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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Jan 14. 2024

제6장. 아, 성인봉!

[제1부] 2003. 1. 13.

현재 시간 2003년 1월 17일 오후 8시 15분.

여기는 포항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의 PC방!

9박 10일 간의 울릉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씩씩하게 뭍으로 돌아왔음을 보고합니다!      


수원으로 가는 심야버스는 밤 11시 출발이라네요?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군요.

며칠 동안 정신없이 지내느라 여러분께 보고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울릉도에서 겪었던 그때의 그 감흥을 잊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서둘러 이곳 PC방을 찾아와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것



2003. 1. 13(월) 새벽 5시.


두런두런 옆방에서

고덕진 어르신과 경주에서 온 옆 방 김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소리에 선잠을 깨다...


그동안 민박 멤버는 바뀌고 바뀌어 이번이 세 번째!

그런데 어쩌다 보니 어르신 부부랑 방을 바꿔 쓰게 되었네요?

아이고, 이럴 수가! 어르신, 제가 그냥 작은 방을 쓰겠습니다.

아녀, 아녀! 아, 글씨 암말 말고 가실 때까지 저 방에서 있으라니껴?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저를 방으로 밀어 넣으시는 고마운 어르신...

    

그나저나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음, 저기까지 말했었군.

새로 옆방에 들어온 경주 김 선생 일가족은 초등학교 3학년,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을 포함하여 모두 4명!

알고 보니 평소 주말마다 등산으로 단련한다는 대단한 가족이군요~

오자마자 그날 오후에 바로 봉래 폭포와 내수전을 다녀오더니,

그다음 날인 오늘은...

오전엔 성인봉을 올라갔다가 오후에는 택시 대절로 환도 여행을 하고 모레 오후에 출발하겠다는군여.


히야, 어쩌면 그렇게 일정이 빠듯하지?

아이들이 다 쫓아다닐 수 있을까? 내가 다 염려가 되네요...      



오전 7시 20분!


KBS 송신소 입구에서 용감한 김 선생님 가족들과 함께 하차!

여기서 성인봉 정상까지는 불과 3.7km. 눈이 없을 때는 보통 세 시간 반쯤 걸린답니다.     


눈에 덮인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한 지 불과 5분!

벌써부터 헉헉~ 땀은 비 오듯이 쏟아져 내리는데,

아, 글쎄 앞장선 김 선생님 일가족은 다람쥐처럼 뽀로롱~~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구먼요?

애고고~ 이건 거의 빨치산 수준이시네...

그치만... 저야 뭐, 급할 게 있나요? 느긋하게 쉬엄쉬엄 올라가겠습니다요. ㅋㅋㅋ

뒤를 바라보니 겨울 안개를 헤치며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한 시간쯤 올라가다 보니... 엇쭈, 눈이 제법 쌓였네요?

하하, 그래도 태하령에 비하면 택도 없죠.

사람들이 오간 덕에 이미 러셀 russell이 되어있는 눈길과

태하령처럼 태고의 숨결 만이 숨 쉬고 있는 눈길을 걷는 것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

애고고~ 그건 그런데, 인간적으로 너무 가파르네용.

 

위험!


팻말이 붙은 곳 등장!

약 200m쯤 가파른 산허리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올라가야 하는 코스입니다.

으~ 여기서 쩌~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 똥글똥글 커다란 눈사람이 되겠네요?    

눈이 무릎까지 푹- 푹- 빠지는 지라, 앞에 놓인 발자국을 고대로 따라 밟느라고 비틀비틀 갈 짓 자로 걷는데,


오마야!

찌이익---!


그만 균형을 잃고 살짝 옆을 밟았더니... 아, 글쎄 발밑이 허당이지 뭐예요?!

급경사로 4, 5m 정도 쭈우--욱 미끄러지다가... 날렵한(?) 동작으로 나무 가지 붙잡는데 성공~! ^^;;;

애고고, 살았다. 휴우=33

근데... 겨우 4, 5m 정도인데, 그걸 올라가기가 왜 그리 힘든지요! ㅠㅜ   



9시 15분     


헐레가 벌떡 끝에 절벽 위 양지바른 곳에 폼 나게 자리 잡은 팔각정 정자에 도착!

히야~ 여기는 의자에 눈이 녹아 있네요?  

아이고 좋아라, 저기 앉아서 좀 쉬자!      


안내 표지판을 보니 여기서 정상까지는 1.6 km!

애개, 그럼 이제 겨우 절반 올라온 거 아냐?

