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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Feb 18. 2024

제11장. 울릉도 일주 유람선

[제2부] 사진 만담

샹그리라(Shangri―La)*는 중국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충격을 주는 곳이다. 붉은색으로 뒤덮인 들판... 태양이 지평선에 다가올 때면 투사된 광선으로 대지 위에 불타오르는 키 작은 관목들... 먼 곳의 장엄한 산맥들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하고, 푸르른 호수에 희미한 햇빛이 투영되면 무지개가 피어난다. 코발트빛 하늘에 솟구쳐 있는 황금색 사원. 찬란한 순백의 설산은 노을 속에 분홍빛으로 물들어간다. (중략)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내 눈동자는 그 모든 곳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추적한다. 카메라를 들었다.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내려놓지 않을 수가 없다. 카메라는 때로 시간을 너무 많이 뺏아간다. 이곳을 진정으로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된다. 그냥 사진 찍는 것만으로는 별다른 가치가 없다. 단지 눈으로만 느끼는 것이지 감각의 모든 부분을 동원하여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Kim Roseberry , 《Encounters with Paradise》64쪽. 中國陝西師大出版社, 2004. 소오생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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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샹그리라(Shangri―La)뜻과 어원, 출처 등에 대해서는 <일요일엔 참으세요> 참고.

* <울릉도, 방랑의 추억>이 끝나면 '샹그리라 & 동티베트, 방랑의 추억'을 더듬어 볼 계획이다.



 

감각의 모든 부분을 동원하여 느낀다는 것은 어떤 경지일까?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서구의 분리 패러다임은 그 모든 감각의 경계선을 정확하게 긋는다.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그런데 동아시아의 결합 패러다임에 의하면 그 다섯 가지 감각은 편의상 분류한 것일 뿐, 완전히 분리되어 제각기 따로 노는 것은 아니다.


고대 중국의 미학 이론에 의하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기氣'를 느끼라고 말한다. '기'란 무엇일까. '생명력'이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온몸의 모든 감각을 하나로 결합하여 삼라만상의 생명력을 느끼라는 이야기. 이른바 '기운생동 氣韻生動' 이론이다. 사진도 마찬가지. 미국의 여류 사진작가인 킴 로즈베리가 샹그리라의 황홀한 석양 풍광을 목도하고 카메라를 내려놓은 이유다.


나는 그 '기'를 알기 쉽게 '소리'라고 부른다. 소리에는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현상의 소리'도 있지만, 인간의 청각 인지능력으로는 들리지 않는 '내면의 소리'도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들리지 않는다고 그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진을 찍기 전에 '소리'를 듣는다. 소리 없는 소리, 가장 큰 소리, 귀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듣는 소리. 그 소리에서 우주의 메시지를 듣고자 한다. [주1] 


예컨대 대나무 숲에 렌즈를 들이대면, 내 귀에는 언제나 싸락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언젠가 성긴 대나무 숲을 스치던 바람 소리, 나뭇잎을 두드리는 빗소리, 산사의 계곡 소나무 가지 사이로 무심히 지나가는 그날 밤의 그 소리를 듣는다. 나는 나와 우주가 합일이 된 그런 '소리'가 담긴 사진을 찍고 싶다. 킴 로즈베리가 찍고자 했던 그런 사진을 찍고 싶다.


그런데... 결과는 엉망이다. 아무리 사진을 찍기 전에 '소리'를 들어봐도 소용없다. 광활한 중국대륙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수없이 사진을 찍었건만 건진 사진이 두세 장 될까 말까, 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그런 이야기를 출간하려면 사진이 필수적인데 쓸만한 사진이 없다. 열화당 대표이신 이종사촌 형님이 먼저 사진을 찍어오라며 거절하신 것도 수긍이 된다. 나는 사진 잘 찍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별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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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가장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 소리다. 大音希聲。”  『노자老子 41장』

“도道는 소리 없는 소리다. 道無聲。”  『장자莊子 · 지북유知北遊』

“귀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듣는다. 無聽之以耳,而聽之以心。” ― 『장자 · 인간세人間世』




그런데... 만났다! 드디어 만났다!


