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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Aug 05. 2024

21.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풀어라 (1)

<제3부>  중국 음식과 인간관계 (5)

중국에서의 '꽌시'는 어떻게 맺는 것일까?

이 글은 그 다섯 번째 이야기다.

먼저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1) 중국문화는 크게 '아雅문화' '속俗문화'로 분류된다. 그중 95% 이상이 '속문화'다. 그러나 중국 역사를 이끌어온 것은 5% 미만의 지성인, 속칭 사대부士大夫 그룹의 '아문화'다. 그들 그룹 내의 꽌시가 진짜 꽌시다. 그렇지 못한 꽌시는 결정적인 순간 뚝 끊어져버리는 썩은 동아줄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2) 여기서 소오생이 말하고자 하는 꽌시는 '아문화'의 꽌시다. 눈 앞의 이익 만을 노리는 95%의 썩은 꽌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진정한 꽌시를 맺으려면 선결 조건이 있다. 우선 나 자신부터 5%의 지성인 그룹에 속해야 한다.


(3) 꽌시는 대부분 처음 만나서 함께 먹고 마시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첫인상 점수(印象分)'가 대단히 중요하다. 어떻게 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4) 식사의 기본예절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밥 먹는 자리가 바로 곧 술 먹는 자리니까 술자리 기본 에티켓을 알아야 한다. <18. 주선酒仙이 되는 비결 - 초급>


(5) 이때 중국인이 탄복하며 형님 아우 도원결의를 맺자고 덤벼들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문학으로, 동방 세계 고전에 대한 문학적 소양을 보여주자. <19. 주선酒仙이 되는 비결 - 중급>


(6) 소설 삼국지는 모든 고전의 기본이다. 반드시 섭렵하자. 만화책으로라도 꼭 읽어두자. <20. 삼국지를 읽으면 꽌시가 열린다>


(7) 동방 세계에서 말하는 '문학'은 서구의 'literature'와는 다르다. 글씨와 그림, 특히 산수화와 대단히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대부분 중국 산수화에는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다. 만약... 중국 지성인과 함께 밥 먹는 자리, 술 먹는 자리에서 비밀을 풀어낸다면? 두 말하면 잔소리! 중국에서의 진정한 꽌시가 번쩍 손을 들고 물개 박수를 치며 여러분에게 달려올 것이다.


이해가 가시는가?

자, 그럼 신명 나게 꽹과리를 치면서 둥둥둥둥 북을 울려보거라.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풀어라> 이야기 한 마당의 막을 올려보자꾸나. 얼쑤!




홍콩에 간 정 부장, 의혹에 쌓이다     


소오생이 아직 대학교수가 되지 못했던 호랑이 담배 필 때 얘기다. 민생고 해결 차원에서 모 재벌 그룹에서 중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지라 수강생들도 모두 쟁쟁한 분들이었다. 거의 대부분 나보다 10여 년 이상 연상이었고, 모두 수십 년씩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수출 전선에 앞장섰던 '애국자'들이셨다.


그중에 정 부장이란 분이 있었는데 언변이 아주 뛰어났다. 오대양 육대주를 돌아다닌 화려한 경력에다가, 아는 것도 많고 영어도 기가 막히게 잘했다. 게다가 세일즈라면 이골이 나서 아프리카 식인종 마을에 비행기가 떨어져도 자기는 살아 나올 수 있노라, 추장 딸을 꼬셔서라도 물건까지 팔고 나올 자신이 있노라, 언제나 큰소리치는 폼이 나이도 한참 어린 내가 선생이랍시고 가르치는 게 영 미덥지 못한 모양이었다.


“중국에서는 영어가 안 통합니다. 꼭 중국어를 하셔야 해요. 언어도 필수지만 중국 역사와 문화 무엇보다 문학적 소양을 익히시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강조하면 할수록 자꾸만 딴지를 걸면서 내 말이 잘못되었음을 가르쳐주고 싶어 했다.


그렇게 한 달이나 지났을까? 드디어 정 부장님, 결석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안 들었나... 씁쓰레한 기분으로 일주일쯤 지났는데, 어라? 그 양반이 다시 출석을 했네? 헌데, 태도가 과거와는 완전 딴판이다. 게다가 수업이 끝나자 아주 공손한 태도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꼭 좀 식사를 모시고 싶은데요. 여쭤볼 말씀도 있고...”


