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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Aug 12. 2024

22.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풀어라 (2)

<제3부> 중국 음식과 인간관계 (6)

앞의 글, <21.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풀어라 (1)>에서 이어집니다. 전편을 안 읽으시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금방 읽을 수 있으니 얼른 가서 읽고 오셔요. ^^




홍콩에 출장 간 정 부장은 어떻게 실패 직전에 놓였던 비즈니스를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중국 상인과 인상인은 고급 레스토랑 귀빈실 벽에 걸렸던 산수화를 보며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싸게 준다고 해단칼에 거절했던 중국 상인은 비싸게 부른 단가를 즉석에서 받아들였을까? 사이에서 개인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있었던 찬스를 마다하고 오히려 손해를 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 현장에서 중국 상인과 인도 상인의 대화를 지켜보던 정 부장은 혹시 그 미스터리를 푸는 코드가 중국 산수화 속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당시 그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고 있었던 소오생을 찾아와 정중히 물어보았다. "선생님, 혹시 그 그림 속에 뭔가 비밀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설령 그런다 할지라도 홍콩의 그 레스토랑에 가서 그 그림을 보지 않는 한, 어떻게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전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오생은 무슨 배짱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노라고 큰소리를 친 것일까?


자, 소오생의 그 말이 뻥인지 아닌지, 궁금하신 분은 혹시 이야기가 살짝 '전문적'으로 흐르더라도 꾹 참고 끝까지 들어보시라. 중국에서의 꽌시, 아니 바로 우리 선인先人들의 문학과 예술을 통한 진정한 풍류가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이야기는 100% 레알 실화다. (학생을 등장시켜 대화하는 것은 예외다. 그건 스토리텔링 기법. ^^;;)



그림 속의 화제시畵題詩



중국 산수화는 그림마다 나름대로의 비밀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비밀을 푸는 방법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그러니까 꼭 홍콩의 그 음식점 그 그림이 아니더라도 그 방법을 충분히 배울 수 있단다.


솔직히 말해서 선생님도 옛날에는 그걸 몰라서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점잖은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벽에 걸린 액자나 그림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 속에 쓰인 한자가 무슨 뜻인지 설명을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


어? 저두 그런 적 있었어요. 할아버지 생신 때 식구들끼리 중국 음식점에 갔는데, 삼촌이 벽에 걸린 액자를 보시더니, 갑자기 저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시지 뭐예요? 야, 넌 중문과 다닌다면서 그것두 모르냐? 핀잔까지 주시더라니깐요?


하하, 너야 학생이니깐 몰라도 그뿐이지만, 선생님은 그럴 때면 정말이지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단다. 명색이 중국문학박사요 중문과 교수인데, 알면 본전이고 모르면 개망신 아니겠니? 하지만 너는 모르면 본전이고 알면 졸지에 영웅이 된단다. 모두들 이야, 대단한 걸? 탄성을 지르면서 괄목상대할 게 틀림없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런데 하물며 중국 사람들은 오죽하겠니! 이런 그림 속에 있는 한자를 멋들어지게 해독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외국인을 만나면 정말로 그 눈빛이 변한단다. 경악에서 감탄으로, 감탄에서 존경으로! 그래서 만약 그 중국 사람이 너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고개를 아니 허리를 90도로 꺾으면서...


“따(↘)꺼(→)! 따꺼로 모시겠습니다!”


그런 소리가 튀어나오게 마련이란다. 하하 선생님 홍콩 누아르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녜요? 뭬라, 못 믿겠다는 거냐? 쌤이 그걸 어떻게 아느냐 이거지? 그거야... 직접, 그것도 여러 번 겪은 일이니까 알게 된 거 아니겠니? 으흠, 흠! (잘난 척? ^^;;) 아무튼 그런 식으로 현대판 도원결의桃園結義가 탄생하는 거다. 자! 이렇게 관우, 장비 같은 듬직한 아우가 생겼다면, 중국에서 그 어떤 활동을 하든 간에 무슨 걱정이겠니. 안 그래?


각설하고, 중국 산수화 속에 있는 그 한자를 해독하고 감상하는 비결은 대충 비슷비슷하니까 우선 적당한 그림 장을 교재로 삼아서 수수께끼 푸는 요령을 알아보자. 그런데 그러려면 먼저 간단하게 기본 상식을 알아야 한다. 에이, 또 공부하자는 거죠? 어허, 최대한 간단하게 말할 테니 조금만 참거라. 중국에서 진정한 꽌시를 맺으려면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느니!




