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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Feb 04. 2024

제9장. 무지개의 장章

[제1부] 2003. 1. 16.

울릉도가 떠나갑니다.

거세게 일어나는 물보라에 피어나는 무지개 사이로 울릉도가 떠나갑니다.


생명의 땅, 울릉도


완전 밀폐된 고속여객선 선플라워 호!

뱃전 뒷머리에 마련된 이곳 흡연실 철창문은 바깥공기가 그대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공간!  

( ※ 2003년 이야기입니다. 지금 고속여객선에는 바깥 공기와 통하는 공간이 전혀 없습니다. )    

이곳 철창문에 기대어보니 점점 작아지는 울릉도의 전경이 거침없이 육안에 들어오는군요.

  

부~웅

엔진을 가속하는 소리와 함께

둥실,

바다 위에

훌쩍,

올라타서

파도를 가르고 질주하는 선플라워 호.

     

그러자 뒷전에 일어나는 거대한 물보라!

눈부신 햇볕 반짝이면 그 사이로 언뜻언뜻 엿보이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의 향연!

그 무지개의 전송을 받으며 울릉도가 떠나갑니다.


이제 가면 울릉도 곳곳 풍광이 눈에 선할 거여~~ 


고덕진 어르신의 말씀처럼 벌써부터 지난 9박 10일 동안

여기저기 걷고 또 걸었던 울릉도의 이곳저곳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스치고 또 스치는군요.      

바다 바람이 몹시 차갑고 매섭지만 철창살 밖에 점점 멀어지는 울릉도를 단 한 순간도 놓칠 수가 없었답니다.


독도는 또 어드메쯤 있는 걸까? 혹시 이곳 먼바다에 나오면 보이지 않을까?

울릉도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는 한 시간 반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수평선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죠.


문득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왜 울릉도를 사랑하는 걸까요?

우리는 왜 독도를 그토록 그리워하는 걸까요?   


여행은 동적動的인 것, 움직이는 것, 생명력을 얻기 위해 떠나는 것이죠!

숨 막힐 듯 정체되어 있는 우리네 삶 속에서 한 줄기 움직이는 신선한 바람을 찾아 나서는 것 아니겠어요?  


그리하여 중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동東쪽을 그리워하고 또 숭배했답니다.

‘동녘 동東’은 ‘움직일 동動’이라, 발음이 같으면 뜻 또한 공통분모가 있는 법!

그리하여 생명력을 선사하는 신비의 약초, 불로초를 찾기 위해

동쪽 바다 아득한 곳에 자리 잡은 신비의 섬을 향해 떠났던 것이었죠.  

    

우리나라 가장 동쪽의 땅, 울릉도와 독도!

깎아지른 절벽 능선마다 울울창창 하늘을 가르고 치솟은 소나무, 향나무, 너도밤나무!

깊고 깊은 계곡마다 은방울 휘날리며 떨어지는 신령스러운 물줄기들!

아직도 관광객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오염되지 않은 땅, 신비의 동녘 섬 울릉도!

그곳은 정녕 생명의 땅, 우리들의 유토피아입니다.



파도의 땅, 섬목

[ 저동↔천부 ]는  버스로 이동. [ 천부↔섬목 ]은 도보로 이동. [ 섬목↔내수(녹색 점선) ]은 2019년에 길이 뚫림.


어제는(1월 15일) 울릉도 북부 해안에 자리 잡은 천부 마을에서

해안도로가 나 있는 마지막 장소인 섬목이란 곳까지 걸었지요.


그러지 않아도 겨울이라 사람이 별로 없는데

천부부터 섬목까지는 버스 노선도 없어서인지, 이 동네는 아예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네요.

거기에 병풍처럼 절벽으로 에워쌓인 북향이라서 햇볕마저 드문드문, 적막감을 더해줍니다.


충, 성~~!!!


아잇, 깜짝야. 

넋을 놓고 해안선을 바라보며 걷다가 깜짝 놀랐답니다.

해안 초소에서 혼자 보초를 서고 있던 군인 아저씨(?)가 우렁차게 구호를 붙이며 경례를 하네요?

응? 누구한테 하는 거지?

사방을 돌아보아도 절벽과 파도 뿐이니 제게 경례하는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충, 성~~!!!


못지 않게 기백이 넘치게 답례를 해주었더니,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깜짝 놀란 눈치. ㅋㅋ

아마 군인 아저씨도 사람 만난 게 반가왔던 모양입니다.