얼마 전이었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광역 버스를 타고 가며 브런치 글방 나들이를 하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가슴이 쎄~~ 했다. 이거 뭐지? 자그만 휴대폰은 눈이 아프다. 일단 라이킷으로 keep을 하고 나서 귀가 후에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밤늦게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고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았다. 글과 사진과 음악이 있는 방이었다. 일단 음악을 틀었다. 류이치 사카모토, AQUA. 고요한 쉼터에 단순하면서도 편안하고 섬세한 피아노 멜로디가 흐른다. 울림이 있다. 대문에 걸린 사진을 커다란 모니터로 다시 한번 감상해 보았다.


헉... 숨이 막혀왔다. 모바일 화면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커다란 화면에 기묘함과 신비함이 숨은 듯 가득하다. 짧은 시가 메모인 듯 새겨져 있다. 글은 모바일로 천, 천, 히, 읽었다. 11장의 사진은 하나하나 클릭하여 컴퓨터 모니터로 보았다.


여러분도 잠시 함께 감상해 보시면 어떨까? 가능하면 커다란 컴퓨터 화면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작가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Bono, <합일>


12장의 이미지를 따라 멜로디와 언어가 돌며, 돌며... 이윽고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고 감각의 경계가 사라지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환상마저 느껴졌다. 전율이 일어났다. 글과 사진과 음악. 그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이런 느낌은 얻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멀티미디어 예술이 아닐 수 없다.


동아시아의 전통 패러다임은 '일원론'이다. 결합의 패러다임이다. 그래서 '문학 文學'도 멀티미디어 예술이었다. 공자가 선도했던 동아시아의 '문학'은 바로 곧 '음악'이었고 '춤 舞'이었다. 성당盛唐 시대(713~761; 주로 당 현종 시대)의 위대한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가 등장한 이후로는 '그림 畵'과 하나가 되었다. 북송 시대 최고의 천재 문인이자 서예가이자 화가인 소동파의 등장 이후로는 마침내 시서화詩書畵의 합일이루었다.


감상도 마찬가지다. 시 속에서 이미지를 보고, 삼라만상의 소리를 듣고, 음악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물아일체 物我一體,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해야 한다. 그게 동아시아의 문학 작품 감상법이다. 나는 작가가 못 된다. 그런 재능이 없다. 그래서 이미 <동아시아의 창세기 일장 일절>에서 '작가'의 호칭을 겸허하게 반납한 적이 있다. 그 대신 열심히 '글감'을 제공해 드리겠노라며 감히 <님을 위한 글감 자료 사랑방>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다.


소오생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횡설수설하는가. 분명 이 글의 제목은 <울릉도 일주 유람선>인데 유람 이야기나 할 것이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글을 '발행'하기가 부끄럽고 창피하다. 내가 꿈꾸는 세계는 그러한데, 나의 현실은 너무나 속상하다.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니다. 나의 실력으로는 울릉도의 그 숨 막히는 자연의 소리, 그 생생한 분위기가 담긴 이미지를 소개해 드릴 수가 없어서 속상하다.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부끄러운 사진이나마 글감 제공 차원에서 몇 장 추려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아, 참!

그전에 꼭 소개해드리고 싶은 작가님이 한 분 더 있다. 반려묘 고영희의 일상을 포착해서 올려주시는 유니캣 작가님이시다.