중국 산수화는 크게 북종화北宗畵와 남종화南宗畵로 나뉜다. 쉽게 말해서 북종화란 전문 화가들의 그림이고, 남종화는 문인들이 '소일거리(?)'로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있단다. 성당盛唐 시대의 왕유王維로부터 비롯되었지. 그런데 오히려 전문 화가들을 밀어내고 중국 산수화의 주축을 형성했단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림과 문학의 세계를 하나로 융합시켜 갔지. 그래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구나! 詩中有畵, 畵中有詩” 그런 말도 있단다. 북송 시대의 또 다른 천재 소동파가 왕유의 예술 세계를 평한 말이지. 앗, 소동파? 저두 알아요! '동파육'을 만들었다는 그 천재 문인 말이죠? 지난번에 선생님이 쓰신 <15. 향기의 세계로 부처님도 담을 넘다>, 너무너무 잼있었어요.


초창기 남종화 문인들은 시詩가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그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화폭 위에 구현하려고 했지. 그러다가 14세기가 되자 보다 노골적인 방법으로 '그림'과 '문학'을 하나로 만들어갔단다. 그림을 그릴 때 떠오른 자신의 느낌을 아예 직접 시로 써서 화면 구도의 일부분으로 삼아버린 거야. 그리고는 그걸 ‘화제 畵題' 또는 ‘제시 題詩’라고 불렀단다.


자, 그럼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아래에 올려놓은 산수화를 보면서 이야기해 보자. 어? 이거 선생님 연구실에 걸려있는 그림이네요? 하하 녀석, 눈썰미가 있군. 맞다. 이걸 교재로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오른쪽 그림의 왼쪽 상단에 보이는 한자들 있지? 이게 바로 '화제'란다. '그림의 제목’이라는 뜻. 선생님, 잘 안 보이는데요? 음, 눈이 나빠졌구나? 왼쪽에 확대해서 보여주마.

아래의 글에서는 편의상 (좌)를 <그림1>로, (우)를 <그림2>라고 하겠다.


이 '화제'가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면 그림 속의 수수께끼는 90% 이상 풀린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걸 해석하지 못하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이야기지. 엇? 근데 너 갑자기 왜 그렇게 우거지 상이냐? 흑흑 선생님, 전 지적 수준이 형편없나 봐여. 중국어를 몇 년이나 배웠는데도 무슨 글자인지 통 모르겠어여. 별로 갈겨쓴 것 같지도 않은데... 흑흑.


하하하! 바로 그게 함정이란다.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젊은이들은 대부분 이 대목에서 자신의 형편없는 한자 실력을 비관하며 잔뜩 주눅이 든다. 하지만 너만 그런 게 아니니까 비관할 필요는 전혀 없어. 한자 깨나 안다고 방귀 뀌는 양반들도 이걸 제대로 해독 감상할 수 있는 분은 그닥 많지 않을 테니까. , 정말요?


그분들의 한문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시험도 경험 많은 사람이 잘 보게 마련이듯, 이 수수께끼도 풀어본 사람만이 풀 수 있는 일종의 퀴즈 게임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요령을 잘 배워두자! 참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먼저 글자 수를 세어라



첫째, 앞으로 이런 그림의 화제를 보면 먼저 몇 글자인지 그것부터 세어 보렴. <그림1>은 모두 몇 글자지? 음... 37인가? 아니면... 38? 아니다! 맨 왼쪽 줄의 세 번째 글자부터는 글자 크기가 작지? 요런 작은 크기의 글씨는 계산에서 빼야 한다. 이런 부분은 대체로 ‘육하六何’ 원칙에 입각한, 그림에 대한 보충 설명이란다. 언제 어디서 누가 그린 그림인가, 그런 걸 알려주는 거야. 이 그림엔 어떻게 쓰여 있지?  


“乙卯夏谿頭歸來黃君壁”


부호를 찍으며 읽어보자.


“乙卯, 夏。 谿頭歸來。 黃君壁”


아하, 이제 알겠어요. '乙卯, 夏。' 을묘, 하... 을묘년 여름에 그린 그림이란 얘기네요? 옳지 옳지, 그다음은 뭐지? 계두귀래 谿頭歸來...? 谿頭가 뭐죠? 조금 아리송하네요? 