서로 간에 씨익~ 웃음으로 뜻 모를 암호를 교환하고는,

스쳐가는 인연의 의미를 생각하며 담담하게 이별합니다.


잠시 후 나타난 세 개의 바위섬... 삼선암입니다.

세 명의 선녀가 놀러왔다가 울릉도의 절경에 홀려 하늘나라 집에 늦게 돌아갔다나요?

옥황상제가 그걸 알고 벌로 여기에 이렇게 세워놓으셨다나요?

근데 막내 선녀가 제일 늦게 왔다고 뚝 떨어진 곳에 혼자 따로 세워놨다나요?


불쌍한 막내... 저도 막내인 지라 은근히 화가 나더군요.

아니, 무슨 옥황상제가 치사하게... 막내가 그럴 수도 있지, 벌 주는 것도 모자라서 왕따까지 시키냐...

투덜투덜 궁시렁궁시렁...

남들은 절경이라는데, 짜가 김삿갓은 벌을 서고 있는 막내 선녀가 꼭 자기 같은지라 별로더군요. ^^;;




이야~~ 여기가 진짜네요!

여길 안 와 봤으면 얼마나 후회가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절벽 해안 길!

선창이라는 곳에서 섬목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선창(해안 우측)에서 섬목(다리 좌측 땅)으로 이어지는 울릉도 동북부 해안선. 2022. 10.21. 관음도에서 촬영.

섬목은 파도의 땅이군요.

둥그런 타원형의 해안선을 향해 몸을 벌떡 세우곤 하아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무섭게 달려오는 파도!

그 전날부터 이어지는 폭풍주의보의 여파일까요?

규모만 조금 작을 뿐, 영화 속 와이키키 해변으로 쳐들어오는 그 파도의 모습을 보는 것 같군요!

우르르르~~~~~릉!

철썩!

쿠~~앙!!

우르르르~~~~~릉!

철썩!

쿠~~앙!!!

(좌상)관음도 (중앙)물개바위. 내 눈엔 부처님이 베개 베고 누워계신 듯.

병풍처럼 둥글게 에워싼 절벽을 휘감아도는 파도 치는 소리에 온 천지가 떠내려 갈 지경!

으아~~ 귀가 멍멍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여~

10여 미터 높이의 해안 도로까지 물보라를 뿌려대는 그 파도의 움직임에 한참동안 시선을 맞춰보니,      

끼야~~~~~~~~~~~~~ 악!

이얏~~~~~~~~~~~~~ 호!

끼야~~~~~~~~~~~~~ 악!

통쾌한 즐거움에 저절로 기성奇聲이 마구마구 터져나오네요!


하하,

이건 완전히 파도를 타고 윈드서핑을 하는 기분이구만요?

엊그제는 봅슬레이에 오늘은 윈드서핑이라!

키야~~~

돈 한 푼 안 들이고 여름 겨울 환상적인 액티비티 스포츠의 진수를 한꺼번에 맛보는 울릉도!

과연 기막힌 신비의 섬이네요! 하하하.


바람과 파도의 역동적인 생명력!

그렇죠! 여행은 바로 그 힘찬 생명력을 얻기 위해 떠나는 것 아니겠어요?

선창 후미의 철창문에 기대어서서

쾌속정에 몰아치는 그 모진 겨울 바다 바람의 생명력을 오래 오래 만끽해봅니다...

(으윽... 그 바람에 아직도 감기가... 콜록콜록!)



인간 사랑의 땅, 울릉도


우리는 여행을 간다고 하면 흔히 그 지방의 아름다운 풍광만 즐기고 올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여행지에는 대자연의 절경 만이 존재하는 건 결코 아니지요.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여행을 떠나면서 흔히 '나' 혼자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길 생각만 하지,

현지 주민함께 어울리는 소통과 상생의 여행은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태까지 제 자신의 경험에서 하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삶'은 바로 곧 '여행'입니다.

잘나고 못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최고의 여행지입니다.

그러므로 여행은 가장 좋은 학문의 방법일 것입니다.


짜가 김삿갓 드래곤 나그네는 이곳에서 최대한 느리게 다녀보고 싶었습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 빨리빨리 여행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한 걸음 한 걸음 혼자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정성'이라는 단어를 음미하며 웅장한 대자연과 주파수를 맞춰보고자 했습니다.


짜가 김삿갓 드래곤 나그네는 이곳에서 '나' 자신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의 생각과 낯선 문화를 만나면서

나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울릉도는 대자연만이 아니라 인간도 함께 숨쉬는 곳이더군요.

