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수, <취옹정기> 감상
오늘은 중국 송나라 때의 대 문호인 구양수歐陽修(1007~1072)가 만 40세에 지은 <취옹정기 醉翁亭記>라는 글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전편에 흘러넘치는 글의 주제는 '여민동락 與民同樂', 요새 말로 하자면 '시민과 함께 하는 즐거움'입니다. 중국의 교과서에 수록되었을 정도로 유가 사상, 특별히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명작 중의 명작입니다.
내란 수괴인 윤석열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내란에 동조하고 있는 여당 의원들이 어렸을 때 이런 작품들을 읽고 배우고 느낀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2024년 12월 12일 오늘의 대한민국과 같은 참담한 상황이 벌어져 있을까요? 이제부터라도 우리 주권자들이 이런 작품들을 읽고 가슴에 새겨서, 수구 기득권 모리배 세력들에게는 단 한 표라도 던져주지 않아야 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어떤 내용의 어떤 작품일까요? 어서 읽어보시죠.
구양수歐陽修 (A.D. 1007~1072) :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만년에는 육일거사六一居士라고도 칭했다. 오늘날의 강서성江西省 길안현吉安縣인 여릉廬陵 태생으로 탁월한 역사가이자 북송北宋 문단의 태두였다.
그는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이래 맥락이 끊어졌던 고문운동을 계승/완성시킨 핵심 인물이다. 당송팔대가 중 송나라의 여섯 명이 그 자신과 그의 문하생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국 산문사에 있어서 그 확고부동한 지위를 단적으로 짐작할 수 있겠다.
이 글은 중앙 정단政壇에서 개혁에 적극 참여하던 구양수가 정치적 실의를 맛보고 남경 부근의 저주滁州 태수로 폄적된 이듬해인 1046년(경력慶曆 6年. 구양수가 마흔 살 되던 해임), 풍년을 맞이한 백성들과 함께 인근의 낭야산 기슭으로 유람을 나가 지은 작품이다.
이 글의 주제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옛날 말로 풀이하자면 '백성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요, 요새 말로 하면 '시민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다.
'국민'이라는 단어는 일본 군국주의, 전체주의의 색채가 강한 언어다. 소위 '국뽕' 맞을 것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예컨대 영어의 'mother tongue'은 '모국어'가 아니라 '모어母語'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그 '즐거움' 뒤에는 작가의 또 다른 정서가 숨어 있다. 그 정서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고 잘 음미해 보시라. 바로 그 요인 때문에 이 글이 바람직한 위정자爲政者의 자세를 제시한 모범적인 문장으로 인정받는 것이니까. 또 이 작품의 형식과 서술 면에서의 매력도 간과할 수 없다. 두 가지만 꼽아보자.
(1) '하루' 또는 '일 년 사시사철'에 걸쳐 변화하는 대자연의 특징적 모습을 간결하게 포착했다. 이 묘사들은 그 후 중국 문인들에게 각기 하루의 아침/저녁과 춘하추동을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2) <취옹정기> 전문全文은 < A 者, B 也。>와 같은 형식을 띤 21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A 者, B 也。>는 < A는 B이다>라는 뜻이다. (때에 따라서는 '者'를 생략해도 된다.)
< A 者, B 也。>
< A는 B이다>
< A = B >
그런데 21개의 문장 중 A는 대부분 장문의 명사구이고 B는 짧은 명사구/명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 A가 어떤 내용인지, 문법적 성분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것도 작품 감상의 또 다른 재미겠다. 잘 음미해 보시라.
(1-1) 저주滁州 지방은 모두 산으로 에워싸져 있다.
(1-2) 그중에서도 서남쪽에 있는 봉우리들은 숲과 계곡이 특히 아름다워, 멀리서 바라보아도 울울창창 그윽하고 빼어나니, 바로 곧 낭야산琅琊山이다.
(1-3) 산길을 육 칠리쯤 걸어 올라가면 졸졸 물소리가 차츰 크게 들려오니, 두 봉우리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시냇물이 바로 곧 양천釀泉이다.
(1-4) 봉우리 사이사이 길은 구불구불, 날개를 활짝 펼친 새처럼 냇가에 다가선 정자가 있으니, 바로 곧 취옹정醉翁亭이다. 이 정자는 누가 지었는가? 이 산에 사는 승려 지선智僊이었다. 정자에 이름을 붙인 사람은 누구인가? 태수 자신이었다.
(1-5) 태수는 종종 손님들과 함께 여기에 와서 술을 마시곤 하였는데, 조금만 마셔도 술에 취하는 데다가 나이도 제일 많곤 하여서 스스로 취옹醉翁이라 불렀다.