유니캣, 브런치북 <고영희 다이어리>


작가님은 촬영 기술도 탁월하지만 특히 순간 포착 능력이 기가 막히시다. 고양이란 녀석이 얼마나 움직임이 많고 날랜지 생각해 보시라. 작가님은 열 장 찍으면 한 장 건진다고 하시는데, 나는 십만 장을 찍어도 한 장도 못 건질 게 틀림없다. 메이리설산梅里雪山 6,540m 높이에 가만히 있는 카와거버 봉우리를 수만 장 찍었어도 단 한 장을 못 건지지 않았던가.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그렇게 순간 포착을 하려면 엄청난 애정과 관심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안다. 생명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따스한 열정으로 가득 찬 유니캣 작가님 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종종 그와 비슷한 심정으로 시도는 해보았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2006년 여름 40명 학생들을 인솔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단했을 때 찍었다. 당시 버스 한 대를 보름 동안 대절하였는데, 나는 운전석 옆 조수석에 걸터앉아 쉬지 않고 셧터를 눌러댔다. 길은 넓지 않았지만 통행량이 많지 않은 관계로 버스는 무지막지하게 달렸다. 거의 시속 100km. 제대로 된 광경을 포착할 리 없었지만, 공중에 날라가는 접시를 총으로 쏘아 맞추는 기분으로 상황을 예측하며 계속 찍어대다가 우연히 걸린 장면이다. 위구르족은 1년에 한 번 양탄자를 턴다는데, 시속 100km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그 장면을 포착하다니... 예술적 수준은 낙제점이지만 감격했다. 나 스스로 쓰담쓰담~ 순간 포착 오직 운빨 상을 주었다.

기왕지사, 한 장만 더 보자. 아래는 2007년 1월 22일 운남 티베트고원 백망설산 고개를 넘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모 방송국 논설위원으로 사장 물망에도 올랐던 원곡 님 내외 분과 빵차(우리 다마스 정도?)를 빌려서 갔는데, 히터도 안전벨트도 없고 창문을 닫아도 비를 맞는 썩은 차였다. 해발 4,000m 고갯길. 울퉁불퉁 엉망진창. 그래도 썩은 빵차는 털털털털, 소오생의 머리를 사정없이 천장 모서리에 내다 꽂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면 못 찍을쏘냐.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추적 60분 만에 얻은 사진이다. 아직도 티베트고원의 모진 겨울바람이 귓가에 휙휙 스쳐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쓰담쓰담~ 기특 정성 오기 갸륵 상을 주었다.



2022. 10. 19. 도동에서 도동까지



가로 보면 고개요, 모로 보면 봉우리.

여기저기 산을 봐도 모두가 다르구나.

여산廬山의 참모습을 모르는 것은,

이 몸이 저 산속에 갇혀 있는 탓이로다.


橫看成嶺側成峯, 到處看山了不同。

不識廬山真面目, 只緣身在此山中。

― 소동파, <서림산 절벽 題西林壁>


유람선은 타기 싫었다. '유람'이라는 단어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바깥에서 바라보는 울릉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소동파도 바깥에서 바라봐야 여산의 진면모를 알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인생도 그러하리라. 소오생의 관 뚜껑을 닫아봐야 진면모가 드러날 게 아닌가. 터덜터덜 저동의 고바우펜션을 기어 나와 도동 가는 버스를 올라탔다.

도동엔 인간이 많다. 울릉도 관광의 중심지라 좁은 터에 엄청나게 몰린다. 좁디좁은 경사진 길에 왕복 차량이 엉켜 차가 막히고 난리 법석이다. 버스가 관광객을 들이받는 장면도 목격했다. 넋 놓고 걸어 다니면 사고 나기 십상이다.

울릉도에는 오징어가 없었다. 있기는 있는데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저동 건조대는 텅 비어 있던데 여기는 그래도 제법 많이 걸려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하자.

새로 지은 선착장은 깔끔하다. 이층 베란다(?)도 있다. 도동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나는 별로 정겹지 않다.

섬 일주 유람선의 출발 시간은 오전 8시 40분. 출발 장소는 도동. 요금은 25,000원. 울릉도 물가는 믿을 게 못된다. 하긴, 요새 서울은 안동국시 한 그릇에 15,000원이니 말 다했다. 물가는 왜 이렇게 천정부지로 숨 가쁘게 오를까. 정말 세계 경제가 모두 불황이라서? 언론은 그저 딸랑딸랑, 입을 닫고 있으니 답답하다.