'계谿'는 '계곡 계溪'와 같은 글자란다. 이런 걸 이체자異體字라고 하지. 보통은 '溪' 자를 쓰지만 여기선 일부러 거의 사용하지 않는 '谿' 자를 선택해서 쓴 것 같구나. 아니, 왜요? 하하 그러니까 퀴즈 게임인 거지. 너, 이런 글자도 알아? 이렇게 상대방의 지적 수준을 테스트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러니까 '계두귀래 谿頭歸來'는 무슨 뜻이겠니? 음.. 계곡 머리에서 돌아온다? 하하, 이럴 때는 '계곡 머리'가 아니라 '계곡 입구'라고 하는 게 더 낫겠지? 아마 작가가 지금 계곡 입구에 있는 모양이구나. 근데 왜 안 보여요? 저기 배 한 척이 보이지? 아마 저 속에 있는 모양이다. ‘귀래 歸來’, 돌아간다고 했으니 지금 귀가 중인 것 같구나. 그럼 저녁 무렵이겠지? 근데, 그 화가 이름은 뭘까? 여기 쓰여 있다. 黃君璧... 황, 군, 벽... 이렇게 추리 또는 상상을 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거란다.


한자는 상형문자다. 글자 자체가 하나의 그림이라는 뜻. 화제시의 글씨는 컴퓨터상의 활자로 표준화된 글자가 아니다. 작가가 나름대로 '재창조'하여 그려놓은 '그림'이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의 그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함께 공감해 준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그런 사람을 '지기知己' 또는 '지음知音'이라고 부른단다. 그 지음을 찾기 위해서 퀴즈를 낸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찾아낸 지기/지음을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바치는 것, 그게 동아시아 사대부 문화가 숭상하는 전통 정신인 거지.

지음知音: 《열자列子․탕문湯問》과 《여씨춘추呂氏春秋․본미本味》에 실린 아래와 같은 에피소드에서 비롯된 단어다.

백아伯牙는 거문고의 명인名人이었고, 종자기鍾子期는 곡을 잘 이해할 줄 알았다. 백아가 높은 산을 악상으로 떠올리며 거문고를 뜯으면 종자기는 “이야! 하늘 높이 우뚝 선 태산 같구나!” 감탄하였고, 흐르는 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참 좋다!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 같구나!” 탄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이처럼 백아가 떠올린 모든 악상을 종자기는 언제나 조금도 틀림없이 맞추어 내었다.

언젠가 그들이 태산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문득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바위 밑에 피신하고 있는데, 백아가 슬픈 생각이 들어 거문고를 뜯기 시작했다. 처음엔 장마 비를, 이어서 무너지는 산사태를 떠올리며 곡을 연주하는데, 종자기는 그때마다 자신이 떠올린 모든 악상을 정확히 맞추니 백아는 거문고를 내려놓으며 탄복하여 말했다. “노형의 이해력은 정말 기막히구려! 그대가 머릿속에 떠올린 게 바로 곧 내 마음속에 생각했던 그것이었소. 하하,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구려!”

종자기가 죽었다. 백아는 탄식하며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렸다. "이제 또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겠는가!" 소오생은 물론 백아가 못된다. 그러나 종자기 같은 작가님이 브런치에 존재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둘째, 자, 이제 앞부분,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크게 쓰인 글자들을 살펴보자. 바로 이 부분이 '제시'다. 맨 먼저 뭘 하라고 했지? 글자 수를 세어보라고 했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잘 세어보자. 음, 28자 같은데요? 그렇다. 모두 스물여덟 자이다.


근데 이 그림에는 없지만... 이따금 '々' 요렇게 생긴 글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건 바로 위의 글자를 한 번 더 반복한다는 의미의 부호니까 반드시 그것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단다. 알았지?


화제畵題는 대체로 20 글자나 28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20글자라면 5언고시일 수도 있고 5언절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시는 28글자, 7의 배수이므로 7언시다. 7언고시古詩일 수도 있지만 7언절구絶句'일 확률이 높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음,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부득불 먼저 몇 가지 기본 상식을 설명해 줘야겠다. 살짝 지루하더라도 조금만 참으렴.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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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고대 중국 시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① 고시古詩(또는 고체시古體詩)

율시律詩(또는 근체시近體詩)


( 2 ) 고대 중국 시는 글자 수로 따졌을 때 크게 둘로 나뉜다.