(1-6) 그러나 취옹의 뜻은 술에 있지 아니하고 산수지간山水之間에 있었다. 산수간에 노니는 즐거움을 마음으로 느끼고 술에 기탁寄託한 것이었다.
(1-1) 環滁皆山(也)。
(1-2) 其西南諸峯, 林壑尤美; 望之蔚然而深秀(者), 琅琊(也)。
(1-3) 山行六七里, 漸聞水聲潺潺; 而瀉出於兩峯之間(者), 釀泉(也)。
(1-4) 峯回路轉, 有亭翼然臨於泉上(者), 醉翁亭(也)。作亭(者)誰? 山之僧智僊(也)。名之(者)誰? 太守自謂(也)。
(1-5) 太守與客來飮於此, 飮少輒醉, 而年又最高, 故自號曰: 醉翁(也)。
(1-6) 醉翁之意不在酒, 在乎山水之間(也)。山水之樂, 得之心而寓之酒(也)。
여기는 안휘성安徽省 저주滁州. 남경南京 서쪽 약 50 Km 지점에 위치한 풍광 명미明媚한 땅이다.
문득 먼 곳에 초점을 잡은 한 장면이 나타난다. 마치 무비 카메라를 찍듯, 화면은 서서히 움직이며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아 사방의 풍광을 비춘다. 빠짐없이 이어져있는 능선으로 보아, 이곳 저주 땅이 산으로 에워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갑자기 정지되는 카메라! 점점 확대되는 화면에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계곡이 나타난다. ‘낭야산琅琊山’이라는 자막이 보인다.
잠시 후, 장면은 바뀌어 카메라는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간다. 시냇물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더니, 드디어 두 봉우리 사이에서 솟구쳐 나오는 샘물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양천釀泉’이라! 그리고 그 옆에 바싹 다가앉은 정자 하나, 취옹정醉翁亭’! 날아갈 듯한 지붕을 머리에 얹은 그 정자의 현판에 쓰인 세 글자가 클로즈업된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주인공은 바로 이곳의 지방장관인 태수太守!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주관적으로 펼쳐내고 있는 주인공이 아니라, 방관자처럼 담담한 내레이터의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현장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상) 낭야산 능선 (하) 취옹정으로 가는 계곡 입구
(상) 양천. 시냇가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하) 취옹정. 지붕이 날개를 활짝 펼친 새의 모습이다.
(2-1)
해 떠오르면 걷혀가는 숲 속의 안개.
모여드는 운무雲霧에 휩싸여 어둠이 깃드는 암혈巖穴.
회명晦明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것은, 바로 아침저녁 이 산속의 풍광이다.
(2-2)
들에 꽃이 피니 그윽한 향기.
어여쁜 초목은 빼어남을 자랑하니 무성한 녹음.
바람이 높은 곳에서 불어오면 하아얀 서리.
수량이 줄어든 계곡에 앙상한 모습을 드러낸 바위들...
바로 사시四時 사철 이 산속의 모습이다.
(2-3)
매일같이 아침이면 이 산속을 찾아가고 저녁이면 돌아오곤 하였으나, 사시사철의 풍광이 저마다 다른지라 즐거움은 끝이 없었다.
(2-1) 若夫日出而林霏開, 雲歸而巖穴暝, 晦明變化(者), 山間之朝暮(也)。
(2-2) 野芳發而幽香, 佳木秀而繁陰, 風霜高潔, 水落而石出(者), 山間之四時(也)。
(2-3) 朝而往, 暮而歸, 四時之景不同, 而樂亦無窮(也)。
(2-3)을 보면 태수는 이곳을 사시사철 거의 매일 같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산속 골짜기 매양 똑같은 곳에 무슨 볼거리가 그리 많을까? 하지만 산속의 풍광은 뜻밖에도 천변만화하여 찾을 때마다 무궁무진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2-1)은 하루 아침저녁의 풍광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그 후 중국문학에서는 '숲 속의 안개가 걷혀간다 林霏開'는 '아침'을, '모여드는 운무에 휩싸여 암혈이 어두워진다 雲歸而巖穴暝'라고 표현하면 '저녁'이 되었음을 상징하게 되었다.
(2-2)도 마찬가지. '들에 꽃이 피니 그윽한 향기 野芳發而幽香'는 '봄'을, '어여쁜 초목은 빼어남을 자랑하니 무성한 녹음 佳木秀而繁陰'이라고 하면 '여름'을, '바람이 높은 곳에서 불어오면 하아얀 서리 風霜高潔'라고 하면 '가을'을, '수량이 줄어든 계곡에 앙상한 모습을 드러낸 바위 水落而石出'라고 표현하면 '겨울'을 상징하게 되었다.