기적이다. 1인분을 파는 식당을 만났다. 인터넷을 보니 2022년 봄, 같은 식당 같은 메뉴가 12,000원. 가을 되니 18,000원. 2024년 2월 지금은 얼마일까. 요새 인상 폭을 보아하면, 설마... 30,000원?

4,000년 연세 드셨다는 울릉도 지킴이 할아버지 향나무이시다. 일동 차렷, 경례!

향나무 맞은쪽, 좌측 제일 높은 곳이 독도전망대다. 우측 완만한 봉우리가 성인봉.

독도 전망대 밑의 해안 산책길. 안구를 정화시켜 주는 신령스러운 동해 바닷물.

울릉도 일주 유람선. 창문 없이 볼 수 있는 3층 선창에는 삽시간에 사람이 꽉 찼다. 어디서 사진을 찍는다지?

오옷, 그래 여기구나! 선창 맨 뒷자리가 마침 비어 있었다. 여기서 3시간 동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 셧터를 눌러댔다. 주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시끄러웠지만 내 귀에는 오직 나만의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무슨 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지, 이미 계획을 세운 지 오래다.

갈매기가 따라온다. 곳곳에 해안 산책로를 만들고 있다. 섬 일주 산책로를 만들 모양이다. 굳이 저렇게까지 많이 만들어야 하나. 울릉도 해안 기암절벽에 수리숭숭 주문을 외우며 몽땅 구멍을 낼 기세다.

우측이 사동 항구. 좌측 방파제가 건설 중인 비행장이다.

잃어버린 지평선》, 아니, 잃어버린 수평선이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가슴이 아리다.

바다에서 본 통구미 마을이다. 20년 전 식당 주인아저씨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돈 받을라꼬 밥 준 줄 아이소? 그랄라믄 아예 밥 안 줬심더! 엥? 식당 쥔장이 돈을 안 받는다? 이게 뭔 말쌈? 모르시는 분은 <제2장. 일출에서 일몰까지>에서 그 정겨운 스토리를 꼭 보고 오시라. 울릉도는 그런 곳이었다. 아래는 20년 전 육지에서 본 통구미 마을.

여기는 남양 마을. 왼쪽에 국수 바위가 보인다. 걸으면서 드시이소! 이렇게 드리면 우리 선전 많이 해주실 것 아닝교? 호주머니에 호박엿과 조청을 마구 넣어주시던 울릉도 호박엿 공장장 아저씨의 목소리도 들린다. 울릉도는 그런 곳이었다. <제2장. 일출에서 일몰까지>를 보시면 인간 사랑의 이 따스한 이야기도 알 수 있다.

여기는 구암 마을. 태하령예? 눈이 제법 쌓였을 긴데? 뭘라꼬 글루 가능교? 해안선으로 난 큰길 놔뚜고... 하이고 메, 그 길이 우찌 험한지 여자들은 전부 다 오줌을 질금질금 흘렸다 아잉교! 태하령 올라가는 물어보는 짜가 김삿갓 드래곤 나그네에게 친절하게 답변해 주신 동네 어르신의 목소리도 들린다. 2m도 넘게 눈이 쌓인 태하령. (아래 사진) 이 동네에서 출발해서 넘어갔다. <태고의 태하령>

여기는 태하 마을. 2003년 1월. 천신만고 끝에 태하령을 넘어 이 바닷가에 도착하여 일몰을 지켜보았다. 온몸이 쫄딱 젖은 그날, 울릉도 눈의 엄청난 위력을 뼈저리게 실감해 본 그날, 이 바닷가에서 덜덜덜덜 이빨 떨던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는 대한민국 10대 비경으로 선정된 서북쪽 해안의 대풍감. 20년 전에는 길이 없어서 가보지 못했다. 이번엔 꼭 가 봐야지. 기대하셔도 좋다.