① 5의 배수로 떨어지는 오언시五言詩

7의 배수로 떨어지는 칠언시七言詩


( 3 ) 5언율시는 5의 배수 중에서도 40자만으로 이루어진다. 그 절반인 20자로 구성된 것을 5언절구絶句라고 한다. 하지만 20/40 글자로 구성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절구/율시라고 할 수는 없다. 5언고시일 수도 있다.


어떻게 구별할까? 여러 구분법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압운押韻의 유무. 고시는 압운을 하지 않고, 절구/율시는 압운을 한다. 어디에? 절구일 경우 제1, 제2, 제4 의 마지막 글자에 압운押韻을 한다.

※ 압운押韻, rhyme ※

▶ 시를 지을 때 행의 처음, 행의 끝, 행간 휴지休止와 같은 곳에서 비슷한 음 또는 같은 음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리듬감이 탄생하고 기억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현대시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지만 고대 시에서는 많이 사용했다.

▶ 중국어의 발음은 초성初聲과 중성中聲, 종성終聲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발음의 앞부분(초성)을 성모聲母라 하고, 뒷부분(중성+종성)을 운모韻母라고 한다.

▶ 중국시에서 압운을 한다는 말은 같은 계열의 운모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군’, ‘문’, ‘분’, ‘준’ 등은 모두 같은 계열의 운자다. 이렇게 동일한 운모를 사용하여 시를 쓰는 행위를 ‘압운’을 한다고 말한다.

▶ 우리나라의 한자 발음은 당나라 때의 중국어 한자 발음과 매우 유사하다. 그 무렵 중국에서 수입된 어휘와 발음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중국의 표준어 발음은 모두 변했기 때문에 일반 중국 사람들은 압운 여부를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자 발음만 알면 거의 대부분 압운 여부를 맞출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림 속의 퀴즈를 풀기에 매우 유리하다.


( 4 )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중당中唐 시대 유종원柳宗元의 <강설 江雪>이라는 작품의 예를 들어보자. 해석 및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금은 발음을 읽어보면서 압운 여부만 확인하면 되겠다.

제1, 제2, 제4 구句의 마지막 글자(붉은색)가 '절, 멸, 설'로 같은 계열의 운자를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오언절구이다.


( 4 ) 7언도 마찬가지. 28 글자면 7언절구, 56 글자면 7언율시일 확률이 높다. 그때 압운을 했으면 절구/율시, 아니면 7언고시다. 그런데 보통 화제는 율시보다는 주로 짧은 절구를 많이 선택한다. 글자가 지나치게 많으면 화면 구도를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5 ) 화제는 고시보다는 절구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압운을 이용해서 퀴즈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압운을 하지 않는 고시나, 장편의 율시, 또는 시가 아닌 산문이더라도 인구에 회자되는 아주 유명한 구절일 경우, 그 일부만 잘라서 제시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압운을 하지 않기 때문에 퀴즈를 풀 수 있는 도구 하나가 없어지는 셈이므로, 작가는 퀴즈를 출제할 때 난이도를 잘 조절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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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그림 1> 화제시의 글자 수는 모두 28자다. 그렇다면 7언고시일 수도 있지만, 7언 절구일 확률이 더 높다. 어떻게 알 수 있다고? 압운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즉 제1, 제2, 제4 구句의 마지막 글자가 같은 계열의 운자인지 그것부터 살펴보라는 이야기다. 수수께끼를 푸는 결정적 힌트다.



압운押韻 ―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셋째, 글자 수를 확인했으면 그다음에는 끊어 읽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석이 되니까. 중국 고문을 해독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문장부호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하는지,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하지만 시의 경우에는 아주 쉽다. 5언시는 5의 배수가 되는 곳에서, 7언시는 7의 배수가 되는 곳에서 끊으면 되니까. 하하 무지 쉽지? 조금 더 자세히 끊는다면 5언시는 2/3으로, 7언시는 2/2//3으로 끊어 읽으면 된다. 문장부호가 없어도 이런 공식(?)만 알면 수수께끼를 보다 쉽게 풀 수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위의 공식에 맞춰서 <그림 1>의 화제시를 끊어 읽어보자. 무슨 글자인지 애매한 건 일단 ①, ②, ③으로 표기해 보겠다. 전체 그림과 화제시를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볼까?