그리고는 근사한 일식집에 가서 지난 일주일 동안 겪었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정 부장이 일주일 동안 다녀온 곳은 홍콩! ○○ 상품을 중국에 수출하라는 회사의 명을 받은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은 국교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과 교역하려면 홍콩을 가야만 했다. 회사에서 내정한 그 상품의 수출 단가는 미화 23달러. 그 이상 받아내면 특별 상여금이 기다린다. 마지노 라인은 21달러!


처음으로 중국과 장사를 하러 가지만 정 부장은 자신만만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 아니던가! 그런데 상황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는 라인을 총동원해서 여기저기 접촉해 봤지만 최저가인 21달러를 제시해도 중국 무역상들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초조해진 그는 귀국 예정일이 다가오자, 마지막으로 만난 중국 무역상 리李에게 20달러를 제시했단다.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도저히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지라, 회사에 책임질 각오로 자기 임의대로 최저가보다도 더 낮은 금액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가. 쉽게 말해서 국제적 단가보다도 더 싼, 한 개당 1달러는 사이에서 당신이 맛있게 드셔도 된다는 의미였다. 십만 개를 사면 십만 달러! 한화로 1억이 넘는 거금이 그 사람 개인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장사다. 얼씨구 지화자 땡이로구나~! 당연히 리가 춤을 추며 계약에 응해 올 것으로 생각했단다. 그러나 예상은 또 한 번 보기 좋게 빗나갔다. 리는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는 것이다.


에엥? 아니, 왜??

이 친구... 제정신인가??


너무나 놀랐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더란다. 아무튼 생애 첫 실패를 맛본 정 부장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쓰린 마음으로 영국식 선술집에 들어가 독주를 마셨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무슨 이유로, 주머니에 공짜로 넣어주는 그 큰돈을 받지 않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중국인들은 정녕 그렇게 청렴하단 말인가?


오우, 이게 누쿠셔요? 청부짱님 아니셔요? 롱 타임 노우 시! (한국말 아님. 인도 영어임 ^^)


그때였다. 독한 술을 들이키는 그 순간 누군가 말을 건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평소 안면이 있던 인도 상인이었단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방금 전 겪었던 그 쓰라린 사연을 털어놓게 되었다.


오우, 네버 마인! 컥쩡마쎄여! 나 아추 찰 아는 충쿡 쌀람 있어여. 노 프로블럼. 내일 소개해줄케여!


그랬더니 그 인도 상인이 자기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중국 무역상이 있다고 연줄을 놔주겠노라 하는 것이 아닌가! 정 부장,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들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저녁. 홍콩의 최고급 중국 식당의 아늑한 특실. 정 부장은 일찌감치 미리 와서 두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실내는 무척이나 정갈하고 그윽했다. 골동품으로 보이는 화병들, 벽에 걸린 산수화가 우아한 격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우리의 정 부장님, 왠지 자꾸 위축이 되어간다. 강남 룸살롱에서 접대하는 거라면 자신 있는데...


그 순간, 정 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인도 상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는 중국 무역상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잔뜩 긴장해서 콩닥콩닥 뛰던 가슴이 철커덕 내려앉고 심장이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바로 그였다. 어제 낮에 만나서 인생 최대의 굴욕을 안겨주었던 바로 그 리李였던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눈앞이 캄캄해진 정 부장,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리'는 정 부장에게 간단히 목례만 건넬 뿐. 그 이상 자기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는 체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바로 어제 만났으니 분명 몰라볼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산해진미의 음식이건만 어떻게 목으로 넘어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정신없이 넋을 놓고 있다가 문득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어라?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네? 헛쭈? 게다가 그 인도 친구, 중국어를 썩 잘하네? 정 부장 자신이야 늘 중국어 선생(누굴까)에게 대드느라고 어디 전심해서 배웠어야 말이지. 그것도 고작 한 달 남짓밖에 안되니, 중국 상인 리와 대화할 때의 모든 의사소통은 당연히 영어로 했던 것이다.