여기는 북쪽 해안의 코끼리바위와 송곳산(추봉). 너무나 리얼하여 어디가 어디인지 설명이 필요 없다.

천부 마을. 계곡 사이로 보이는 성인봉 능선에서 수녀님과 함께 봅슬레이를 타고 10분 만에 나리 분지로 내려왔다. 소오생 등산 역사에 기록을 세운 날. <봅슬레이를 아시나요>.

천부에서 섬목으로 가는 해안. 맨 오른쪽이 삼선암 중에서 막내 선녀 바위. 둘째 언니 선녀는 큰 언니한테 가려서 안 보인다. 저곳 어드메에 해안 초소가 있었다. 넋을 잃고 해안선을 보며 걸어가는데 충, 성! 갑자기 초병의 경례를 받고 깜짝 놀랐던 그곳이다. 나도 답례를 해주었다. 충, 성! 나보다 더 깜짝 놀란 초병의 해맑은 눈동자가 어른어른. 근데 누구 구호 소리가 더 컸을까? <제9장. 무지개의 장>

섬목과 관음도 사이에 하얀 건축물이 보인다. 20년 전에는 순환도로가 섬목에서 끝났다. 지금은 여기서 저동까지 54년 만에 길이 뚫렸다. 울릉도와 관음도 사이에 연도교도 생겼다. 하얀 건축물은 그 다리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 건물이다.

관음도 아래 해안 절벽에는 동굴이 많다. 해적들의 은신처였단다. 정말? 리얼리?

연도교가 보인다. 그 사이로 삼선암의 두 언니 바위가 손잡고 붙어 서있다.

섬목에서 내수전, 저동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54년 만에 뚫렸다. 근데 도로가 안 보이신다고? 당연하다. 90% 이상이 터널이니까.

그 사이의 절벽 어드멘가에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가 있단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줌을 최대한 당겼더니 핸드폰이 가벼워 울렁울렁 멋대로 춤을 춘다. 배까지 출렁출렁 쌍으로 춤을 추니 어디에 숨어 있는지 조그만 렌즈 안에 잡히지를 않는다. 흥, 그러면 찾을 알고? 이래 봬도 순간 포착 오직 운빨 상에 기특 정성 오기 갸륵 상까지 받은 몸이시다. 기어이 포착하고 나서 혼자 득의만면 좋아한다.

죽도다. 왜놈들이 말하는 독도가 아니다. 울릉도의 부속 도서인 죽도,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다. 저곳에서 김유곤 님 일가 3명이 알콩달콩 살고 있는 모습이 KBS 인간극장에 3번이나 소개되었다.

여기까지가 죽도. 하룻밤 묵고 싶지만 그러자면 민폐다. 남의 집 불청객이 된다.

저동이다. 우리 집(?)이다. 저어기 고바우펜션 보이시죠? ^^;;

저동에서 도동으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 공사가 한창이다. 아직은 도동 쪽 일부만 뚫렸다.

오른쪽 봉우리가 내수전 전망대가 있는 상봉이다. 20년 전 폭설을 뚫고 저기를 올라갔다. <눈 이야기>

저동 쪽 해안 산책로다. 이제 저동 항구다. 내릴 준비 하세요.

도동 도착! 반대편에 아까 가보았던 그 해안 산책로가 보인다.

아이고, 발 저려라... 세 시간 만에 움직였다.


2008년 6월에 학교에서 교수 퇴수회로 금강산에 간 적이 있다. 나는 계속 교수들 사진을 찍어주었다. 총장님이 말했다. 내가 찍어줄게 교수님도 좀 찍으세요. 그래서 말씀드렸다. 염려 마세요. 저는 제가 찍는 사진 속에 있으니까요. 보잘것없는 울릉도 일주 사진이었지만, 그래도 속에 내가 있음에 만족하고 싶다.




여러분, 따라오시느라 힘드셨죠? 죄송합니다. 올리다 보니 은근히 많네요. ^^;;

그럼 잊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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