인정을 가득 실은 삶의 낭만이 저를 무척이나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인간 사랑 이야기 제1탄


어제(15일) 낮, 천부에 있는 한 식당 안에 들어섰을 때였죠.


따라라, 따라라, 따라라라라... (내 핸펀 벨 소리. ^^)      


오잉? 여긴 핸펀이 터지는 모냥이지?

히야~ 울릉도에서 첨 받아보는 전화네? 누굴까?

역사적인 이 전화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무척이나 궁금한 마음이었죠.


김 아무개 교수님이시죠?

얼라? 이건 또 무신 뚱딴지 전화?

첨 듣는 무뚝뚝한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실망, 또 실망!      

근데... 엥? 뭐시라고?

교수님, 혹시 지갑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요? 


아, 글쎄 제가 천부로 올 때 탔던 그 버스 기사님이

제가 앉았던 자리에 떨어져 있던 지갑을 발견하고 전화를 걸어 온 것이었네요?

저는 혼자 여행을 다니면 가능한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기사님께 이런저런 말을 건넨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기사님이 기억해주십사 하는 이야기죠. 나름 생존의 법칙! ㅋㅋ

그 보람이 있었죠? ^^


교수님, 누구 것인지 알아보려고 지갑을 뒤져봐서 죄송합니다.

신분증 보니 교수님 사진이 아까 그 손님인데, 명함을 보니 전화번호가 있더라구요!


하하, 정중한 말투는 서구의 젠틀맨인데,

형사 콜롬보 못지않게 수사력도 뛰어나시구먼요?   

   

며칠 배가 뜨지 않아서 오늘 막 출금해 둔 적지 않은 돈이 담겨진 지갑을 건네주시더니,

성함을 물어봐도 대답도 안하시고, 미처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부~~~~웅!

버스를 몰고 떠나시는 까만 라이방의 멋진 기사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또 감~ 싸드립니다!!!      

천부 버스 정류장. 우측 하얀집이 20년 전 전화를 받은 그 식당이다. 2022. 10. 21. 촬영


인간 사랑 이야기 제2탄


그리고 오늘(16일) 낮. 11시쯤 되었을까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열어보니, 세상에, 네상에! 이게 웬 일입니까!

고덕진 어르신께서 상을 들고 들어오시는데,

아 글쎄, 언제 장에 다녀오셨는지 그 맛난 메바리를 커다란 놈으로 회를 쳐 오셨네요!


에구, 주책. 그만 눈물이 나올라구 하네용...

게다가 잠시 후엔 따끈따끈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국도 나오고요.. (흑흑... 이게 웬 일입니까...)

마지막으로 마시는 복분자 술, 한 잔 한 잔...

어르신의 따사로운 인간 사랑의 마음에 목이 메어 차마 제대로 넘어가지가 않는구먼요.


에고! 이건 또 뭐죠?

그 귀한 복분자 술이 가득 담긴 커다란 술병까지 하나 안겨주시네요...

아, 그 감사함을 어떻게 다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보다도 더 부모님 같으신 고덕진 어르신 내외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언제나, 건강하시고요, 부디 만수무강하시어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주자주 연락 드리겠습니다~

 



자연 사랑, 인간 사랑의 마음이 넘쳐나는 곳.

울릉도가 뽀오얀 무지개 속에 아름답게 사라져갑니다...      

짜가 김삿갓의 울릉도 방랑 여행도 이제 거의 끝나가는군요.


하지만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그 님을 떠나보낸 후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면서요?

그렇습니다. 나의 여행은 결코 이대로 끝날 수는 없겠죠.

진정한 울릉 사랑의 참된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어찌 울릉도 사랑뿐이겠어요?

자연 사랑, 인간 사랑이 숨 쉬는 그 모든 아름다운 땅을 찾아,

짜가 김삿갓 드래곤 나그네는

매서운 삶의 겨울이 몰아치는 우리들의 현실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갑니다.

      

비록 홀로 떠난 겨울 여행이었지만 나그네는 조금도 외롭지 않았답니다.

그동안 저를 이너넷으로, 메일로, 전화로, 문자메시지로,

그리고 마음으로 격려해 준 많은 나그네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여러분, 안녕~~~

울릉도여, 안녕~~~



[ 제1부 ] 끝



다음주부터는 [제2부]로 이어집니다.


[ 표지 사진 ]

민박집 동지 수원대 김재용 나그네 님 촬영. 작품 협찬을 허락하며 사진 파일을 보내 주었다. 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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