제1 구 : 深 ① / 開 // 磵 ③ ,

제2 구 : 鐘  / 時 向 // 靜 中 ⑥,

제3 구 : 翠 微 / 忽 斷 // 丹 崖 影,

제4 구 : 呑 吐 / 層 巒 // 是 白 雲。     



정신 차려 살펴보니 애매하게 ‘그려 놓은’ 글자는 모두 6자 정도다. 그렇지? 그럼 이제 뭘 해야 될까? 운자韻字가 뭔지 확인해 봐야겠지? 7언 절구일 확률이 높다 했으니, 만약 그렇다면 제1, 제2, 제4 구절의 마지막 글자가 같은 운자를 썼겠지? 앗, 저 알았어요. 운자는 '운'이네요? 맨 마지막 이 글자, ‘구름 운雲’ 자잖아요! 


하하, 맞았다. 그러니까 ④와 ⑥도 발음 뒷부분이 '―un'이겠지? 다시 말해서 ④와 ⑥의 전체 발음은 '군, 눈, 둔, 룬, 문, 분, 순, 운, 준...' 중의 하나라는 이야기. ③과 ⑤의 글씨 모습을 살펴보며 그 발음들을 하나씩 대입해 보렴. 필요하면 <그림 2>도 잘 살펴보면서 말이지. 그리고 한 구절씩 해석하며 애매모호한 글자가 무엇인지 추리해 보는 거다.


첫째. [ 深 ① ]은 뭘까?


'심深'은 '깊다, 울창하다'는 형용사다. 그럼 그 형용사의 수식을 받는 ①은 무엇일까? 먼저 한글로 생각해 보자. '깊은 산, 깊은 숲...' 그런데 글자 ①의 모습은 '뫼 산山'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깊은 숲? '숲'을 한자로 뭐라고 하지? 음... '삼림森林'? 근데 '삼森'이나 '림林'의 글자 모습도 글자 ①과는 거리가 멀다. 비슷한 뜻이면서도 ①과 비슷한 모양의 글자가 또 어떤 게 있을까? 생각이 안 나면 잠시 뒤로 미루어두자.


둘째. [ 開 ]


뭘까? ‘開’는 ‘열린다’, ‘걷힌다’는 뜻이지? <그림 2>를 보렴. 지금 뭐가 울창하지? 울창한 어디에 무엇이 열리거나 걷히고 있지? 글쎄요? 나무가 많네요? 안개 같은 것도 끼어 있고... 우와! 그렇다. 너 천재구나? 한꺼번에 글자 ①과 ②를 다 맞췄네?


네? 제가요? 언제요? 내가 지금 뭐라 그랬더라? 나무, 안개... 그럼 ①과 ②가 '나무'랑 '안개'라는 말인가여? 근데 나무랑 안개를 한자로 뭐라고 그러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헤헤, 선생님, 뭐라고 하는지 그것만 갈켜주시면 안 될까요?


'나무 목木', '나무 수樹'... 앗, 그러고 보니 글자 ①의 모습이 '나무 수樹'랑 비슷하네여? 그렇다! 하하 선생님 생각에도 그런 것 같구나. [ 深 ① ][ 심수深樹 ] 즉 [ 깊은 숲, 울창한 숲 ]인 것 같고, <그림 2>를 보니까 울창한 숲에 뿌연 안개가 그려져 있으니까 [ 開 ]는 '안개가 걷힌다'는 뜻 같다.


그럼 글자 ②는 ‘안개’여야 하는데... 어쩐지 이상하다. ‘안개’는 한자로 ‘무 霧’인데, 글자 ②의 생김새와 너무 다르다. 그런데 이건 중국 고전 문학에 대한 기초 상식이 있으면 금방 해결된다. 고전 문학작품에서는 ‘안개’ 따위의 희끄무레한 기체를 통칭해서 ‘연기 연烟’ 자를 쓴다. 그걸 알고 있으면 답은 금방 나온다.


답을 알고 글자를 보니 이제 무슨 글자인지 보인다. 그러나 모르면 아무리 쉬운 글자라도 읽을 수가 없는 법. 동방 세계의 사대부 선비들은 일부러 글자를 애매하게 써서 상대방의 학문적 수준이나 문학적 소양을 테스트했던 것. 더불어 삶과 인생과 우주를 논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은 것이었다.


深樹烟開

울창한 숲 속에 끼어있던 안개가 걷히누나!