울릉도 명 가이더, 고덕진 어르신은 그 연세에도 한 시간 반이면 성인봉 정상에 오르신다는데,

에혀! 난 이게 뭐냥!!! ㅠㅠ


양지 녘에 앉아 거친 숨을 가라앉히고 있노라니 졸음마저 사르르~~

에라, 한잠 자자!

가져간 잠바를 걸치고 누웠는데 그래도 약간 으스스~~ 잠이 오지를 않네요?


쏴아아~ 바람소리, 귀는 자연의 영혼과 만나고

푸르디푸른 하늘, 눈은 우주의 끝까지 달려갑니다...

   

또옥~ 똑

팔각정 지붕에서 떨어지는 눈 녹는 물에 봄이 선뜻 다가오는데,

아무 생각도 없이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어울리다 보니...

에그머니낫, 시간이 벌써 10시 반이나 되었네요?

에구~ 이러다가 날 새겠다, 얼른 올라가야겠습니다!



10시 50분   


드디어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어우, 근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군요.

청남색의 울릉도 서쪽 해안에서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 바람, 그리고 또 바람!

숨을 헐떡거리며 눈 위의 발자국만 내려다보면서 올라가는데,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

   

아재예, 여기 오시능교? (초등학생 목소리)


아이고! 등산으로 단련된 씩씩한 일가족 네 명은 벌써 하산 중이시군요~


힘 내이소~ 봉우리 몇 개만 넘으믄 됩니더!


저를 바라보는 새나라의 씩씩한 어린이 눈망울에, 어쩐지 측은하게 동정하는 눈빛이 엿보이는군용?

아이, 쪽 팔려라... ㅋㅋㅋ



12시


이얏호, 정상입니다!

드디어 아무도 없는 성인봉 정상에 섰습니다!

동서남북 일망무제 수평선을 둘러보니, 이야~ 역시 지구는 둥글군요!!!

제가 몇 백 년 전에 태어나서 성인봉에 올랐다면...

지구는 둥글다!

주장하다 핍박받는 선각자가 되지 않았을까... 잠시 흰 생각도 해보았지요.


그나저나 정상을 밟은 세리머니를 안 할 수 없겠죠?

동서남북 돌아가며 네 번 고함을 지르니, 흐흐, 그제야 뒤늦게나마 힘이 부쩍부쩍 솟는구먼요?

정상에 오른 희열은 참말로 뽀빠이의 시금치올시다그려!  

문득 요새 쓰고 있는 책의 표지 글로 준비해 둔 구절이 생각납니다.


삶은 절벽을 오르는 것.

절벽을 오르는 사람은 정상이 어디인지, 얼마나 올라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정상이 없는 절벽은 없다.

언젠가 정상은 돌연, 마치 우연처럼 불쑥 나타나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에 보답해 줄 것이 틀림없다.


그니깐 나그네 여러분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우리 함께 치열하게 삶의 절벽을 올라가 보자고요. 오케이?

정상의 희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근데요, 귓속말로 살짝궁 말씀 드리자면... ^^;;

이미 러셀이 되어있는 눈길을 느그작 느그작 여유 있게 올라왔더니,

원시림 사이로 태곳적 신비의 정적 만이 흘러내리던 태하령 오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쉽네요?

성인봉에는 사람이 비교적 많이 다니므로,

날씨만 좋으면 겨울에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셨죠? ^.~




꿈결 같은 봄날 날씨...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하아얀 은색 세계만 아니라면 지금이 겨울이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날이네요.

햇볕도 알맞게 따스하군요. 춥지 않을 정도로.

이따금 매섭게 몰아쳐 오는 바람...

그러나 눈꽃이 활짝 핀 능선에서 불어오는 탓인지, 그마저도 싱그럽고 상쾌하기 그지없네요.   

백두대간을 연상케 하는 장쾌한 능선!

미륵봉으로 이어지는 서북 능선은 송곳처럼 솟구친 추봉 아래 발길에서 급전직하 북해 바다로 풍덩 다이빙!

사방을 에워싼 짙푸른 바다! 문득 팔을 쭉~ 내뻗어, 풍덩~ 동해의 그 푸른 바다 물에 손을 담가 봅니다.      

아~~

가슴과 영혼까지 아찔하게 씻겨 내려가는 이 상쾌함, 이 통쾌함!

늘 맑고 깨끗한 청정 무공해의 울릉도, 그 정상에 서니 호흡만 한 번 해도 무궁한 즐거움이 넘쳐나네여!           

나그네 여러분!

겨울 울릉도 성인봉 정상에 꼭 올라 보셔요.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유유자적, 자유자재의 마음으로 함께 호흡하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제 생각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을 것 같아요. 뭔지 들어 보실래요?      