딱 하나, '수량이 줄어든 계곡에 앙상한 모습을 드러낸 바위 水落而石出'라는 표현은 후세에 '감추어 두었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다'라는 또 다른 뜻으로 인신引伸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3-1)
짐을 지고 가며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저기 앞에서 이름을 부르니 뒤에서 대답을 하는 사람, 구부정 노인네와 손을 잡고 가는 어린아이들... 왔다 갔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것은, 바로 저주滁州에 사는 백성들이 여기에 유람 나온 행렬이었다.
(3-2)
계곡에 내려가서 물고기를 잡으니 물이 깊어서인지 통통하게 살찐 놈이었고, 양천釀泉으로 술을 빚으니 물이 향기로와서인지 맑고 차가웠다. 산짐승과 들나물을 요리하여 어지럽게 늘어놓으니, 바로 태수가 베푼 연회였다.
(3-3)
연회에서 술 마시는 즐거움은 고상한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투호의 살을 던져 과녁에 집어넣고, 고누를 두어 이기고, 벌주를 주고받느라 어수선한 가운데, 앉았다가는 다시 일어서서 시끌벅적 난장판 한 마당 속에 그 즐거움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곧 여러 유람객들이 기뻐하는 광경이었다.
(3-4)
푸르뎅뎅 초췌한 얼굴에 하얗게 쉰 머리카락. 뭇사람들 사이에서 비틀비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 있었으니, 바로 곧 태수가 술 취한 몰골이었다.
(3-1) 至於負者歌於塗, 行者休於樹; 前者呼, 後者應; 傴僂提攜, 往來而不絶(者), 滁人遊(也)。
(3-2) 臨谿而漁, 谿深而魚肥; 釀泉爲酒, 泉香而酒洌; 山肴野蔌, 雜然而前陳(者), 太守宴(也)。
(3-3) 宴酣之樂, 非絲非竹; 射者中, 弈者勝; 觥籌交錯, 起坐而諠譁(者), 衆賓懽(也)。
(3-4) 蒼顔白髮, 頹然乎其間(者), 太守醉(也)。
이 아름다운 산수의 땅에 풍년이 찾아왔다! 태수의 덕정德政에 풍년까지 맞은 백성들이 어찌 아니 기쁠쏜가? 남녀노소 모두 모여 태수를 따라 낭야산 기슭 취옹정으로 유람을 나간다.
산 길. 흥겹게 노래하며 걷는 젊은이,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늙은이. “갑돌아!” 부르는 갑순이의 정겨운 목소리에 “응, 나 여깄어!” 대답하는 갑돌이의 목소리가 독자는 들리지 않으신가?
시냇가. 천렵하는 마을 사람들. 던지는 그물마다 살 오른 물고기가 줄이어 올라온다. 얼큰한 탕을 끓여 술 한잔 하는데, 청정수로 만든 술인지라 그 맛 또한 기막히다!
술자리 펼쳐놓은 잔치상. 태수가 베푼 연회렸다! 온갖 산채나물 짐승고기가 푸짐한데, 우아한 풍악은 없더라도 백성들은 그저 즐겁기만 하다. 투호投壺를 즐기는 이, 고누를 두는 이, 어지러이 술잔이 오가며 떠들썩한 한 마당 난장판에 살아 숨 쉬는 민초民草들의 약동하는 즐거움이 넘쳐난다.
그 흥겨움이 너무나 생생하여, 우리도 태수의 뒤를 따라 낭야산 양천 계곡가에 자리 잡은 취옹정을 찾아가 백성들과 더불어 한바탕 술판을 벌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전편에 넘쳐흐르는 ‘흥겨움’과 ‘즐거움’!
역대의 평론가들이 유가儒家의 이상理想 중의 하나인, 이른바 ‘여민동락 與民同樂’의 주제를 멋들어지게 부각한 명작이라며 이 작품을 극구 칭송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쯤에서 두 가지 정도 음미해 볼 만한 사항이 있다.
( 1 ) “취옹醉翁의 뜻은 술에 있지 아니하고 산수지간山水之間에 있다”는 태수의 말. 그 궁극적인 뜻이 어찌 산수간에서 풍월이나 읇조리는데 있겠는가!