지금 안개가 끼고 있는 게 아니다. 걷히고 있는 상태다. 그림만으로는 그걸 알 수가 없다. 화제시를 읽을 수 있어야만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셋째. [ 澗 ] 


‘간磵’은 ‘바위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계곡 물’이라는 뜻. 우선 글자 를 먼저 보자. ‘혜 兮’ 자처럼 생겼는데요? 아니다. ‘혜’ 일 수는 없다. 왜냐고? 글자 ⑦을 통해서 '구름 운'과 같은 운모를 사용하는 글자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 둔, 문, 분, 순, 준...' 중에서 와 비슷한 모양의 글자는 뭐가 있을까? 그렇다! 바로 ‘나눌/나뉠 분分’이다.


[ 深樹/烟開// ] 


이제 첫 번째 구절에서는 ③만 모른다. 일단 빼고 해석을 해보자. 울창한 숲 속에 끼여있던 안개가 걷히니 계곡에 있는 무엇이 나뉘어 보인다는 말일까? 글자 모습을 잘 보면서 생각해 보렴. 아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그냥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하하 얼른 생각이 안 나는 게 당연하단다. 쌤도 무지 오래 생각해서 간신히 알아낸 건데, 네가 금방 알아내면 난 뭐가 되겠냐? ㅋㅋ


힌트를 주마. 지금 이 화제시를 지은 황군벽黃君璧, 황쥔삐(1898~1991)는 울창한 숲 속의 계곡에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지? 산책을 하려면 계곡에 뭐가 있어야 할까? 길이 있어야겠지? 앗차... 실수... 헤헤 선생님, 이제 생각났어요. 이거 '길 로路' 자네요. 그렇다. 저녁 무렵이 되어 울창한 숲 속에 끼어있던 안개가 걷히니까 그제야 계곡 사이 여기저기 길이 갈래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는 말이다. 정리해 볼까?



深樹/烟開//澗路

깊은 숲

안개 걷히니

계곡 사이로 드러나는 갈랫길



다음은 두 번째 구절이다.

[ 鐘⑤ 時向 靜中 ]


‘종鐘’은 뎅뎅 울리는 종을 말하는 것이니, ⑤는 무슨 글자가 되어야 할지 잘 생각해 보자. ‘향(向)’은 ‘줄곧’이란 뜻. 어떤 동작이 제법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시향 時向'은 '늘, 시시때때로'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


'정중 靜中'이라... 고요한 가운데 을 한다고?  뭘까? 바깥 모습은 분명 ‘문 문門’인데, 그 문 안의 모습이 아리송하다. 근데 이 글자에는 힌트가 있다고 했지? 이 글자의 발음 끝소리는 ‘운'이었다. 그렇다면? 시시때때로 뎅뎅 울리는 종의 무엇을, 고요한 가운데 무엇을 하고 있겠는가? 이쯤 되면 누구나 쉽게 맞힐 수 있다.


그렇다. ⑤는 ‘소리 성聲’이고 은 ‘들을 문聞’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니 과연 그 글자가 그 글자로세! 시시때때로 뎅뎅 울리는 종소리를 고요한 가운데 한참 동안 듣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 시인/화가는 어쩌다가 한 번 이곳에 산책을 간 게 아니라 자주 갔다는 이야기.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이야기. 아마도 은거해서 사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정리해 보자.



深樹/烟開//澗路

鐘聲/時向//靜中聞

깊은 숲

안개 걷히니

계곡 사이로 드러나는 갈랫길

이따금

정적 속에

종소리를 듣는다



세 번째, 네 번째 구절은 다 잘 보이는 글자들이니 대충 해석만 해보자.


翠微忽斷丹崖影, 呑吐層巒是白雲

희미한 비췻빛 문득 끊기니

까마득한 절벽 그림자 되고

층층 산봉우리 삼키고 토하는

그것은 바로 하얀 구름

▶ 翠微(취미): 산 중턱에 보이는 푸른빛. 듬성듬성 보이는 나무 숲
▶ 丹崖(단애): 깎아지른 절벽
▶ 呑吐(탄토): 삼키고 토하다
▶ 層巒(층만): 층층 겹친 산봉우리


<그림 2>를 보렴. 아닌 게 아니라 상면에 그려진 까마득한 절벽 사이사이 희미한 비췻빛이 보인다. 절벽에 걸린 소나무 측백나무 같은 거겠지? 하지만 그 밑으로는 절벽이 워낙 가파르게 떨어져서 그나마 드문드문 보이던 나무의 그림자도 이내 사라지고 만다. 하얀 구름은 겹겹 쌓인 봉우리들을 삼키듯 토해내고 있는데...