정 부장은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두 사람이 하는 중국어를 열심히 들어 보았다. 외국어 습득의 첫 번째 비결은 뭐라고? ‘눈치가 빠를 것’, 두 번째 비결은 뭐라고? ‘얼굴에 철판을 깔 것’ 아니던가? 오대양 육대주를 돌아다닌 정 부장인지라 그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래서 참으로 열심히 귀를 기울여 들었단다. 아니 근데 뭐 하자는 거야? 순전히 날씨나 골동품 따위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하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정작 중요한 자신과 관련된 사업 이야기는 꺼낼 생각도 안 하더라는 것이다. 음식은 계속 들어오고, 잡담은 한없이 이어졌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하하 껄껄 웃는 꼬락서니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고개 들어 바라보니, 그들의 시선이 벽에 걸린 산수화에 멈추어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두 사람은 그림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 시간이 넘도록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더란다. 산수화의 왼쪽 상단에 뜻 모를 한자들이 잔뜩 쓰여 있었다. 두 사람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고개를 갸우뚱, 끄덕끄덕, 아하~ 맞아 맞아! 탄식까지 내뱉더니, 마침내 흥겨운 표정으로 폭소를 터뜨리더라는 것이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짓이란 말이냐...




드디어 두 시간에 걸친 식사시간이 끝났다. 이제나 저제나 내 얘기는 언제 하나? 초조하게 기다리던 정 부장의 심정은 아랑곳없이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는 게 아닌가! 뭐야, 지금 헤어지는 거야? 내 얘긴 하지도 않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정 부장이 인도 친구의 손을 살짝 꼬집으며 다급하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인도 친구, 한쪽 눈을 껌벅! 안심하라는 뜻인가?


뚜일러! 타... 전머빤?

“對了! 他---, 怎麽辦?"

아, 참! 저 친구... 어떻게 하지?


막 돌아서는 '리'에게 인도 친구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건네자, '리' 역시 그제야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뚜이! 타... 야오/ 뚜오ㄹ사오?

“對! 他---, 要多少?"

응, 참, 그렇지! 저 사람....... 얼마라고 했지?


메이진... 얼ㄹ스/우/콰이!

“美金---, 二十五塊!"

달러로..... 개당 이십오 불이라던데?


드디어 내 얘기를 하는구나... 잔뜩 긴장하며 듣던 정 부장, 그 순간 깜짝 놀랐다. 아무리 한 달밖에 안 배운 중국어 실력이지만 숫자만큼은 확실히 마스터한 그였다. 20달러도 거절한 '리' 아닌가! 아무래도 1달러를 더 깎아줘야 할 모양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25달러라니! 눈앞이 까매진 정 부장의 귀에 도저히 믿지 못할 한 마디가 들려왔다.


하오~!

“好!”

오케이!


뭐, 뭐라고? ‘하오(好)’? 이게 뭔 소리지? 이 말에 무슨 딴 뜻이라도 있나? 그러나 그 다음날 사무실에서 만난 리는 25달러라고 쓰인 계약서를 힐끔 한 번 살펴보았을 뿐, 군말 없이 사인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중국 사람 속마음은 대체 무슨 꿍꿍이란 말인가! 정 부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단다. 그 순간, 그저 내 얼굴만 떠오르더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 그림에 뭔가 비밀이 담긴 거 아닐까요?”


너무나도 궁금했던 우리의 정 부장님,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나를 찾아와 정중하게 최고급 일식집에서 저녁을 사며 그 사연을 물었던 것이다.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무역상 정 부장은 과연 달랐다. 단칼에 핵심을 찔렀다.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필경 그 중국 식당에 걸린 그림 속에 숨어있을 터였다. 하지만 정 부장이 그 중국집에 다시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오지 않는 한, 소오생이 어떻게 알고 그 수수께끼를 풀겠는가?


그러나 걱정 마시라! 비록 형사 콜롬보 반장은 아니로되, 교수 짬밥(잔반) 수십 년의 소오생이 이 정도 사건도 해결할 수 없을까 보냐~! 궁금하신 분들은 학처럼 목을 빼고 다음 편 글이 언제 올라올지 기다리고 계시라!


< 계 속 >




[ 대문 그림 ]

황쥔삐黃君璧(1898~1991) , 〈계두귀래溪頭歸來〉. 소오생의 연구실에 걸린 복제본이다. 대만 고궁박물원에서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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