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오생 Oct 28. 2024

25. 가을은 천지간에 몽롱하게 운무가 드리운 듯

구양수, <추성부> 감상 (2)

지난 번에 이어 오늘도 구양수歐陽修의 <가을의 소리 秋聲賦>를 감상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번 글의 제목은... <24. 가을이 오는 소리> 

도입부인 [ 제1 단락 ]을 중국어, 한국어 낭송을 통하여 감상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작품 전체의 번역문만을 단락별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원문은 필요하신 분을 위해 맨 뒤에 일괄 첨부해드리고자 합니다. 




[ 제 1 단락 ] 



<1-1>

어느 날 밤구양자歐陽子가 한참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문득 서남쪽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왠지 등골이 쭈뼛해져 주의력을 집중하여 들어보았다 

이상한 걸...”


청清, 화암華嵓(1683~1756) , <추성부의도 秋聲賦意圖>





<1-2>

싸락싸락... 쓰륵쓰륵... 

처음에는 자그맣게 들려오던 그 소리가 홀연 빠르고 급하게 들려온다.

야밤에 놀란 파도가 밀려들고모진 비바람이 휘몰아치듯!


<1-3>

쟁쟁 쟁쟁! 정정정정!

삼라만상에 부딪치니 모든 금속이 한꺼번에 울리는 듯!


<1-4>

재갈을 물리고 기습을 나가는가,

호령 소리 안 들려도 질풍같이 행군하는 인마人馬의 발자국 소리인 듯!


[대문 그림]  소오생의 벗, 김우한 화백의 <비바람 옥수수>. 




<1-5>

내가 동자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 일꼬? 네가 한 번 나가보고 오려무나.”


조선,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추성부도 秋聲賦圖> (일부)




<1-6>

동자가 돌아와서 말했다.

교교한 달빛 아래 은하수만 중천에 떡 걸렸는데아무도 없던데요? 나뭇가지 사이에서 나는 소리 같았어요.”


<1-7>

아하이게 가을 소리였구나대체 왜 이런 소리가 생겨나는 것일꼬?”

조선,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1861~1919), <성재수간(聲在樹間)>.





[ 제 2 단락 ] 



<2-1>

대저 가을이란 어떻게 생겼던가?

천지간에 몽롱하게 운무雲霧가 드리운 듯 그 색조 참담하고,

하늘은 높고 해는 빛나는 듯 그 얼굴 청명하다.

날씨는 오슬오슬 한기寒氣가 뼈속을 찔러들며,

의상意象은 스산하고 쓸쓸하니 산천山川이 적막하다.


아하사연이 이러하니

그 소리가 이렇듯 처량하고 애절하며 분노하여 울부짖는 것이구나!


조선,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추성부도 秋聲賦圖> (일부)




<2-2>

싱그럽게 푸르름을 자랑하던 녹음綠蔭이며

즐겁도록 무성하던 어여쁜 나무가 아니었던가!


 (헌데 이게 웬일인가?) 

풀잎에 스쳐지니 그 색이 변화하고나무에 부딪치니 그 잎이 떨어지네. 

이렇게 산천 초목이 쇠잔하고 영락하는 것은 필시 가을 기운이 남긴 매서움 때문이리라




<2-3>

무릇 가을은 형관刑官이 형벌을 내리는 계절이요,

사시四時 사철 중에서는 음陰에 속한 계절이라.


또한 전쟁의 상징이니오행五行중의 금金에 해당하는 계절이렸다.

천지간의 의로운 기운(義氣)’이란 것도 그래서 하는 말!

언제나 만물을 냉혹하게 쇠잔시키니 이것이 바로 가을의 주된 뜻이로다!


하늘이 삼라만상을 다스리니,

봄에는 생장生長 하고 가을이면 결실을 거두어드리게 하는 것이 그 법도라.

 

대만 영화 <추결秋決>. 李行 감독, 唐寶雲 주연. 1972년 작. 금마장金馬獎 대상 수상.

고대에는 가을이 되어야 죄인을 처결할 수 있었다. <가을의 처결(秋決)>이란 바로 그 뜻이다. 