시인/화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배 안에 있을 것 같구나. 그림에 그려진 배의 봉창이 높지 않은 걸 보니 어쩌면 그 속에 드러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눈을 감고 종소리를 듣고 있지 않을까? 어디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일까? 산 중턱에 자그마한 산사가 보인다. 저곳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뎅... 뎅... 뎅...


중국 문학 작품이나 그림은 멀티미디어 예술이다. 그 어떤 형상을 글자로 사진 찍었을 뿐만 아니라 소리도 녹음해 놓았으니, 감상할 때는 반드시 그 속에 담긴 이미지와 소리를 함께 복원해야 한다.


우리도 같이 눈을 감고 그 은은한 종소리를 들어보자. 그림과 시에 담긴 작가의 분위기를 내 것으로 느껴보자. 고요히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가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유토피아가 조용히 나를 찾아올 것이다.




어떠냐? 이쯤 되면 정 부장과 같이 식사를 했던 그 리李라는 중국 상인과 인도 상인이 왜 그림을 보며 허허! 그렇군, 끄덕끄덕 고개를 연신 휘두르며 한 시간 동안 삼매경에 빠졌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지?


히야, 쫌 골치 아프긴 하지만 정말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게임이네요. 하지만 홍콩의 그 레스토랑에 걸린 산수화에도 이런 경지가 담겨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음,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지금 쌤이 얘기해 준 이런 특징들은 남종화 계열의 모든 산수화가 공유하고 있는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단다. 그러니까 정 부장님이 보았던 홍콩 레스토랑의 그림도 비슷한 경지를 지니고 있을 게 틀림없다. 이런 퀴즈 게임은 요령이다. 몇 번만 풀어보면 그 요령을 잘 익힐 수 있다. 너도 잘 배워두었다가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멋지게 솜씨를 발휘해 보렴.


뽀~나스로 쌤이 얼마 전에 들은 얘기 하나 더 해줄까? 서울 모 대학에서 중문과 교수를 초빙하는데 학과에서 1등으로 추천한 선생님이 있었단다. 모든 심사 과정을 다 통과하고 최종적으로 총장실에서 면접을 하게 되었지. 근데 그 학교는 상당히 민주적이어서 학과에서 1등으로 추천하면 총장 면접은 거의 요식 행위였대. 아 그런데 한참 화기애애하게 면접을 진행하다가 총장님의 시선이 무심코 자기 방 벽에 걸린 산수화에 꽂혔다네?


아 참, 선생님. 근데요, 저기 걸린 그림에 쓰여 있는 한자가 무슨 뜻인가요? 얼마 전부터 그게 너무 궁금했는데 설명 좀 해주세요.


그 젊은 선생님, 그 위기를 어찌 모면하셨을까? 소오생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었으니, 새빨개진 얼굴로 안절부절 찍 소리를 못했다네. 그러니 그 결과가 어찌 되었을꼬? 어찌 되긴 뭘 어찌 되나. 보나 마나 뻔할 뻔 자지.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푸느냐 못 푸느냐, 심지어 교수 자리가 걸려 있다. 수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 중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일은 비일비재 벌어진다.



싸부님! 고개를 숙이며 달려오는 꽌시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렇게 오순도순 대화하며 함께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면 상대방 중국인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경악에서 감탄으로, 감탄에서 존경으로 변하는 상대방 중국인의 눈동자가 눈앞에 선히 떠오르지 않는가?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꺾으며...


“따(↘)꺼(→)! 따꺼로 모시겠습니다!”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지 않으신가?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풀어라! 그러면 꽌시가 고개를 숙이며 달려올 것이다.


아무튼 우리의 정 부장님, 소오생의 해설을 듣더니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이다)


“싸부님! 싸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럴 필요 전혀 없다. 소오생은 그러면 진짜 몸 둘 바를 몰라한다. 너무 어색해서 그런 분들은 다시 만나기가 두려워진다. 그저 앞으로 소오생이 쓰는 글만 열심히 읽어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격스러운 일이겠다.


자, 이야기를 마무리해 보자. 정 부장님의 또 하나의 커다란 의문점을 해결해 보자.