지금도 ‘도남의재북 圖南意在北’의 뜻으로 흔히 사용되는 이 말이, 사실은 ‘백성들의 즐거움과 함께 하는 여민동락 與民同樂’에 그 궁극적인 뜻이 있음을 암시하는 절묘한 복선임을 뒤늦게 깨달으며, 작가의 그 치밀함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2 ) [ A 者, B 也。]에서 A의 내용을 살펴보면 백성들이 신이 나서 떠들썩 즐겁고 활기차고 신나게 노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그 '동적인 모습'을 '명사구'라는 '정적인 어법'으로 서술한 것이 굉장히 특이하다.
이런 서술법을 전문 용어로 '화동위정 化動爲靜'의 수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동사형 세계'를 '명사형 어법'으로 서술한 것. 역동적인 모습을 찰칵 사진 찍어놓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왜? 풍년을 맞이한 백성/시민들의 동적인 즐거움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겠는가.
(4-1) 이윽고 석양이 서산에 찾아오고 사람들의 그림자는 어지럽게 흩어지니, 바로 곧 귀가하는 태수의 행차를 따라 돌아가는 뭇사람들의 행렬이었다.
(4-2) 숲 속에 어둑어둑 어둠이 찾아들고, 나뭇가지 아래위로 지저귀는 소리 들려오니, 바로 곧 유람 나온 사람들이 사라진 뒤에 뭇새들이 즐거워하는 장면이었다.
(4-3) 하지만 뭇새들은 숲 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은 알 지언정 사람들의 즐거움은 알지 못하고, 사람들은 태수와 함께 유람 나온 즐거움은 알 지언정 태수가 그들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줄은 알지 못한다.
(4-4) 술이 취했어도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할 줄 알고, 술에서 깨어나서는 글로써 그 마음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곧 태수였다.
(4-5) 태수는 누구인가? 여릉廬陵 땅의 구양수이다.
(4-1) 已而夕陽在山, 人影散亂, 太守歸而賓客從(也)。
(4-2) 樹林陰翳, 鳴聲上下, 遊人去而禽鳥樂(也)。
(4-3) 然而禽鳥知山林之樂, 而不知人之樂; 人知從太守遊而樂, 而不知太守之樂其樂(也)。
(4-4) 醉能同其樂, 醒能述以文者, 太守(也)。
(4-5) 太守謂誰? 廬陵歐陽修(也)。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을 올바로 감상할 수 있는 결정적 키 포인트는 따로 있다. 모든 문학 작품은 바로 우리네 삶을 그대로 반영한 것! 만약 한 인간의 삶의 이면에 숨겨진 고뇌와 아픔을 읽지 못하고 표면에 나타난 즐거움만을 전부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결코 지성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게다.
문학을 공부하고 또 그 작품을 분석해 보고자 애쓰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따스한 관심과 섬세하고 다정한 시각으로, 상대방의 내면세계에 숨은 아픔까지도 헤아리고 다독거려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자 하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 아닐까?
자, 그렇다면 이제 눈을 돌려 다시 한번 이 작품의 자리행간字裏行間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작가의 또 다른 심리를 추적해 보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태수의 나이는 알고 보면 고작 마흔 살. 그러나 좌중에 앉으면 어느덧 제일 연장자란다. 건강마저 여의치 않은지 조금만 술 마셔도 취하기가 일쑤인지라 스스로 ‘술 취한 늙은이’라 부르기로 했다는 점부터 다분히 자조적自嘲的인 씁쓸함이 배어있는 듯싶다.
그리고 떠들썩 신명 나게 무르익은 분위기 속의 한 바탕 난장판. 그 사이에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술 취한 태수의 그 모습이 어쩐지 처량해 보이는 것은 정녕 우리의 착각일까?
잔치가 끝나고 어둠이 감돌자, 이제 숲 속에서는 새들만이 즐겁게 지저귄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까닭을 새들이 알 리 없듯이, 사람들은 태수와 함께 유람 나온 즐거움은 알 지언정 태수가 그들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줄은 미처 모르고 있노라고. 참으로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구양수는 사실 이 글을 쓸 무렵 개인적으로는 극도로 괴롭고 우울했다. 정적에게 조카딸과 사통을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중앙 정단에서 지방으로 좌천된 것이다. 얼마나 억울했던지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고 건강마저 극도로 나빠졌다.
다른 혐의도 아니고, 조카딸과의 사통이라니! 즐거울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분하고 억울하면, 우리는 보통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까? 특히 이런 술자리라면 아마도 대취하여 울분을 터뜨리지 않을까?