( 1 ) 혼자 길을 나설 것    


서정 시인이자 수필가인 쉬즈모徐志摩(1897~1931)는 말했죠.

여행을 통하여 충만함을 얻으려면 반드시 혼자여야 한다고 심지어 명령까지 하고 싶다고요.

누군가 옆에 있으면 아무튼 마음이 분산되기 마련.

특히 가슴 설레게 하는 이성異性과의 여행은, 절대로 참된 여행이 될 수 없다고요. 

왜 그럴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것.

누구를 만나러 가느냐구요? 저는 세 가지를 만나러 간답니다.


첫 번째, 대자연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대자연과 만나려면 반드시 혼자 있어야 합니다.

혼자 떠나야만 대자연을 만날 수 있는 우리의 모든 감각이 살아날 수 있고,

혼자 떠나야만 대자연과 동일한 맥박 속에서 우리의 심장을 고동치게 할 수 있고,

혼자 떠나야만 대자연과 동일한 사이클 안에서 내 호흡의 기복起伏을 함께 할 수 있고,

그리하여 마침내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자연의 일부니까요.


우리는 누구나 외로움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삶의 여행이란 어차피 나 혼자 만의 것.

그 여행 속에서 또다시 떠나보는 우리의 짧은 여행은...

잃어버린 생명력을 대자연에서 충전하는 시간, 삶의 내공을 기르는 소중한 시간 아닐까요?


여행은 떠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것!

두려워하지 말고 혼자서 길을 떠나 보시길.

자연 사랑, 인간 사랑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체험과 반드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2 ) 철저히 준비할 것


그러나 혼자 떠나려면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어느 여행가는 지도가 있어야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죠.

물론 그럴 수 있죠. 그러나 겨울에 오지로 떠나는 여행은 스토리가 다릅니다.


더구나 겨울 울릉도의 성인봉이나 태하령을 넘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섬백리향 님의 사이트 같은 곳과 다른 곳의 정보를 세밀하게 비교 분석!

자신에게 어울리는 맞춤형 여행을 위해 사전에 차분하게 공부하는 건 필수 중의 필수겠죠?  

    

겨울 성인봉은 적설량이 엄청납니다.

특히 북쪽 나리 분지 쪽으로는 음지라서 적설량이 최소 2~3m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완전 방수 등산화는 꼭 두 켤레 가져가셔요. 젖으면 얼른 갈아 신으셔야 합니다. (뼈저린 경험자 ㅠㅜ)

아이젠, 방수 방한복, 적절한 식량과 식수 등등... 넉넉하게 준비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위스키도 꼭 가지고 가시길 강추합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길! 음주를 즐기시라는 용도가 절대 아니랍니다. ^^;;

다쳤을 때 소독도 할 수 있고요, 비상시에 추위를 물리치는데도 큰 효과가 있답니다.

하지만 쐬주는 절대 금물! 오히려 체온을 떨어뜨리죠.


참, 참!

겨울에 가실 때는 마대도 챙겨가면 좋을 듯. 마대가 뭔지 아시죠?

알긴 아는데 그걸 왜 챙기냐구요? 어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도 모르시남요? ㅋㅋ

궁금하신 분은 다음 주에 꼭 다시 와서 읽어보시길. ^^

      

아무튼... 겸손한 마음으로 철저한 준비를!

잊지 마셔요?      


( 3 ) 충분한 시간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기록 경기도 아닌데, 총알 같이 올라갔다가 총알 같이 내려오는 등산.

그리고 택시 타고 번개 같이 지나가는 유람.

그런 건 절대로 여행이 아니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비행기도 최대한 피하는 게 좋습니다.

엄청난 가솔린 소비로 환경오염의 주범이며, 현지 주민들에게는 결국 환경 쓰레기만 선물해 주고,

돈은 엉뚱한 항공사 재벌들만 벌게 해 줍니다.


자동차 유람도 여러분이 나이 들어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을 그런 때 즐겨도 결코 늦지 않을 거예요.

자전거를 강추합니다. 고갯길이 많은 울릉도에서는 전동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일 좋기로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천천히 홀로 걸어 다니는 여행입니다.


대자연의 생명력과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고 내 것으로 만들려면...

반드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걸어 다니셔야 합니다.

느림과 여백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즐겁게 찾아오게 마련이지요.    

  

그러므로 여행은 또한 여유와 여백을 만나러 가는 것. 

울릉도라면 적어도 열흘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바쁜 세상에 그런 시간이 어디 있느냐구요?      


Oh, No!

여러분은 무얼 위해, 어찌 그리 허위허위 지내시나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요?

