 개명하려고 하였지만, 이곳에는 관광객을 유치할 공항을 건설할 평지가 없었다. 결국 공항 건설이 가능한 지역 중에서 이곳과 가장 가까운 중전현을 '샹그리라'로 선택하였다. 메이리설산은 중전현에서 아찔한 산악 지역을 자동차로 5~7시간이나 더 달려가야 도착할 수 있다.   

메이리설산의 미엔츠무 봉우리와 비래사. 영화 세트장과 더 닮았다.
카와거버와 난창강. 표고차가 4,000m다. 카라칼산과 블루문계곡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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