그러나 구양수는 달랐다. 아무리 분하고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술이 깬 후에는 이 글을 써서 그 정자가 세워진 연유와 경과를 기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바로 태수”, 개인이 아닌 공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지방의 행정을 맡은 최고 책임자로서, 그는 개인의 분노를 끝까지 억제하고 백성들의 즐거움을 자신의 감정으로 삼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작품 내내 ‘태수’라는 제3인칭을 사용하여 ‘객관적인 공인’의 입장을 견지하다가 맨 마지막 부분에서야 ‘태수’가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밝힌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당초 이 글을 쓰게 된 목적은 무엇일까? ‘취옹정’이라는 정자가 언제, 어떤 곳에, 어떤 연유로, 누가 만들었는지... 등등,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쓴 글이다. ‘기記’라는 문체가 지닌 본래의 목적이다.
고대 중국의 산문가들은 '글(文章)'이란 ‘함께 더불어 사는 길’, 즉 이른바 ‘유가의 도道’의 실체를 규명하고 전파하는 수단이지, 개인적인 감정을 토설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개인의 감정은 '시詩'를 통해서만 발산할 수 있다는, 소위 ‘시언지詩言志’ 그리고 ‘문이명도文以明道’의 개념이었다. 다시 말해서 '글'이란 작가 개인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써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실제로 작품 속에서 그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당나라 때만 봐도, 머나먼 오지에 유배당했던 '일세一世의 궁인窮人' 유종원柳宗元이 그러했거니와, 작가의 수양을 그토록 강조했던 한유韓愈 역시 작품 속에서 왕왕 현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구양수는 달랐다. 그는 글이 타인에게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주관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충실하고자 누구보다도 애썼다. 그러한 그가 설령 개인적으로 아무리 우울하고 분한 마음이라 할지라도 그 감정을 발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성인이라면 마땅히 시대의 목탁이요 선각자적인 자세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해 주고, 내가 속해 있는 집단보다는 사회 전체를 먼저 염려해 주는 것! 우리 지성인 독자들이 구양수의 <취옹정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중국 산문의 정신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윤석열이 내 뒷골을 잡아당긴다.
정신이상자 편집증 환자인 그의 망언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런데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숫자'가 소름을 끼치게 한다.
2021년 10월 1일.
윤석열은 대선 경선 TV 토론회 석상에서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로 보이는 글씨를 노출해서 대중에게 보여줬다.
12월 3일 10시 30분.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짓을 저지른 시간이 하필이면...
十二월(王), 三일 十시(王), 三十분(王)'이다. 왕, 왕, 왕...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다.
"12월 12일 밤 10시 2분(十二월 十二일 十시 二분)도 한자로 왕이 된다"며
그 시간에 제2의 쿠데타가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말도 인터넷에 떠돌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윤석열이 소위 '대국민담화'를 발표한단다.
나도 모르게 시계를 보았다.
12월 12일 오전 10시 2분.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밤'이 '오전'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똑같이 '왕, 왕, 왕' 아닌가.
이 정도면 '우연'인가, '필연'인가?
'우연'이 계속 겹치면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
이런 '유언비어'가 나돌아 다닐 정도로 대한민국을 무당의 나라로 만들어놓았다.
이런 자에게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 너무나 위험하다.
일분일초를 아껴 조속히 끌어내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 쿠팡에서 이런 것도 판매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저주인형 스트레스해소 인형 무당 주술 영화 소품'.
혹시 숨어있는 내란의 진짜 수괴가 지금 저걸로 누군가를 찌르고 있는 건 아닌지...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도 여당의 주류 세력이라는 자들은 나라야 망하건 말건,
오로지 자기가 속한 집단 생각밖에 하지 않고 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저항할까?
혹시 명세균 게이트에서 비화된 여론조작/ 선거조작 때문은 아닐까?
이미 윤석열의 육성을 통해서 당시 공천위원장이었던 윤상현의 혐의는 대단히 짙어졌다.
이 정도면 그들이야말로 잠재적인 범죄 집단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닐까?
아무튼 나는 오늘도 분노한다.
오늘도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1020 MZ 세대들은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겠단다.
비장한 민중가요 대신에 발랄한 K-pop으로 민주주의를 즐겁게 신나게 응원하겠단다.
그들의 시위문화는 한바탕 신명 나는 놀이터가 되고 있단다.
딸피 소오생도 그들, 젊은 청춘들에게 배우고자 한다.
분노 대신 깨어있는 시민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배우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신명 나게 응원하고자 한다.
# 구양수歐陽修
# <취옹정기醉翁亭記>
# 여민동락 與民同樂
# 시민과 함께 하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