타인과 함께 가려고 일정을 맞추려다 보니 잘 안 되는 거지,

혼자만의 시간을 내는 건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서두르지 마시길. 빠듯하게 일정을 잡지 마시길.


( 4 ) 소리 듣기


눈으로 스쳐 지나가고 사진 몇 장 찍는 것이 전부인 관광, sightseeing은 금물 또 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나 되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지요.

'눈'으로 보는 시각은 일견 우리들에게 가장 큰 만족 효과를 주는 듯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시각이란 어쩌면 가장 발달되지 못한 열등한 감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니깐요.     

 

저는 아무도 없는 성인봉에서 한 시간 이상을 머무는 동안,

눈을 감고 있었던 시간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대자연의 정기인 바람의 흐름 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바람소리를 들으며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디론가 파묻힌 과거의 그때 그 시간, 그곳에서도 저 바람 소리가 들려왔었죠.

지금 듣는 이 바람 소리가, 혹시 삶의 저 편 너머에서 불어오는 소리는 아닐까요?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바람에 파묻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사이버 강의를 통해 만났던 우리 나그네 여러분들의 목소리.

이번 여행길에서 알게 된 섬백리향 님, 참맨 님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모두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리도 짙은 유대감이 형성되었는지요.


처음 만나 뵈온 고덕진 어르신의 고운 얼굴 모습이 하루 종일 눈에 선합니다.

그 정겨운 충청도 사투리가 늘 귓가에 맴돕니다. 돌아가신 부모님보다도 더 부모님 같으신 분들...

그러다 보니... 아... 어머니, 아버지... ㅠㅠ


지나온 세월의 풍상 속에 숱한 '만남'을 가졌던 그 모든 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리도 작고 하찮은 일로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였을까요...

참으로 미안하고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은 '낯선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은 그 속에서 '익숙한 이'들의 존재 가치를 새롭게 만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젊었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경치만 찾았었죠.

그저 내가 즐길 생각만 할 뿐이었고, 현지 주민들은 당연히 친절해야만 했습니다.

그분들과 마음 문을 열어놓고 대화를 나누려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못했네요.


만약 이 아름다운 대자연에 사람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각만 해도 두려운 죽음의 세계 아닐까요?

그런데 나는 어쩌면 그리도 교만했을까요...

눈에 보이는 단편적이고 미시적인 현상 세계를 초월하여

이 세계를 바라보는 보다 거시적이고 어른스러운 커다란 시야를 지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인봉의 눈은 아주 특별하더군요. 다른 곳의 눈과는 달리 좀처럼 뭉쳐지지 않았어요.

아사삭 흩날리며 부서지는 눈가루...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요?

나는 이 성인봉의 눈에서 무슨 메시지를 얻어야 하는 걸까요...      


만지면 아사삭 부서지는 이곳의 눈가루처럼, 정상이란 결코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곳.

치열하게 올라왔지만 모든 아쉬움을 떨궈버리고 하산을 서둘러야 하는 곳!


Great Jump!

모든 먼지를 훨훨 떨쳐버리고

무소유의 맑고 청정한 그 원래의 곳으로 과감하게 온몸을 던져 뛰어내려야 하는 곳,

그곳이 정상의 의미가 아닐까요?

  

눈을 뜨고 아득히 바라보이는 사면팔방 일망무제의 동해 바다에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내 모든 욕망의 찌꺼기를 정성스레 씻어봅니다...


차렷!

경례!

하산 준비 끝!      


아니, 잠깐!

카메라도 후지고, 나이 들면서 사진 찍기도 싫고 해서... 여태까진 가끔 풍경 사진만 찍었는데요,

성인봉 정상에서 얼굴 들어간 사진 한 장 찰칵! 안 하면 조금 섭섭할 것 같네요. ^^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당~

그 위에 배낭을 올린 다음 카메라를 올려놓으니, 음, 제법 그럴듯한 카메라 받침대가 완성되었군요?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가며 리모컨으로 몇 장 찍어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      


중년의 아저씨 두 분, 그리고... 아니 이럴 수가!

가냘픈 체구의 수녀님 한 분이 올라오셨네요?

수녀님인 줄 어떻게 알았냐구요? 그거야 수녀복을 입으셨으니까 알았죠! ^^

근데 춥지도 않으신가? 수녀복이 너무 얇아 보여요. 헉? 게다가 고무신을 신으셨잖아? 


< 계속 >




아이구, 버스 떠날 시간이 다 되었네요.

내일 다시 만나요, 안녕~~! ^^




[ 표지 사진 ]

◎ 먼바다에서 바라 본 겨울의 성인봉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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