<2-4>

허니 음악으로 따질 것 같으면,

가을은 상성商聲에 해당하여 서녘의 을 관장하고,

다시 이칙夷則으로써 칠월七月의 율이 되었더라.


'상商'은 ‘다칠 상과 통하지 아니한가?

만물이 늙어가니 마음을 다쳐 슬퍼지는 것이라!

또 는 ‘살육할 육의 뜻도 있으니,

만물이 지나치게 흥성하면 마땅히 살육하여 조금은 쇠잔시켜야 한다는 뜻이리라! 




<2-5>

오호라!

감정 없는 초목들도 떨어질 때가 있지 아니한가!


만물의 영장인간이란 동물은

백 가지 근심과 만가지 일로 심신을 지치게 하니,

그 내부가 흔들리면 필경 원기가 상하게 마련이라!



<2-6>

하물며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 근심하니,

윤기 반짝이던 홍안의 얼굴이 고목나무로 변하고

칠흑 같던 머리가 하얗게 세어감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금석金石처럼 변치 않는 바탕도 아니건만,

인간은 어찌하여 (감정 없는초목처럼 생명의 번영을 다투는가?


소오생은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을 '집착'이라고 풀이한다. 집착을 버리고 자연에 맡기는 것. 바로 노장사상의 핵심인 '무위자연 無爲自然'이자, 이 작품의 주제다.



<2-7>

곰곰 생각해 보자꾸나!

대체 누가 우리 인간의 생명력을 상하게 하는지를 ……

이치가 이러한데 어찌 가을 소리를 탓할 수 있겠느냐!


소오생의 벗, 김우한 화백의 <달맞이꽃> (연작).




[ 제 3 단락 ] 



동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머리를 떨구고 잠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찌륵찌륵……

사방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울음소리

나의 장탄식長歎息을 도와준다.


현대 한국. 운곡雲谷 강장원, <추향秋響>








참고 : <추성부 秋聲賦> 전문



<1-1> 歐陽子方夜讀書, 聞有聲自西南來者, 悚然而聽之, 曰: “異哉!”

<1-2> 初淅瀝以蕭颯, 忽奔騰而砰湃 ; 如波濤夜驚, 風雨驟至。

<1-3> 其觸於物也, 鏦鏦錚錚, 金鐵皆鳴。

<1-4> 又如赴敵之兵, 銜枚疾走, 不聞號令, 但聞人馬之行聲。

<1-5> 余謂童子: “此何聲也? 汝出視之。”

<1-6> 童子曰 : “星月皎潔, 明河在天, 四無人聲, 聲在樹間。”

<1-7> 余曰: "噫嘻, 悲哉! 此秋聲也, 胡爲而來哉?"


<2-1> 蓋夫秋之爲狀也, 其色慘淡, 煙霏云斂; 其容淸明, 天高日晶; 其氣慄冽, 砭人肌骨; 其意蕭條, 山川寂寥。 故其爲也, 凄凄切切, 呼號憤發

<2-2> 豐草綠縟而爭茂, 佳木葱籠而可悅; 草拂之而色變, 木遭之而葉脫; 其所以摧敗零落者, 乃其一氣之餘烈。

<2-3> 夫秋刑官也, 於時爲陰。 又兵象也, 於行爲金 是謂天地之義氣, 常以肅殺而爲心

<2-4> 故其在樂也, 商聲主西方之音, 夷則爲七月之律。 

商, 傷也; 物旣老而悲傷。 夷, 戮也; 物過盛而當殺 。

<2-5> 磋乎!  木無情有時飄零。 爲動物惟物之靈 百憂感其心萬事勞其形動於中必搖其精

<2-6> 而況思其力之所不及, 憂其智之所不能; 宜其渥然丹者爲槁木, 黟然黑者爲星星。      

<2-7> 何以非金石之質欲與草木而爭榮誰爲之戕賊亦何恨乎秋聲!


<3> 童子莫對, 垂頭而睡。 聞四壁 蟲聲喞喞助予之嘆息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