 

개당 20달러의 엄청나게 싼 금액도 단칼에 거절했던 중국 상인 리李는, 왜 인도 상인이 부른 25달러라는 고액의 단가를 즉석에서 받아들였을까? 사이에서 개인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있었던 찬스를 마다하고 오히려 손해를 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첫째, 중국 지식인은 정녕 그렇게 청렴한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중국의 부정부패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어찌나 극성인지 툭하면 부정부패로 체포된 고위공무원들을 공개 처형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렇다면 중국 상인 리李는 어찌 된 별종인가? 물론 그가 매우 청렴한 사람일 가능성도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아닐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매사에 매우 신중하다. 설령 유혹이 된다 해도 처음 만난 인간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잘못해서 배탈 나는 경우를 어디 한 두 번 보는가? 그게 중국인이다. 지식인일수록 더욱 신중하다. 만약 리더 그룹에 속한 중국의 지식인이 '내'가 주는 개인적인 선물(조금 값나가는 선물)을 받기 시작한다면, 그만큼 '나'를 믿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중국 친구는 틀림없이 매사에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성원한다. 그게 진정한 꽌시다.


둘째, 20 달러도 거부하던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오히려 25 달러라는 금액을 선선히 응낙한 것일까? 왜 손해 나는 짓을 했을까? 그건 당시 상황을 몰라서 우리가 오해하는 거다. 중국 상인 리李는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키포인트는 '티에판완(鐵飯碗: 철밥그릇)'과 '미엔즈(面子: 체면)’!


그 당시는 우리나라와 중국은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을 무렵. 비록 작은 거인 오뚝이 덩샤오핑邓小平이 자본주의 노선을 채택했지만 아직은 직장마다 티에판완(鐵飯碗: 철밥그릇) 풍토가 판을 치고 있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였으므로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나 직장이 있고 기본 소득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니 직장마다 직원이 엄청나게 많을 수밖에 없다. 서너 명만 있어도 충분한데 누구에게나 직장을 줘야 하므로 삼십 명 오십 명 직원이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 해야 할 일을 서로 미룬다. 아무 일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기만 해도 절대 쫓아낼 수 없다. 그렇게 철밥그릇을 차고 있다고 해서 티에판완(鐵飯碗)이라고 부른 것이다.


리李가 20 달러를 수락하면 사이에서 1 달러를 착복할 수는 있지만 상대방을 믿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소속 국영 기업에서 잘했다고 칭찬하며 인센티브를 주느냐 하면,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 25 달러를 수락하면?  소속 기업은 돈을 못 벌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문책당하거나 개인적으로 손해 볼 일도 없다.


“아무려나, 내 밥그릇은 철로 만들었으니까 절대로 깨지는 일은 없지!”


그런 ‘철밥그릇(티에판완)’ 정신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데다가, 자기와 잘 통하는 인도 상인의 ‘체면(미엔즈)’을 이런 때 한 번 크게 세워줌으로써 훗날을 도모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해가 되셨는지?




그러나 절대로 착각하지 마시라! 우리는 중국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하다.


‘철밥그릇(티에판완)’은 30여 옛날 얘기다. 오늘날 중국은 하루이틀이 다르게 무섭게 변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장점을 수용하여 국가의 경제력이 이제는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 가는 수준임을 알아야 한다. 미국 정부가 두려움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나선 이유가 있다.


중국은 '국가'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작은 세계'다. 17세기처럼 낙후된 곳도 있는가 하면 21세기 전 세계 최첨단을 달리는 곳도 많다. 중국 전역의 그 어떤 도시를 가도 말할 수 없이 깨끗하고 번화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도시는 어둡고 시골 같다는 느낌마저 준다.


AI 기술도 우리나라는 선발 주자인 미국보다 1.5년 정도의 기술 차이가 있지만, 중국은 불과 1년 정도의 차이밖에 없단다. 그것도 따라붙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공포스러울 정도다.


네덜란드에서 거주하시던 무연고 작가님이 요새 중국에서 생활하며 글을 올리고 계신다. 매거진 <다시 중국 길을 걷다> 참고하시면 무섭게 변해가는 중국의 모습을 엿볼 있다.


그러나 '꽌시' 문화는 변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다.


'꽌시'란 무엇인가. 한자로 '관계 關係, 关系', 즉 '인간관계'를 말한다. 우리 동방 문화에서 '인간관계'가 사라질 리가 없으니, 오늘 알려 드린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푸는 비결'의 중요성 또한 변할 리가 없을 것이다.


<끝>




[ 대문 사진 ]

◎ 하루가 다르게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중국. 사진은 북경 시내. 중국 전역의 도시들이 대체로 비슷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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